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비즈니스로 대전환, K-콘텐츠의 넥스트 스텝
2023년 혁신IP전략TF에 합류해 콘텐츠IP를 중심으로 기관의 향후 사업 전략을 짜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었다. 어렴풋이 하나의 IP로 부가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설계해보라는 것 같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감이 잘 안왔다.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원천IP가 영상콘텐츠로는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어서, 게임이나 뮤지컬 같은 다른 장르로 더 활발히 제작될 수 있게 OSMU 중심의 전략을 짜야되나? 이런 정도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IP'를 기본 검색어로 두고 '수익' 같은 단어를 한글과 영어로 조합해서 열심히 구글링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도표가 검색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미디어 프렌차이즈 25선(THE 25 HIGHEST-GROSSING MEDIA FRANCHISES OF ALL TIME)'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자세히 들여다 보니, <포켓몬스터>가 92억 달러, 한화로 126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콘텐츠로 꼽혔다. 126조 원이라니..., 당시 한국 콘텐츠산업 전체 매출이 150조 원 정도였으니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 도표에서 놀라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수익 구조에 대한 구분도 있었는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항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 항목이 바로 상품(MERCHANDISE)이었기 때문이다. <포켓몬스터>는 분명히 게임인데?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성공했는데 왜 상품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벌었다는거지? 뭔가 이상해서 다른 콘텐츠들의 수익 구조도 확인했는데 역시나 상품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스타워즈>도 분명 영화로 성공한 프렌차이즈인데 수익은 상품의 비중이 더 높았다.
생각해보니 머천다이징의 중요성에 대해 완전히 몰랐던 것은 아니다. 과거 포맷 지원사업을 오래담당했었던 만큼 부가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었다. 포맷 선진국들의 포맷은 성공하면 엄청나게 큰 수익을 얻는다. 단순히 리메이크에 대한 로열티 수익에 그치는게 아니라 다양한 부가사업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게 BM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슈퍼 포맷인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관련 상품만 140여 종에 이르고 전체 포맷 수익의 40% 이상이 부가사업 수익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 사례인 <The Traitors>도 온라인 게임, 보드게임, 의류 등 다양한 부가사업으로 포맷의 인기에 편승해 큰 수익을 거뒀다고 알려져 있다(손태영, 2024).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특수한 것이지 IP 비즈니스에서 일반적인 수익 구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Title Max에서 정리한 이 도표에 이름을 올린 IP들은 그 출발점이 만화든, 소설이든, 게임이든,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뭐든, 대부분의 케이스에서 수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머천다이징이었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 중 하나인 <귀멸의 칼날> 사례에서도 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만화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까지 연타석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2020년에만 총 1조 엔의 수익을 거뒀는데 그 중 머천다이징의 비중이 9천억 엔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했다(나카야마 쥰오, 2021)
이러한 사례들을 접하고 나니, 한국의 사정은 어떤지 객관적인 지표로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래서 콘진원이 집계한 세계 주요국의 콘텐츠산업 규모와, Licensing International에서 발간하는 'Global Licensing Industry Study'에 나오는 라이선스 산업의 규모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은 콘텐츠산업에서는 세계 8위였지만 라이선스 산업에서는 세계 17위에 불과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이 더욱 성장하려면 콘텐츠산업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지지고 볶는 것이 아니라, IP를 활용해 다른 산업군으로 전장을 넓힐 수 있는 라이선싱 비즈니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두 지표의 집계 방식이 달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통계적 수치는 아님을 유의바람
이 즈음은 2022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발표한 'K콘텐츠 수출 경제효과(김윤지, 2022)'로 인해 콘텐츠와 소비재의 협업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K콘텐츠 수출이 1억 달러 증가할 때 관련 소비재 수출액 1.8억 달러 증가를 견인하는 무역 창출 효과가 있다고 했고, 소비재 생산 과정에서 3.4억 달러, K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1.7억 달러, 총 5.1억 달러의 생산유발효과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수출 측면에서 봐도, IP 측면에서 봐도, 결국 한국 콘텐츠산업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콘텐츠의 부가가치가 콘텐츠산업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간 경계를 넘어 확장해야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그래서 기관의 IP 사업 전략을 수립할 때 우리가 해야할 새로운 정책적 지원에 머천다이징을 중심에 두었고, 콘텐츠IP전략팀을 맡은 이후 몇몇 사업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그 결과를 트래킹하고 있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사업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차후 따로 케이스 스터디 형태로 정리해보겠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이라는 화려함을 걷어내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지금의 한국 콘텐츠산업을 평가하자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라든가 '빛좋은 개살구' 같은 표현이 떠오른다. 업계에서 한국 콘텐츠산업에 대해 어렵고 위기라고 하는데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한국은 세계 탑티어 수준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 역량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부상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런 우수한 IP 창출 역량에 합당한, 아니 더 큰 수익으로 치환해낼 수 있는 사업적 능력까지 길러내야 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머천다이징, 상품화가 있음을 잊지 말자.
참고문헌
Title Max, 2019(https://www.titlemax.com/discovery-center/the-25-highest-grossing-media-franchises-of-all-time/)
손태영, 'K-포맷 바이블', 2024
나카야마 쥰오, 『推しエコノミー 「仮想一等地」が変えるエンタメの未来』2021(https://toyokeizai.net/articles/-/461664?fbclid=IwY2xjawFYg3hleHRuA2FlbQIxMQABHZwYWCgkwq-ppeB4xrv_Weyfs_nKrH0idv5BUNzTcfo_i5Pd6G3H-6a9dA_aem_bfkr1cWsIVdeOKf_V5WqUQ)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IP산업 진흥 계획(안)', 2025
김윤지, 'K콘텐츠 수출 경제효과', 한국수출입은행,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