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이야기
아름다움은 언제나 권력이었다.
그리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것을 노리는 자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펼치면,
총칼보다 더 깊숙이 파고든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미인계(美人計)다.
손자병법이 이를 병법으로 기록했고, 삼십육계는
이를 제31계로 명시하며 그 효용을 강조했다.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 '오래된 무기'는 녹슬지 않은 채
현대 첩보전의 한복판에서 버젓이 작동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계의 화신을 꼽으라면 단연 마타하리(Mata Hari)다.
본명 마르하레타 젤러,
네덜란드 출신의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 물랭루주의 댄서로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면서 프랑스 군부와 정계의 고위층으로부터
정보를 빼내 독일에 넘기다 1917년 프랑스 정부에 체포돼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일본에는 ‘동양의 마타하리’로 불리는 ‘가와시마 요시코’가 있다.
청나라 왕족 출신으로 6살 때인 1912년 일본에 양녀로 보내진 가와시마는
일본 간첩으로 활동하며 일본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세워지는 과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1948년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반역죄로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역사에도 미인계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의 모사 범려는 오왕 부차에게 절세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서시의 미모에 빠진 부차는 국사를 돌보지 않았고, 결국 오나라는 기울어 멸망했다.
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라의 명운을 바꾼 것이다.
삼국지의 초선(貂蟬) 역시 마찬가지다.
반동탁 세력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아름다운 초선을
두 사람 사이에 배치했고, 결국 여포는 의부(義父)인 동탁을 죽이기에 이른다.
미인 한 명이 만들어낸 균열이 시대의 판도를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이 고대의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착각이다.
미인계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의 첩보전에서 이 수법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진화해 왔다.
1948년,
독립운동의 상징 백범 김구마저 이 함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남북 단일 정부 수립을 꿈꾸며 38선을 넘어 평양을 찾은
김구를 기다린 것은 김일성만이 아니었다.
50년 전 김구의 첫사랑이었던 안신호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여동생으로,
한때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헤어진 그 여인이었다.
김일성은 김구의 과거를 샅샅이 뒤져 이 치명적인 인연을 발굴해 냈고,
당시 북로당 여간부였던 안신호를 데려와 17일간 김구의 시중을 들게 했다.
대동강에서의 뱃놀이, 어머니의 기일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 속에서 김구는 흔들렸다.
그 결과 "당신 같은 공산주의자라면 손잡고 통일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고,
북한에 과수원이라도 마련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칠십이 넘은 독립운동의 거인도,
50년 전 이루지 못한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던 것이다.
북한의 미인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체계적이고 잔혹해졌다.
북한 공작기관 통일전선부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을 방문하는 정치인·언론인·종교인·기업인을 상대로
이른바 '씨받이 전술'이 구사된다.
방문자가 묵는 숙소에 여성 공작원을 들여보내 성관계를 유도하고,
그전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영구적인 협박 카드로 삼는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던 인사들이 방북 이후 돌연 침묵하거나
친북 행보로 돌아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증언은 섬뜩하다.
2008년에는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원정화가 검거됐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이용해 군 장교들에게 접근,
기밀을 빼낸 혐의로 체포됐다. 언론은 즉각 그녀를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불렀다.
중국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09년 상하이에서는 중국인 여성 덩신밍이 교통사고를 빌미로
한국 외교관들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이를 빌미로 비상 연락망과 정부 관계자 연락처,
심지어 대통령의 전화번호까지 빼내는 데 성공했다.
유창한 한국어와 치밀한 사전 접근으로 여러 명의 외교관을 동시에
포섭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범죄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공작이었음을 증명한다.
미국에서는 중국인 크리스틴 팡이 5년간 22명의 정치 신인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낸 것으로 드러났고,
러시아의 마리아 부티나는 총기 옹호 단체를 통해 공화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21세기 마타하리'로 불렸다.
영국의 첩보소설 작가 존 르카레가 만들어낸 단어 '허니 트랩(honey trap)'은
2014년 옥스퍼드 사전에 정식 등재됐다.
달콤한 꿀 속에 숨겨진 함정.
미인계의 본질을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다.
꿀은 달콤하기에 저항하기 어렵고, 함정은 빠진 뒤에야 비로소 그 깊이를 깨닫는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중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중국인과는 연애나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금지령까지 내렸다.
미인계에 당한다는 게 들으면 어이없고 웃겨서 그냥 넘어갈 일처럼 보이지만,
그게 일반인이 아닌 정치인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북한 여자들이랑
사진 찍은 정치인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이들이 과연 미인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북한에서 그런 사진 찍었다고 전부 다 미인계에
당한 건 아니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치인들이 적에게 약점을 잡혀 있다면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국을 공산화시킬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함정으로 파는 이 오래된 술책은
총알도, 폭탄도 닿지 못하는 곳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역사가 아무리 경고를 반복해도 함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꿀이 달콤한 한, 그리고 인간이 본능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