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이야기
영하 40도.
숫자로 표현하면 간단하지만,
그 추위가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은 상상만으로도 몸이 오그라든다.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는 칼바람 속에서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그러나 눈빛만은 불꽃처럼 타오르던 여인.
윤희순.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조선 여성 최초의 의병장, 독립군 어머니, 조선의 암호랑이.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칭호보다 먼저 그녀가
평범한 며느리였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1860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윤희순은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다.
조선의 여느 여인처럼 부엌에서 밥을 짓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시부모를 공경하며 살아가던 삶이었다.
그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면서였다.
일본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조선 팔도의 선비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윤희순의 시아버지 유홍석이 의병을 일으켰고, 남편 유제원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윤희순도 일어섰다.
문제는 아무도 그녀의 일어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가 무슨 의병이냐."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그러나 윤희순은 그 손가락질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붓을 들었다.
직접 쓴 「안사람 의병가」는 이렇게 외친다.
여자라고 나라 사랑할 줄 모르겠느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찌 남녀가 따로 있겠느냐는 외침이었다.
그 노래는 하나둘 동네 아낙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고운 비단 치마를 아까워하지 않고 찢어 의병들의 깃발을 만들었다.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 군자금을 댔다.
심지어 화학을 독학하여 화약과 탄약을 직접 제조했다.
총칼을 든 남자들의 전쟁터 뒤편에서 그녀는 또 하나의 전선을 혼자 열고 있었다.
1910년, 경술국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날, 윤희순은 울지 않았다.
대신 짐을 쌌다.
시아버지, 남편, 자식들을 이끌고 만주 땅을 향해 떠났다.
망명이 아니었다. 후퇴도 아니었다.
더 넓은 벌판에서 더 크게 싸우기 위한 전진이었다.
만주에서의 삶은 처절했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어 연명하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나 윤희순은 그 척박한 땅에 학교를 세웠다.
조선독립단 노학당. 독립군을 키우는 학교였다.
글을 가르치고 역사를 가르치고 총 쏘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잊지 말라고,
우리가 왜 이 추운 땅에 있는지를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가르쳤다.
먼 이국 땅에서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희망이다.
윤희순은 그 희망을 틀어쥐고 놓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마저 일본군의 손에 잃었다.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나는 그녀가 그 비통함을 분노로 바꾸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저앉아 우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다시 일어섰을 것이다.
70세가 넘은 노령에도 윤희순은 만주 독립군의 진두에 서 있었다.
총을 드는 힘은 약해졌을지라도 목소리는 여전히 벌판을 울렸다.
그녀가 남긴 말 중 가장 나를 먹먹하게 하는 것은 이것이다.
"독립이 되기 전까진 내 뼈를 고국에 묻지 마라."
죽어서도 이국 땅에 묻히겠다는 말이 아니다.
독립이 될 때까지는 죽어도 죽을 수 없다는,
망령이 되어서라도 싸우겠다는 다짐이다.
1935년, 그녀는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만주 땅에서 눈을 감았다.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였다.
때로 나는 생각한다. 역사책 한 귀퉁이에조차 잘 등장하지 않는 이 여인의 삶을.
교과서는 영웅들의 이름을 가르치지만,
그 영웅들의 뒤에서 치마를 찢어 깃발을 만들고 풀뿌리를 씹으며
학교를 세운 여인들의 이름은 좀처럼 기억되지 않는다.
윤희순의 의병가에는 화려한 수사가 없다.
그냥 묻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왜 여자라서 안 되느냐고.
그 단순하고 칙칙한 질문이 1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찌른다.
영하 40도의 만주 벌판.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불씨 하나가 있었다.
윤희순이라는 이름의 불씨.
그녀는 혼자 타오른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아낙들에게, 아이들에게, 독립군들에게 그 불을 옮겼다.
그렇게 작은 불씨들이 모여 결국 1945년 8월의 빛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 빛 속에는 분명 그녀의 숨결이 담겨 있다.
고운 치마를 찢어 깃발을 만든 여인.
나는 오늘도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
윤희순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