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민지

9. 전회사(5)

by 제임스 박

며칠 뒤, 주간회의를 가졌다.

출근하자마자 대리가 회의 자료를 취합하고, 팀장에게 제출할 최종본을 만들고 있었다.

민지는 늘 그렇듯 정리된 내용을 미리 보내둬 부담을 덜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나가려던 찰나,
회의 5분 전, 대리가 민지에게 다가왔다.


“민지 씨, 자료 그거 다시 정리해서 보내줘요. 엑셀 말고 파워포인트로.”

“지금이요? 회의 시작까지 5분 남았는데…”

“그러니까 빨리 해야지.”


민지는 당황했지만, 표정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이고 파일을 다시 열었다.
파워포인트를 켜고 시계와 화면을 번갈아 봤다.
손끝이 떨렸지만 아무도 ‘지금은 무리 아닌가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9시 55분.
회의는 정각 10시에 시작이었다.

민지는 엉겨붙은 표정으로 겨우 파일을 전송했다.
파일명은 ‘주간회의_수정본_최종진짜.pptx’.


회의가 끝난 뒤, 대리는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좀 더 일찍 보내줘요. 혼자 오래 있더니 손이 느려졌네.”


팀장은 아무 말 없었다.
그저 턱짓으로 자리를 정리하라는 신호만 보냈다.


그날 퇴근길, 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도, 억울함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게 너무 조용했다.


‘나만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곳이 이상한 걸까…’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민지는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막 넘긴 사무실.

과장이 자리로 돌아오다 민지를 힐끔 보더니 말을 걸었다.


“민지 씨,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아휴, 큰일이네~ 애 낳으려면 얼른 연애하고 결혼해야지"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웃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조용한 공기 속에서 모니터 타자 소리만 들려왔다.


민지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말 한마디가 목구멍에서 걸려 올라오다, 삼켜졌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무례해질까봐, 대답을 하면 웃음거리가 될까봐.


그 순간, 스스로도 이상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건지.
왜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 건지.





저녁 회식 자리였다.
술잔이 몇 번 오가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팀장, 과장, 대리, 그리고 몇몇 팀원과 함께 앉아 있었다.


“요즘은 애를 안 낳아서 문제라니까요.”

“맞아요, 빨리 낳고 복귀해야죠. 그게 본인한테도 좋아요.”

“늦게 낳으면 복귀하고 적응 못 해요. 지난 회사에선 그런 사람 결국 나가더라고요.”


과장과 대리가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에 다른 팀원 하나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 뒤에 감춰진 공기는 묘하게 차가웠다.

누구도 대놓고 공격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은 하나같이 벽처럼 느껴졌다.


민지는 술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민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웃음 속에서 자신의 경험만을 말할 뿐이었다.


말은 농담이었지만,

그 안에는 무언의 기준, 침묵 속 경고가 깔려 있었다.


민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가 조용히 끓었지만,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

술잔에 비친 민지의 얼굴은, 작은 틀 안에 갇힌 것처럼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 토 연재
이전 08화이상한 나라의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