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기둥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jpg



프리다 칼로,

아픔도 나의 일부임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부러진 기둥 위에 서서

누군가는 상처를 감추려 옷을 입고,

누군가는 아픔을 잊으려 웃음을 입는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달랐다.

그녀는 아픔을 드러냈고, 고통을 응시했고,

부러진 척추를 정면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붓을 들어, 그 고통을 하나의 초상으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 *‘부러진 기둥’*이다.


부서진 기둥, 1944.jpg 부서진 기둥, 1944




그림 속 그녀는 반쯤 벌거벗은 채 정면을 바라본다.

몸은 쪼개졌고, 뼈 대신 거친 기둥이 솟아 있다.

기둥은 금이 가 있고, 금속 코르셋이 그 부서진 몸을 간신히 붙잡고 있다.

몸 전체엔 못이 박혀 있다.

그 못 들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한 절망과 분투의 증표다.


프리다에게 그림은 고통의 탈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통로였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나를 그린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잘 아는 것은 고통이었다.

열여덟, 버스 사고로 산산이 부서진 뼈.

평생 이어진 수술과 침대에 묶인 시간들.

육체의 파열은 그녀의 세계를 찢었고,

그 틈 사이로 그녀는 붓을 들고 자신을 꿰맸다.


그림 속 프리다는 울고 있지만 눈물은 없다.

표정은 담담하고,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그것이 더 아프다.

울지 않는 고통, 말 없는 절규.

그녀는 아픔을 감추지 않았고,

끝내 외면하지도 않았다.



tyy.png




우리는 살아가며 종종 아픔을 부끄러워한다.

보여주면 약해 보일까 두렵고,

그것마저 나인 줄 인정하기 싫어 도망친다.

그러나 프리다는 말한다.


“아픔도 나의 일부였다.”

“나는 그 고통 위에 서서 나를 다시 그렸다.”

‘부러진 기둥’은 그녀의 자화상이자,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균열을 비추는 거울이다.


삶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다시 버티고 설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프리다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부서진 몸으로 말한다.


“무너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오늘, 나 또한 조용히 내 안의 기둥을 들여다본다.

그 기둥이 금이 가 있어도,

못이 박혀 있어도,

그 위에 내가 살아 있음을 기억하며.



두 명의 프리다 1939.png 두 명의 프리다 1939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https://youtu.be/UgQarIwXVEA?si=NLPVdvoyB6qhMpja

매거진의 이전글모나리자의 미소, 영원의 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