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천
★ 스포없음
남편을 잃은 여자가 제주도로 간다.
그가 살고 싶어 했던 곳으로, 혼자서.
이 설정만 들으면 으레 예상되는 영화가 있다.
잔잔한 바다, 느린 치유, 그리고 눈물.
그런데 〈낮과 달〉은 그 기대를 살며시,
그러나 단호하게 비껴간다.
남편과 사별한 민희(유다인)는 제주도로 이사를 오고,
카페를 운영하는 이웃 목하(조은지)와 친분을 쌓는다.
그런데 어느 날, 목하가 바로 남편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조용히 폭발한다.
슬픔은 분노로 뒤바뀌고, 그 분노는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그 우스꽝스러움 안에 진짜 감정이 숨어 있다.
민희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남편을 잃은 슬픔,
그 슬픔을 온전히 소화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배신감,
그리고 배신감을 퍼부을 대상조차 이미 세상에 없다는 황당함.
분노의 화살은 결국 목하에게로 향하지만,
목하 역시 피해자다.
두 여자는 한 남자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했고,
그 남자는 이미 없다.
남겨진 것은 두 여자의 어색하고 복잡하고 예측 불가한 관계뿐이다.
영화에서 웃음기가 삐져나온다.
야메 요가 강사와 체대 출신 여자가 힘으로 결판을 내는 장면은 크게 웃음을 자아내고,
이어지는 바닷가 장면은 실로 아름답다.
이 두 감정이 어색하지 않게 공존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소박하지만 묵직하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다 알 수 없다.
사랑했던 사람조차 자신이 몰랐던 다른 얼굴과 다른 시간을 살았다.
그 사실이 상처가 되더라도, 결국 우리는 그것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낮에 뜬 달처럼, 어쩌면 소중한 존재들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그 온기를 담고 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은
이영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규모는 작지만 밀도는 묵직하다.
유다인과 조은지의 케미는 흠잡을 데 없고,
제주의 풍경은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감정 그 자체로 기능한다.
추천 대상은 명확하다.
상실을 겪어본 사람, 관계의 복잡함에 지친 사람,
그리고 웃으면서 울고 싶은 사람.
거창한 위로보다 조용한 동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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