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은퇴한 사람이 왜 그리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냐고.
혹자는 정치적 소신이 강한 사람으로 볼 것이고,
혹자는 노년에도 사회참여 의식이 남다른 노땅으로 볼 것이다.
둘 다 틀렸다.
이유는 훨씬 단순하고 솔직하다.
나는 주식을 한다.
큰 돈은 아니지만 적은 돈도 아니다.
은퇴 후 나의 하루는 조용하다.
한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한복판에서 숨 가쁘게 살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나를 호명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매일 아침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뉴스를 펼친다.
이것이 나의 출근이고, 나의 업무다.
주식시장이란 묘한 생물이다.
기업의 실적, 금리, 환율, 유동성 같은 수치들이 그 몸통을 이루지만,
실제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의외로 '말'과 '정책'이다.
요즘 트럼프의 한마디가 전 세계 증시를 하루 만에 뒤집는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관세 발언 한 줄에 코스피가 출렁이고,
연준 의장과의 갈등 한 토막에 달러가 흔들린다.
정책은 시장의 문법이다.
그 문법을 읽지 못하면 주식은 그저 도박이 된다.
문제는 그 정책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나 같은 개인투자자는 정부 브리핑장에 들어갈 수 없다.
오래전 과거에는 2급 비밀인가 취급증을 갖고 있어서
많은 고급 비밀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기관의 리서치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받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사기꾼들의 리딩방을 들어 가지는 않는다.
결국 언론 기사가 유일한 창구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사를 들여다보고, 그 행간을 읽으려 애쓴다.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이 어느 반도체 기업을 전격 방문했다는 기사가 뜨면,
나는 그 기업의 주가를 먼저 확인한다.
정부의 관심은 곧 정책 지원의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는 뉴스는 부동산으로 향하던 돈이 갈 곳을 잃는다는 뜻이고,
그 자금 일부가 증시로 유입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파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동화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고, 자연히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관련 종목이 주목받는다.
전기요금 인상 뉴스는 에너지 효율 관련 기업에 호재가 되고,
저출생 대책 발표는 육아·교육 관련 소비재 섹터를 들썩이게 한다.
전쟁 뉴스는 방산 업체들의 수주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기사 하나하나가 내게는 시장의 다음 움직임을 가늠하는 단서다.
그러다 보면 때로 분노가 치민다.
평소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기사를 만날 때,
고개를 젓게 만드는 정책 결정을 목격할 때.
예전 같았으면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한바탕 떠들었을 것이다.
퇴근 후 모임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자에게 그런 무대는 없다.
분노를 흘려보낼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오해는 말아주시길.
나는 세상을 계몽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어른이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쌓인 생각이 갈 곳을 찾는 것이다.
지극히 사적이고, 지극히 솔직한 분출이다.
뉴스를 읽고, 맥락을 짚고, 시장을 예측하고,
그러다 울컥하면 글을 쓴다.
이것이 은퇴자인 내가 매일 시사를 들여다보는 이유의 전부다.
거창한 것은 없다.
다만 오늘도 나는 살아있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직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