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천재

세상만사

by 제임스

대한민국 사기 범죄사에서 이토록 극적인 일대기를 남긴 인물이 또 있을까?

전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삶은 실화라고 믿기 힘들 만큼 기괴하고,

블랙코미디처럼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을 뒤로한 채,

무려 수십 년에 걸쳐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집단인 서울대 법대생으로 행세하며

세상을 속인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거짓의 서막은 대담했다.

충남 아산의 소작농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학력 인정도 안 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문제아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지만,

부모에게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척 행세를 이어갔다.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태연한 거짓말로 온 가족을 축제 분위기에 빠뜨렸다.

가장 가까운 혈육조차 완벽히 속인 그 치밀함은,

타인을 기만하는 데 있어 일종의 기괴한 확신을 그의 내면 깊숙이 심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이 무르익은 것은 군대에서였다.

늘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바로 군에 왔다고 떠들던 그는,

공교롭게도 진짜 서울대 법대생 후임병을 만나게 된다.

제대 후 그 후임병이 함께 공부하자며 찾아왔고,

얼떨결에 법대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게 되었다.

기왕 그렇게 된 것,

학생증까지 위조하고 4학년이 될 때까지 버젓이 강의실을 누볐다.



그의 '코스프레'는 단순히 학적을 사칭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학과 동아리 활동은 물론,

무려 학생회장까지 맡으며 동료들뿐 아니라 교수들에게까지 두터운 신망을 쌓았다.

사법고시에서 단 한 문제 차이로 낙방했다고 말하며 엘리트다운 고뇌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훗날 밝혀진 그의 실제 시험 점수는 평균 26점, 과락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풍기는 당당한 태도와 '서울대 법대생'이라는 후광만을 믿고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거짓말의 정점은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법대 동기의 소개로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병원 이사장의 딸을 만났고,

법대 학장님의 주례 아래 교수들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웨딩마치를 올렸다.

가난한 법대생을 안쓰럽게 여긴 동기들은 푼돈을 모아 살림살이를 사주었고,

그는 겨우 전셋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꾸렸다.

대한민국 사회가 선망하는 이른바 '완벽한 결합'의 상징처럼 보였다.


1983년 2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졸업앨범 제작 과정에서 학적부를 뒤지던 중 그의 정체는 마침내 만천하에 드러났다.

훗날 서울동부지검장이 되는 석동현 씨가 앨범에서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학적과에 문의하다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분노한 법대생들이 신림동 일대를 뒤지며 그를 찾아다녔는데,

그 주인공 중에는 훗날 대통령 후보가 될 윤석열과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도 있었다 하니,

이 사건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대의 얼굴들이 얽혀 있는지 새삼 놀랍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반전은 그 이후에 펼쳐졌다.

신문에까지 실린 '가짜 법대생'이 뻔뻔하게 서울대 동문회에 출석하는 기행을 보인 것이다.

의아하게 여긴 동문들도 굳이 쫓아봐야 이득이 없고,

재력가 하나 있으면 동문회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 아래 모른 척 넘어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넌지시 묻는 동기들에게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거 있잖아, 당시 독재정권이 우리 학교 법대를 어떻게든 괴롭히려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당당함이었다.


김찬경은 졸업 후, 1985년 당시 대우그룹에 지원해 합격했다.

당시 대우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졸업생에 한해 면접으로만 입사시험을 치렀다.

엉성한 인사 시스템을 그는 타넘고 들어갔지만,

회사의 학력 조회 과정에서 다시 걸렸다.

그는 입사 3개월 만에 해고됐다.


처가에서는 파혼이니 이혼이니 했지만 이미 아이가 있었고,

이혼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따갑던 시절인지라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 그는 처가의 돈을 빌려 여러 사업을 벌였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채석장 사업에서 대박이 터지며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빌딩을 사들이는

수백억 부자로 환골탈태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다시 나락에 떨어졌지만,

위기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제주도의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저축은행으로 탈바꿈시킨 뒤,

자금이 필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업으로 다시 일어섰다.

한때 자산 2조 원, 업계 7위 규모의 저축은행으로 성장시키며

'성공한 사업가'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필리핀 카지노에 270억 원을 대출해주고,

유령 회사를 내세워 자신의 회사에 1,500억 원을 불법 대출했다.

운전사가 차 안의 현금 56억 원을 도난당하는 등 의심스러운 일들도 잇따랐다.

배임 대출액 3,028억 원, 횡령액 571억 원. 은행을 개인 금고처럼 주무른 결과였다.

앤디 워홀의 '플라워'를 비롯한 고가 미술품까지 손에 넣어 현금으로 챙겼다.


앤디 워홀의 플라워


결국 2012년 금융당국의 퇴출 명단에 오르게 되었고,

영업정지 사흘 전 그는 회사 돈 203억 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배 위에서 체포되었다.

8만 8,000명의 예금자, 그중 2,000명은 원리금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2013년 1월, 법원은 그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 징역 8년으로 감형된 그는 아마 지금쯤 복역을 마치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이 현실에서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인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그 거짓을 스스로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김찬경의 삶은 그 교과서적인 사례이자,

우리 사회의 '간판 지상주의'가 어떤 괴물을 길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거울이기도 하다.


초졸 학력으로 서울대 학생회장과 저축은행 회장까지 올라갔던 그 놀라운 추진력을

정직한 곳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파도 한 번에 무너지듯,

거짓으로 일군 삶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그 끝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일수록 한 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어려운 일을 뚫고 무언가를 이룬 사람은

그리 나긋나긋하게 굴지 않는 법이니까.

진실 없는 성공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가장 견고한 감옥이 된다.

김찬경의 일생이 묵직하게 남기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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