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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바위 계곡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이곳 붉은바위 계곡에서 마치기로 했다. 이곳은 국립공원도 대륙에서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단역에 불과한 곳으로 국립공원 관리국에서 보호하는 장소지만 라스베가스가 바로 인근에 있어서 대륙의 주연급 대자연을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전날의 데드 밸리는 광활한 대지와 경관이 뛰어난 곳이지만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여서 의아했는데 그곳과 비교 자체가 안되는 이곳이 오히려 일행의 마음을 끌었고 이곳에서 마지막 일정은 순조롭게 마치게 되어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찾아 다닐 것도 없이 눈에 보이는 작은 곳이 경계의 전부라서 살펴보기는 수월하였다. 





예전에 이곳이 미국 영토에 편입되기 전과 직후까지 멕시코 장삿꾼들이 드나들던 교통지였으며 이곳을 경유하여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유타 콜로라도 등지로 교역을 하러 다니던 곳이며 그시절 서부를 무대로 강도질로 살아가던 무법자들도 이길을 다녔다. 




신통한 것은 지금의 모든 길은 옛날에 걸어다니고 말타고 다니던 길을 그대로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현대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구불거리는 길은 인근에 크게 확장해서 사용하는 정도지만 현대의 길의 근본은 옛날 교역상들이 다니던 길이 신작로로 바뀌고 이후에 아스팔트길로 탈바꿈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황무지는 변함이 없지만 인근에 라스베가스 도박의 도시가 사막위에 건설된 이후에 관광자원으로 격상된 곳이 이곳 붉은바위 계곡이다. 




방문객이 많아서 안내센터는 어지간한 국립공원 보다 크게 지어졌고 내부의 시설도 무척 잘 만들어졌다. 




안내센터 전망대 유리창을 통해서 보는 붉은바위...




일행은 이곳을 보자마자 모두 좋아하였고 두어 곳 차를 세워서 안으로 들어갔다. 




위편에는 암벽등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의 추억은 45년 전 암벽등반하던 시절로 되돌아 가던 날이다. 지금은 늙어지고 전설의 고향에나 나와야 할 옛추억이지만 그때가 벌써 45년 세월 저편으로 흘러갔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이곳은 2억 5천만년 전부터 풍화작용에 의한 침식이 시작되었으며 눈비에 씻겨 내려가고 모래암석이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2억 5천만년을 명시한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그리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또한 세월이 흐르면 미친ㄴ 널뛰듯이 바뀌게 될 지질학의 가설일 뿐이다.  





일행은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입구에서 지질학 기록을 읽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유타주 국립공원에 비교한다면 한국의 식물도감에 나오는 "며느리 미씨개" 정도 될 이런 곳을 품평하는 것이 가당치 않아서 별 감흥이 없이 앉아있었다.  





스페인 탱고 음악처럼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일행들...




모두 좋다고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였지만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뭐냐 이건...?




다큐멘타리를 찍는 사람들...




주차장 입구에 있는 표지에는 이곳에서 자살하기 전에 긴급전화를 걸으라고 써있으며 연중무휴 어느때나 통화가 가능한 전화였다. 자살은 혼자 조용히 가는 것이지 이런데서 티를 내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표지가 붙여졌다.




모두가 흡족해 하였고 몇 마일 가량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어렵지 않은 트레일이었으며 모두가 가벼운 차림으로 물병을 들고서 바위를 걸어 올라갔다. 





간단한 곳이라 배낭을 짊어진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소풍을 온 차림으로 산을 오르고 내렸다. 




계곡을 들어가니 꽤 괜찮은 모습이었고 왕복 4 마일 가량 되는 트레일 인데 소풍객은 무척 많았다. 




길지 않은 트레일을 선정해서 가는데 보기 보다는 길이 꽤 가파르고 험했으며 경치는 이정도면 마무리 인사로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라스베가스가 보이는 언덕이 오늘의 종착지이며 이곳서 놀다가 쉬엄쉬엄 내려가면 되었고 라스베가스에는 모텔이 많아서 별도록 예약하지 않고 데이스 인 모텔을 찾아가기로 했다. 




라스베가스에서 날아온 관광 헬리콥터...





옛날 누구의 노래인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는데 여행을 마무리하는 이곳과 잘 어울릴 노래였다. "이밤이 새고나면 가야하지만 그대 그대 정말 외로워 말아요."  




그러나 아쉬움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고 본국으로 귀환하면 본업에 충실하면서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해야 할텐데 부디 이번 여행이 청사에 길이 빛나는 여행으로 추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모두 모여앉아 빈들을 바라보던 시간이었고 이제 이곳을 내려가면 바로 인근에 있는 라스베가스로 이동해야 한다. 





신기한 것은 자연은 도처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들게 되어 있다. 


장대한 경관이 도처에 널린 유타주에 있었으면 명함을 새기지도 못했을 붉은바위산이 라스베가스 인근에 있으니 호랑이 없는 산중에서 여우가 왕노릇 하는 격이 되었지만 이런 곳에서 여우가 왕을 하는 것도 대자연의 뜻으로 알면 된다.  






