모방의 그늘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미술관의 조용한 복도를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캔버스 위의 붓질 하나하나는 과연 오직 그 화가만의 것인가.

창조란 무엇이고, 모방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미술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거대한 영향과 모방의 연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연쇄의 가장 극단에,

이른바 '카피스트(Copyist)', 우리 말로 '복제 화가'들이 존재한다.


복제 화가란 타인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거나

복제하여 자신의 예술적 맥락 안에 끌어들이는 이들을 말한다.

단순한 위작 제조자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숨어서 복사하지 않는다.

원작의 체취 앞에 당당히 서서, 미술관의 허가를 받고, 이젤을 펼치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림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작업이 끝나면 미술관 관계자의 확인 스탬프가 캔버스 뒷면에 찍히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갤러리에서 당당히 전시되고 판매된다.

암시장이 아니라, 환한 조명 아래에서.


1.jpg 복제 화가 마리우가 루브르박물관에서 관람객들 앞에서 외젠 들라크루아의 “알제리 여인의 거실"을 그리고 있다.


이 복제 미술의 전통은 뿌리가 깊다.

루브르 박물관은 1793년,

루이 14세의 궁전이 공공 박물관으로 변모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카피스트들에게 문을 열었다.

이젤도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선언했고,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매년 250여 명의 복제 화가들이 허가증을 받아 3개월 동안 원하는 걸작 앞에서 작업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대기자 명단 때문에 2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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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1872년부터 이 전통을 이어왔고,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은 현재까지 8천 명 이상에게 복제 허가증을 발행했다.

규칙은 엄격하다.

원작과 동일한 크기로 그려서는 안 되고, 원작자의 서명을 복제해서도 안 된다.

조금 크거나 조금 작아야 하며, 매일 작업이 끝나면 박물관 관계자의 검사를 받는다.


루브르에서는 완성된 복제화를 반출할 때 담당자가 직접 에스코트한다.

혹시나 그림을 바꿔치기할 것을 우려해 감시 카메라도 돌아간다.

그만큼 진지하고, 그만큼 공식적이다.


이 전통에 이름을 올린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놀람을 금할 수 없다.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마크 샤갈, 에드가 드가.

이들은 모두 루브르의 올드 마스터 걸작들을 복제했던 견습 화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루브르 복제 화가 출신 중 가장 성공한 경우 중 하나로 꼽힌다.

드가 역시 '복제 미술학교'의 유명한 동문으로,

오늘날 복제 화가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반면 세관 징수원 출신의 앙리 루소는 루브르 복제 화가 신청을 여러 번 했으나

나이도 많고 형색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는 대신 파리 식물원으로 갔고, 혼자 그림을 배웠다.

르네상스 거장들과 무관하게 원시 미술의 수풀로 가득한 루소 특유의 세계는

어쩌면 루브르의 거절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이자 미술 핸드북으로 더 유명한 첸니노 첸니니는

그의 저서 《예술의 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연습을 마쳤다면, 이제는 위대한 거장의 최고 작품 앞에 서라.

그 걸작을 끊임없이 복사하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가져라.

그것이 최고 화가가 되는 길이다."


폴 세잔도 말했다.

"루브르 미술관은 화가들의 교과서다."


Cap 2026-02-21 10-41-51.jpg 앙리 마티스, ‘삶의 기쁨’, 1905-1906년. / 사진 위키피디아 2 파블로 피카소, ‘삶의 기쁨’, 1946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파블로 피카소의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예술 창작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자

그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동시대 많은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차용하고 융합했다.

그러나 단순한 차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기에,

그는 오히려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카피스트들의 세계는 철학적 도발도 품고 있다.

미국의 셰리 레빈은 워커 에번스의 사진을 그대로 재촬영해 《워커 에번스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단 한 픽셀도 바꾸지 않은 복제였지만,

그녀의 의도는 남성 중심 미술사에 대한 고발이자 '천재 예술가' 신화의 해체였다.


Cap 2026-02-21 10-33-39.jpg After Walker Evans 1981(왼 쪽은 1936년 워커 에반스의 原사진,오른 쪽은 1981년 셰리 레빈이 워커에반스의 사진을 재촬영한 것)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홍보용 사진과 캠벨 수프 캔을 그대로 가져와

반복하고 색을 입히며 선언했다.

모든 것은 이미 복제된 세상 속에 있다고.

그의 《마릴린 먼로 두폭화》는 복제 미술이 어떻게 시대의 초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불멸의 증거가 되었다.


33.jpg 마릴린 먼로 두폭화, 1962


복제화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1만 달러에서 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만 원에서 6천만 원에 이른다.

원작을 갖고 싶지만 가격이 버거운 컬렉터에게는 원작의

백분의 일 가격에 거의 비슷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미술사에서 복제 작품이 원작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 희귀한 경우도 간혹 있다.


프랑스 사진기자 이반 길베르가 루브르에서 카피스트들을 촬영했을 때,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집중력과 인내였다.

무엇을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허가된 3개월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불친절이 아니라 경건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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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마친 카피스트가 루브르 확인 스탬프가 찍힌 캔버스를 들고 파리 지하철에 오른다.

사람들이 힐끗 바라본다.

혹시 루브르에서 훔친 그림 아냐?

그 순간의 긴장과 웃음 속에, 모방과 창조 사이의 오래된 질문이 살아 숨쉰다.

당신이 진짜라고 믿는 것들, 정말 진짜인가요?

미술관의 복도는 오늘도 조용하다.

그러나 이젤을 펼치고 붓을 드는 이들의 눈빛만은, 언제나 뜨겁게 빛나고 있다.



https://youtu.be/jTN7y7FDi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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