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BRICS가 탈달러를 외치는데 왜 안 되나

― 연합은 제국을 이길 수 없다: 신뢰 없는 동맹의 한계

by 박상훈

9화. BRICS가 탈달러를 외치는데 왜 안 되나

― 연합은 제국을 이길 수 없다: 신뢰 없는 동맹의 한계


9화. BRICS가 탈달러를 외치는데 왜 안 되나.png


2024년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 카잔에서 제16차 BRICS 정상회담이 열렸다.


푸틴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서방의 달러 무기화에 맞서 우리는 대안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디 총리도 박수를 친다.


하지만 회의장 뒤편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인도 대표단은 중국 대표단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2020년 갈완 계곡 충돌의 상처가 여전했다.


사우디 왕세자는 스마트폰으로 뉴욕 증시를 확인하고 있었다.

자국 국부펀드가 투자한 미국 주식 포트폴리오 때문이었다.


2024년 말 기준, BRICS는 9개국이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에

2024년 1월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UAE가 합류했다.


2025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가 가입해 10개국이 되었다.

이들의 인구는 약 32.5억 명으로 세계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구매력 평가 기준 GDP는 세계의 35%에 달한다.

석유 매장량은 세계의 약 40%, 천연가스 매장량은 50% 이상이다.

숫자만 보면 미국(GDP 29조 달러, 인구 3억 4천만)을 압도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BRICS 공통 통화는 여전히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BRICS 회원국끼리 거래할 때도 대부분 달러를 쓴다는 것이다.


인도 수출의 86%가 달러로 청구되고,

브라질 수출은 거의 전부가 달러다.

2025년 기준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국제 결제의 약 50%를 차지한다.


왜 이렇게 거대한 연합이 달러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가?


BRICS의 딜레마: 적의 적이 친구는 아니다


반미(反美)라는 공통분모로 뭉쳤지만,

그 다음부터 모든 것이 갈라진다.


중국 vs 인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


2020년 6월 15일, 갈완 계곡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충돌했다.

인도군 20명이 사망했고, 중국은 4명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2026년 1월 현재,

4,057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따라 양국 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QUAD(쿼드)를 결성해 중국을 견제한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군사 동맹을 심화하며 맞선다.


인도의 모순적 행보는 명확하다.

BRICS에서는 중국과 함께 탈달러를 외치지만,

QUAD에서는 중국 봉쇄에 앞장선다.


이런 나라들이 공통 통화를 쓸 수 있을까?


사우디 vs 이란: 1,400년 종교 분열


BRICS 확대로 이란은 2024년 1월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가입 초대를 받았지만 2026년 1월 현재까지 검토 중이다.


사우디는 수니파의 맹주이자 70년 미국 동맹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이자 45년째 미국과 적대한다.

양국은 예멘, 시리아, 레바논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7년간의 단교를 끝내고 외교관계를 복원하긴 했다.

하지만 1,400년 종파 갈등의 구조적 대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질문이다.

7년간 대사관 문을 닫았다가 막 다시 연 나라들이,

공통 결제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까?


공통 통화의 불가능한 수학


경제학에는 불가능한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있다.

세 가지 중 두 개만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세 가지:
첫째, 자유로운 자본 이동
둘째, 독자적 통화 정책
셋째, 안정적 환율


유럽은 유로화를 만들면서,

자본 이동의 자유와 안정적 환율을 선택했다.

대신 독자적 통화 정책을 포기했다.

이제 그리스도 독일도 유럽중앙은행(ECB)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BRICS는 어떤가?

중국은 자본 통제를 유지하면서 독자적 통화 정책을 원한다.

인도는 자본 이동의 자유와 독자적 통화 정책 둘 다 원한다.

러시아는 제재로 인해 선택권 자체가 제한돼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UAE의 1인당 GDP는 51,000달러다.

에티오피아는 1,000달러다. 51배 차이다.

러시아는 17,000달러, 중국은 14,000달러, 인도는 2,800달러다.


유로존도 독일과 그리스 간 소득 격차 때문에

2010년 재정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BRICS의 격차는 유로존보다 훨씬 크다.


50배 소득 격차가 나는 경제를 하나의 통화로 묶는다?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루피-루블 결제의 비극적 실험


2022년, 러시아와 인도가 달러 없는 거래를 시도했다.

메커니즘은 간단했다.


인도가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면 루피로 지불한다.