옛날에 이곳에서 모래바위를 떠서 건축자재로 판매했는데 지금은 보존지역이 되어 광산은 없어졌다. 이런 올망졸망한 모래바위가 도처에 널린 곳을 내려와 모두의 평판을 들어보니 무척 좋은 곳이었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순환도로를 한바퀴 돌아 라스베가스로 향하면서 이번 여행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 지었다. 




맨하탄에 있는 건물을 본떠서 자그마한 규모로 특색이 있도록 만든 호텔,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사막에 이런 대규모 시티를 건설한 이들의 지혜가 놀라웠고 지금도 외곽으로 계속 확장하면서 새로운 건물이 건설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서부시대 스타일의 바베큐로 식사를 하였고 이번 여행의 평가는 대단한 여행이었다고 모두가 한마디씩 해서 다행스러웠는데 여행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정해놓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명승지를 둘러본 것이고 가장 불편했던 것은 모텔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다닌 때문에 가격도 비싸고 정족수에 맞추기 어려웠던 것이다.


처음에는 유타 주와 아리조나 주를 중심으로 한 8대 캐년을 둘러보는 것이 본국의 8848 해외 트래킹 전문 여행사 계획이었으나 미국에 도착하고 내게 칼자루가 넘어온 때부터는 그정도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연급 명승지를 모조리 답사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모두 15개 명소를 살펴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8대 캐년이라는 것은 어느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시간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명소 20 곳은 무난했는데 15개로 그친 것이 아쉬웠다.  




패키지 관광객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은 본인도 다녀보지 않은 곳을 아는체 버스 안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레발이 심하고 지나는 길에 발에 걸리는 돌뿌리 정도로 치부되어야 마땅할 대륙에서는 리사이클 재활용품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을 명소로 떠벌려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만 그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세상을 정직하게 살고 특히 한국에서 많은 금전을 지출하여 미국관광을 오는 동포를 사골처럼 욹궈먹는 수입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문화와 대자연을 소개하는 전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분수쇼를 보러간다고 해서 그곳에 내려주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맨하탄에 길들여진 눈이라서 라스베가스를 포함한 지방 도시는 눈에 차지도 않고 여행중에도 가지 않으며 어쩌다 잠시 들릴 때 있지만 음식을 구입하는 정도로 그치고 쏜살처럼 외곽으로 달려서 떠난다.  




렌트를 한 두 대의 미니밴을 모두 세차해서 돌려주기로 하였으며 인근의 친절한 세차장으로 갔다. 

크라이슬러 미니밴은 다음날 7시간 거리의 솔트레이크 시티 공항으로 반환하고 그곳에 맡겨놓은 나의 여행밴을 찾아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일행 모두가 본국으로 떠나기 전에 아울렛에서 샤핑을 하는 중에 세차를 하여 되돌아 왔고 마지막 저녁식사는 몽골리안 바바큐 식당으로 정했다. 한가한 시간대의 식당에 찾아들어 각자 식성에 따라 음식을 담아 요리사에게 주고 기다리던 시간이었으며 몽골리안 바베큐는 한국인 입맛에 잘 맞기 때문에 이곳을 선별한 것이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평가회를 하며 인사하는 시간이었는데 나의 차례에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2주 동안 다니며 정이 든 사람들과 작별하는 상황이 내게는 잘 맞지 않았다. 모두 불만이 없이 함께 여정을 마무리하여 감사한 날이었는데 여행을 하면 다시오지 않도록 한번에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번에 함께하며 느낀점은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대중 앞에서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이고 (물론 경상도 사람이 4명이나 되는 것을 감안하기는 해야 하지만...) 또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었는데 한국서는 음주가 관대하여 그럴 수 있지만 술은 대화를 위해서 조금씩 입에 대었다 떼는 서구식 음주문화로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여행자는 음식을 간단히 먹는 것이 관습화 되어야 하는데 국물의 민족답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끓이는 음식으로 시간의 허비가 많고 번거로움이 많았다. 여행 중 여러번 말한 것이지만 남을 침략하여 세계사에 강력한 이름을 남긴 국가와 민족은 정벌 때 음식을 매우 간단히 먹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이라서 밥하고 국을 끓이고 장을 담그어 먹는 음식문화가 있어서 남을 침략해보지도 못하고 조상 대대로 침략을 당하는 설움 속에서 살았는데 세계역사를 살펴보면 음식을 간단히 먹는 민족일수록 강성하여 남을 지배하고 산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몽고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면 피난 가면서도 국과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지어서 먹느라 다양한 피해를 당하였고 반격하여 적을 치러가는 길에도 솥을 걸어 국을 끓여야 했으니 전세를 뒤집어 승기를 잡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익숙한 음식문화라서 집에서는 국을 끓이고 밥을 해도 뭐라할 수 없으나 효과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콜라를 곁들인 샌드위치 종류에 익숙한 식성이 되어야 한다. 코카콜라가 해롭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지만 이번에 콜라 지존의 건강함을 보았으니 코카콜라가 해롭지 않다는 것은 임상적으로 증명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행중에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콜라를 쉼없이 마시는 것은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하게 길이 빛나는 음료수가 코카콜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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