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어제 모처럼 만난 후배는 1974년생이다.
그는 다른 날과는 달리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는 자신이 '낀세대'라며 긴한숨을 내쉬었다.
'낀 세대.' 그 이름 자체가 이미 고통을 품고 있다.
위에서 짓눌리고, 아래에서 치받히며,
정작 자신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주로 1970~80년대에 태어난 지금의 40~50대,
대한민국의 허리를 이루는 이 세대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은 '샌드위치 세대'다.
두 겹의 빵 사이에 끼워진 재료처럼,
그들은 위아래 세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오늘을 살아간다.
가정에서의 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늦은 초혼,
자녀의 독립 지체로 중장년층이 자녀와 노부모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짐은 버겁기만 한데,
정작 본인들은 노후 준비를 할 겨를이 없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중장년층 10명 중 8명은 노부모를 부양하고 있으며,
성인 자녀를 부양하고 있다는 응답도 62%나 나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부모 부양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57%,
개인 시간 및 여가 시간 감소가 56%,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30%를 차지했다.
숫자 뒤에는 매일 밤 지갑을 들여다보며 한숨짓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경제적 압박은 구조적이다.
위로는 고령의 부모를, 아래로는 대학생 자녀를 부양하면서 자기 노후 준비까지 떠안고 있다.
생활비, 사교육비, 의료비, 대출 상환 등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용만으로도 버겁다.
낀 세대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고용은 불안했고
자산 버블도 경험하지 못했다.
재테크 대박은커녕 종잣돈 마련조차 쉽지 않았다.
앞선 세대는 땀 흘린 대가로 부동산 상승의 과실을 거뒀지만,
낀 세대는 그 열차가 떠난 자리에 서서 오르는 집값을 바라봐야 했다.
직장에서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40대는 위로는 부모, 아래로는 자녀를 책임지는 샌드위치 세대인 동시에 직장에서도
상하 조율 역할을 떠안으며 삼중 압박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활동인구의 중추이자 직장 내 중간관리자급에 해당하는 40대는 45%가
아래 세대와의 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44%가 윗세대와의 협업에도 어려움을 느껴,
위아래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위로는 권위적인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고,
아래로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MZ세대를 이해하려 안간힘을 쓴다.
이념을 위해 싸웠던 운동권 386세대와 사회적 이슈의 한가운데 있는 MZ세대 사이에서,
위로는 기성세대를 아래로는 MZ세대를 이해해야 하는 세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문화적 고아와도 같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2024년 기준 40대 비만율은 전년 대비 6.4% 포인트 급등해 44.1%를 기록했고,
자살률은 4.7명 상승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통계가 아니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무너지는 사람들의 침묵하는 비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된 직장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4세로,
40대는 이미 은퇴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세대다.
노후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벌써 직장을 잃고,
그럼에도 부양의 짐은 내려놓지 못한다.
더욱 뼈아픈 것은 이 세대가 받는 사회적 무관심이다.
청년 정책은 청년을 위해, 노인 복지는 노인을 위해 설계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낀 세대를
위한 제도적 그물망은 너무나 엉성하다.
각 세대가 서로의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낀 세대의 고통은 세대 갈등의 소음 속에서 자꾸만 묻힌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도 출근한다.
부모의 병원비를 계산하고, 자녀의 등록금을 마련하고,
자신의 노후가 불안해도 일단은 오늘을 버틴다.
대한민국의 허리는 이렇게 굵고 단단한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낀 세대의 고통을 마침내 사회가 함께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끼어 있다는 것이 소외의 이름이 아니라,
연결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