러시아가 인도에 무기를 수출하면 루블로 받는다.


그런데 2023년, 문제가 터졌다.

인도가 러시아 석유를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러시아 은행에 수백억 달러어치 루피가 쌓였다.

러시아가 인도에서 살 수 있는 건 차, 향신료, 섬유 정도였는데,

러시아가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2023년 5월, 러시아 외무장관 라브로프가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는 루피가 너무 많은데 쓸 곳이 없다. 이것을 다른 통화로 바꿔야 한다.”


결국 러시아는 쌓인 루피를 달러나 위안화로 환전해서 썼다.

교훈은 명확하다.


무역 불균형이 있으면 자국 통화 결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원하는 제3의 통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통화는 지금까지 달러였다.


네트워크 효과: 달러의 보이지 않는 성벽


달러의 진짜 힘은 네트워크 효과다.


전화기 1대는 쓸모없다.

전화기 100만 대가 연결되면 필수품이 된다.

전화기 10억 대가 연결되면 바꿀 수 없는 인프라가 된다.


달러 네트워크는 전 세계 80억 명이 사용한다.

SWIFT, CHIPS, Fedwire 같은 금융 인프라가 깔려 있다.

미국 국채 30조 달러, 주식시장 시가총액 60조 달러 이상의 자산 시장이 존재한다.


BRICS 네트워크는?

32.5억 명의 회원국 인구가 있지만,

그들조차 내부 거래에 달러를 선호한다.


그래서 BRICS의 금융 인프라는 아직 구상 단계다.

자산 시장은 각국 개별로 흩어져 있고

유동성이 부족하다.


한국 기업이 브라질과 거래할 때를 생각해보자.

달러로 하면 즉시 전 세계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고 환율 리스크가 최소화된다.

브라질 헤알로 하면?

브라질에서만 쓸 수 있고, 환전할 때마다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달러를 선택한다.


BRICS 내부도 달러가 지배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BRICS 회원국끼리 거래할 때도 달러를 쓴다.


Carnegie Endowment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수출의 86%가 달러로 청구된다.

인도가 미국에 수출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브라질 수출은 거의 전부가 달러로 청구된다.

중국의 국경 간 결제 중 47%가 달러다(무역 결제만 따지면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첫째, 환율 기준이 필요하다.

브라질 헤알과 인도 루피의 환율을 어떻게 정할까?

결국 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둘째, 거래 비용이 싸다.

직접 거래보다 달러를 중개로 쓰는 게 더 빠르고 저렴하다.


셋째, 신뢰가 없다.

서로의 통화를 믿지 못한다.

탈달러를 외치는 BRICS조차 달러 없이는 거래할 수 없다.


미국의 반격: 채찍과 당근


BRICS가 진지하게 달러 대체를 시도하면

미국은 가만있지 않는다.


미국 시간 기준 2024년 11월 30일,

트럼프 당선인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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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S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우리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이들 국가가 새로운 BRICS 통화를 만들지도 않고,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며, 훌륭한 미국 경제에 판매하는 것에 작별 인사를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호구'를 찾아가라! BRICS가 국제 무역에서 미국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시도하는 국가는 미국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 시장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대미 수출은 439억 달러, 인도는 794억 달러였다.

브라질도 미국에 상당량을 수출한다.


BRICS는 딜레마에 빠진다.

탈달러를 추진하면 미국 시장 접근이 차단된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탈달러를 포기하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다.


2026년 현실 점검: 여전히 달러 제국


BRICS 15년 역사의 성과표를 정리해보자.


성공한 것:
신개발은행(NDB)을 2015년에 설립했다.

비상준비협정(CRA)도 같은 해 1000억 달러 규모로 구축했다.


실패한 것:
공통 통화는 여전히 구상 단계다.

결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탈달러는 실패했다.


2025년 국제 결제 통화 비중을 보면,

달러가 약 50%로 여전히 압도적이다.

유로는 약 24%, 엔화는 약 7%, 위안화는 약 3%다.


BRICS 공통 통화의 비중은?


0%다.


오늘의 교훈


“연합은 제국을 이길 수 없다.
제국은 시스템이고, 연합은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BRICS에는 다섯 가지 구조적 한계가 있다.


첫째, 내부 분열이다. 국경 분쟁, 종파 갈등, 패권 경쟁이 끊이지 않는다.

