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싫은 당신

주절주절

by 제임스

나는 은퇴하기 전까지 숨 쉴 틈 없이 살아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하루가 모자랐고,

밤에 눈을 감을 때도 내일의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치열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안쓰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바쁨 속에서도 나를 숨 쉬게 해주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월드컵이었다.

4년마다 돌아오는 그 축제는 내게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

업무에 치여 잊고 살던 나에게 휴식을 주는 여유의 순간이었다.


2002년의 그 영광의 밤들,

2010년 우루과이전의 아쉬움,

2022년 카타르에서 16강을 뚫던 감격까지.

나는 그 모든 순간마다 아이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아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월드컵은 내 삶의 숨구멍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숨구멍이 막혀 있다.

월드컵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보고 싶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홍명보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텅 빈 관중석


얼마 전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0대 4. 완패!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아프리카 팀에게

그리고 오스트리아와의 평가전에서도 졌다.

대한민국 역대급 황금팀이 대패했다.

충격적이다.

화난다.

야구에 이어 축구까지.

선수들은 최강인데 어찌하여?

반면 일본은 브라질 이어 잉글랜드 원정마저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나를 괴롭힌 건

벤치에 서 있는 홍명보 감독의 모습이었다.

이번 월드컵에는 열사병 방지를 위한 쿨링 브레이크가 도입됐다.

전후반 중간에 주어지는 3분의 휴식.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유능한 감독에게 이 3분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황금 같은 순간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이 시간에 전술판을 들이밀고 선수들의 눈을

사납게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바꾸려 할 때, 홍명보는 그저 서 있었다.

그 방관이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상상했다.

혹시 저 순간에 그는 "흥민아, 잘해줘. 민재야, 막아줘"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상상이 터무니없기를 바라면서도,

경기 내내 보여준 그의 무표정한 벤치 매너는 그 상상을 쉽게 지워주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봉을 받으면서,

그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홍명보 최악의 선수 탓 인터뷰는 역시 그의 인성이 드러났다.

"선수 개인의 실수가 문제였다"


우리가 직장에서도 상사가 명확한 전략과 전술도 없이

그저 "잘해야 한다!"고만한다면 복창이 터질 것이다.

전쟁터에서 중대장이 돌격 앞으로만 하는가?


하지만 화살을 홍명보 한 사람에게만 겨누는 것도 옳지 않다.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은 대한축구협회다.

협회장 선거에서 85퍼센트의 몰표로 당선된 사람,

이른바 축구계 내부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25년 예산 2049억을 썼다.


그 숫자 앞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히 한명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 전체가 썩어 있다는 증거다.

더 소름 돋는 건 따로 있다.

이 광경이 너무도 낯익다는 것이다.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그 밀실, 내부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그 집단.

나는 이것이 축구 이야기인지 정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표팀의 감독을,

지금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지 못한다.

대통령도 파면하는 나라에서, 축구협회 하나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땀을 흘리며 뛰는 선수들을 보다 보면,

결국 나는 또 응원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것이 더 비참하다.

썩은 구조를 욕하면서도 태극마크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마는 이 마음.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지긋지긋하고 끊을 수 없는 감정.

홍명보가 싫다!

그를 싫어하면서도 대한민국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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