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문화를 죽이는 과보호 정책
19화. 프랑스 문화 보호주의의 역설
― 자국 문화를 죽이는 과보호 정책
"문화는 상품이 아니다!"
1993년,
GATT 협상에서 프랑스가 외친 구호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대중문화의 침공에 맞서
프랑스 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의지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문화적 예외주의'다.
영화, 음악, 출판, 방송 등 모든 문화 분야에
복잡한 보호 규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30년 후 결과는 어떨까?
영화 쿼터제의 빈약한 성과
프랑스는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40%를
프랑스 영화로 의무화했다.
또한 TV 방송시간의 60%를
프랑스 프로그램으로 채우도록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프랑스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35%로
쿼터보다 낮다.
의무적으로 상영은 하지만 관객들이 외면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질적 하락이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상업적 매력도가 떨어졌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잃은 영화들만 양산됐다.
음악 산업의 20% 규제
라디오 방송에서는 프랑스어 노래를
20% 이상 틀어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
'프랑스어 보호'라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프랑스 가수들은
글로벌 시장을 포기하게 됐다.
프랑스어로만 노래하면 해외 진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음악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스웨덴은 어떨까?
ABBA, 에이스 오브 베이스, 록세트 등
글로벌 히트 가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했다.
영어로 노래해도 스웨덴 음악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출판업계의 고정가격제
프랑스는 책 정가제(Prix unique du livre)를 운영한다.
출간 후 2년간은 정가의 5% 이상 할인할 수 없다.
서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프랑스 책값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20-30% 비싸다.
독서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전자책 시장 발달도 늦어졌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서점도
프랑스에서는 무료 배송을 할 수 없다.
서점 보호 명목으로 배송비를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불편만 가중시킨 규제다.
넷플릭스 콘텐츠 의무화
최근에는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에도
프랑스 콘텐츠 의무 편성을 강요했다.
매출의 25%를 프랑스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진짜 경쟁력 있는 콘텐츠 제작보다는
의무 이행용 저질 콘텐츠 남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청률과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났다.
한류의 대조적 성공
한국은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정부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민간의 창작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규제 완화와 해외 진출 지원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 K-pop, K-드라마, 영화 등이
전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프랑스가 보호주의로 움츠러든 사이
한국은 개방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영국의 창의 산업 육성
영국도 비슷한 접근을 했다.
BBC라는 강력한 공영방송이 있지만
민간 창작자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줬다.
헤리 포터, 셜록 홈즈 같은 글로벌 콘텐츠가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특히 런던은 전 세계 창작자들이 모이는
문화 허브 역할을 한다.
보호주의가 아닌 개방주의가
문화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미국 대중문화 헤게모니의 비밀
미국이 전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이유는
정부 보호 때문이 아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자유로운 경쟁 환경이
창의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절반이 외국인 감독 작품이다.
국적보다는 재능이 우선되는 개방적 시스템이
미국 문화 산업의 경쟁력이다.
프랑스 문화계의 관료화
보호주의 정책의 부작용은
문화계의 관료화다.
창작자들이 시장과 관객보다는
정부 관료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영화 제작 지원을 받으려면
복잡한 서류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진짜 창의적인 작품들이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
대신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들만
지원을 받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디지털 시대의 부적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시대 변화에 대한 부적응이다.
유튜브, 틱톡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프랑스 크리에이터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존 규제 틀에 맞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부도 혼란스러워한다.
그 사이 글로벌 플랫폼들이
프랑스 문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문화적 정체성 혼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젊은 세대는
자국 문화보다 외국 문화에 더 친숙하다.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케이팝,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려던 프랑스 문화는
정작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보호주의가 오히려 문화의 활력을 죽인 결과다.
오늘의 교훈
진정한 문화 보호는
보호막을 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기르는 것이다.
과보호는 문화를 온실 속 화초로 만들어
생명력을 잃게 한다.
문화의 세계화 시대에는
개방과 경쟁이 생존의 조건이다.
다음 화 예고
20화에서는 '잘못된 선택들' 편의 총정리를 합니다.
올랑드의 부자 징벌부터 문화 보호주의까지,
프랑스가 위기에 대응하며 내린 잘못된 정책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더 큰 문제를 만들었는지 분석합니다.
[프랑스 : 복지국가는 죽지 않는다]
프랑스가 선택한 잘못된 길
2부 9화. 프랑스 문화 보호주의의 역설 – 자국 문화를 죽이는 과보호 정책
(이 글은 프랑스 문화부 통계, 유럽 창의산업 보고서, 글로벌 문화 콘텐츠 시장 분석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