둘째, 경제 이질성이다. 50배 소득 격차에 발전 단계도 제각각이다.

셋째, 신뢰 부족이다. 서로의 통화조차 믿지 못한다.

넷째, 네트워크 효과다. 달러의 편의성이 압도적이다.

다섯째, 대안 부재다. 달러 대신 쓸 만한 공통 자산이 없다.


달러 패권은 미국의 힘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다.


대안이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현실이 달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1화: Fed가 환율을 정한다
2화: 달러는 종이가 되었다
3화: 석유는 달러로만 산다
4화: 미국 적자는 시스템이다
5화: SWIFT가 통제한다
6화: 우리는 자발적으로 돈을 바친다
7화: 중국조차 그 구조를 깰 수 없다
8화: 비트코인마저 달러 시스템에 흡수되었다
9화: BRICS 연합도 달러를 이길 수 없다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책상 모니터에는 아홉 개의 창이 켜져 있다.


Fed 의장의 기자회견, 국제 유가 시세,

미국 국채 금리, SWIFT 시스템 상태,

국민연금 미국 투자 수익률, 위안화 환율,

비트코인 시세, 그리고 BRICS 정상회담 뉴스.


하지만 BRICS 뉴스는 지정학적 소음일 뿐 금융 시장의 신호는 아니다.


한국의 통화 주권은


- 1971년 닉슨이 닫았고,

- 1974년 키신저가 자물쇠를 채웠고,

- 미국 국채 시장이 열쇠를 쥐고 있고,

- SWIFT가 열쇠구멍을 지키고 있고,

- 한국이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문은

-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도 못 열고,

- 탈중앙화 비트코인도 못 열고,

- 세계 인구 40%의 BRICS 연합도 그 문을 부술 수 없다.


다음 화 예고

9화까지 우리는 “왜 달러를 이길 수 없는가”를 봤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한국은 달러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나”


중국도, 비트코인도, BRICS도 실패했다면,

한국은?


현실적 선택지는 세 가지다.

현상 유지로 달러 시스템에 완전히 편승할 것인가.

에너지와 통화를 다변화해 부분적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가.

지역 블록에 참여해 전략적 제휴를 모색할 것인가.


일본은 어떻게 1조 2,000억 달러 미국 국채로

"조용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스위스는 어떻게 강대국 사이에서 금융 주권을 지키는가?


한국이 종속된 번영을 넘어

자율적 생존을 모색할 현실적 방법은 무엇인가?


10화에서는 시리즈 1부의 결론과 한국의 냉정한 좌표를 확인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통화 주권의 신화

1부 9화. BRICS가 탈달러를 외치는데 왜 안 되나

(이 글은 Wikipedia: 16th BRICS Summit (2024년 10월 22-24일 카잔 회의), Wikipedia: BRICS (회원국 및 통계), Wikipedia: 2020-2021 China-India skirmishes (갈완 계곡 충돌), Wikipedia: Iran-Saudi Arabia relations (2023년 3월 중국 중재 외교관계 복원), Wikipedia: BRICS 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2015년 1000억 달러 규모 구축), Bloomberg 2023년 5월: Russia Says It Has Billions of Indian Rupees That It Can't Use (러시아 루피 적체 문제), Reuters 2023년 5월: India, Russia suspend negotiations to settle trade in rupees (루피-루블 협상 중단), Federal Reserve 2025 Edition: The International Role of the U.S. Dollar (달러 국제 결제 약 50% 비중),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2023년 12월: The Difficult Realities of the BRICS' Dedollarization Efforts (BRICS 회원국 수출의 달러 청구 비중 - 인도 86%, 브라질 거의 전부, 중국 47%), Valdai Club 2024: BRICS+ Energy Report (석유 매장량 약 40%, 천연가스 매장량 50% 이상), Statista: Total population of the BRICS countries (2023년 32.5억 명, 40% 이상), Statista: BRICS vs G7 GDP share (PPP 기준 35%), New Development Bank 공식 웹사이트 (2015년 설립), Siblis Research: US Stock Market Capitalization (2024년 62.2조 달러), US Treasury Fiscal Data: Historical Debt Outstanding (2024년 9월 30.3조 달러), Trading Economics: India Exports to United States (2024년 794억 달러), AP News 2024년 11월: Trump threatens 100% tariff on BRIC bloc, IMF World Economic Outlook GDP per capita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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