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은행은 구제하고 서민은 파산시킨 2008년

7,000억 달러는 월스트리트로, 780만 가구는 길거리로

by 박상훈

28화. 은행은 구제하고 서민은 파산시킨 2008년

― 7,000억 달러는 월스트리트로, 780만 가구는 길거리로


28화. 은행은 구제하고 서민은 파산시킨 2008년.png


2008년 10월 3일 금요일 오후, 워싱턴DC 백악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긴급경제안정화법에 서명했다.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이었다.

부시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 전체가 무너집니다.”

같은 시각, 플로리다주 탬파시.

마리아 곤잘레스(43세)는 집 앞에 붙은 압류 통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2006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다. 처음 2년은 이자만 내는 조건이었다. 집값이 오르면 재융자하면 된다고 중개인이 말했다.


하지만 집값은 떨어졌고, 2008년 원금 상환이 시작되자 월 납입금이 두 배로 뛰었다.

마리아는 “대출 조건을 조정해줄 수 없나요?” 라고 은행에 전화했다.

은행 직원은 냉정했다. “규정상 불가능합니다.”


정부는 은행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마리아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7,000억 달러의 분배: 누가 얼마를 받았나


TARP(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의 승인 한도는 7,000억 달러였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4,440억 달러였다. 명목은 부실 자산 매입이었지만, 실제로는 은행에 직접 자본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AIG 보험에 1,820억 달러가 들어갔다. 시티그룹은 450억 달러를 받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450억 달러, JP모건 250억 달러, 웰스파고 250억 달러, 골드만삭스 100억 달러, 모건스탠리 100억 달러. 월스트리트 거대 은행들이 줄줄이 구제받았다.


이 돈으로 은행들은 살아났다. 2009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골드만삭스는 2009년 순이익 134억 달러를 기록했다. 급여와 보너스를 포함한 총보상 풀은 162억 달러였다. 구제금융을 받고 1년 만에 직원 1인당 평균 49만 8,000달러의 보상을 나눠준 것이다.


반면 서민을 위한 직접 지원은 초라했다.

TARP 중 주택 소유자 지원 프로그램(HAMP)에 배정된 금액은 500억 달러였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314억 달러에 그쳤다. 당초 목표 400만 명 중 실제 영구 혜택을 본 사람은 약 160만 명에 불과했다.


신청자의 약 70%는 서류가 복잡하고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780만 가구의 압류: 로보 사이닝의 참극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에서 완료된 주택 압류는 약 780만 채였다. CoreLogic의 10년 회고 보고서가 집계한 수치다. 압류 신청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위기의 절정이었던 2010년 9월 한 달에만 12만 건의 압류가 완료됐다.


압류 과정은 냉혹했다. 은행은 90일 연체 시 압류 통지를 보냈다. 법원 명령이 떨어지면 보안관이 와서 집을 비우라고 했다. 가구는 길거리에 내던져졌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로보 사이닝(Robo-signing) 스캔들이었다. 은행들은 하루에 수천 건의 압류 서류를 처리해야 했다. 직원들은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사인했다. 어떤 직원은 하루에 수천 건의 압류 서류에 서명했다. 한 건당 몇 초도 안 걸린 셈이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실수가 발생했다.

이미 대출을 다 갚은 집이 압류되기도 했다. 잘못된 주소의 집이 압류되기도 했다. 이라크에서 복무 중이던 텍사스 주방위군 대위는 집에 돌아와 집이 팔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군 복무자는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데도 은행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스캔들은 결국 2012년 5대 은행이 연방·주 정부와 260억 달러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2013년에도 10개 은행이 추가로 85억 달러를 더 내놨다.


대마불사, 소마필사: 크면 구제하고 작으면 버린다


정부가 은행을 구제한 논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였다.


AIG가 망하면 AIG와 거래한 수백 개 은행이 연쇄 도산한다. 시티그룹이 망하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무너진다. 골드만삭스가 망하면 파생상품 시장이 마비된다. 이 은행들은 너무 커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논리.


하지만 마리아 곤잘레스는? 그녀가 파산해도 경제 전체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780만 가구가 집을 잃어도 금융 시스템은 작동한다. 작으면 망해도 된다는 식이다.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원인은 은행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 그런데 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은행을 살리고, 서민을 버렸다.


원인 제공자는 구제하고, 피해자는 파산시킨 것이다.


도덕적 해이의 극치: 납세자 돈으로 보너스 파티


2009년 3월,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AIG가 임원들에게 1억 6,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AIG는 정부로부터 1,820억 달러를 받아 간신히 살아난 회사였다. AIG CEO는 뻔뻔하게 “이 보너스는 계약상 지급 의무가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마찬가지였다. WSJ 보도에 따르면, 2009년 월스트리트 주요 은행들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총보상(급여·보너스·복리후생 포함) 규모는 약 1,4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을 넘어섰다. 구제금융을 받아 살아난 직후였다.


당시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는 훗날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불공평해 보이는 일을 해야 했다. 금융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서는 화재를 일으킨 자들에게 물을 뿌려줘야 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은행을 처벌하느라 시간을 끌면 경제 전체가 망가진다.

일단 은행을 살려야 대출이 돌고, 기업이 살고, 일자리가 생긴다. 낙수 효과였다.


하지만 낙수는 없었다. 은행들은 지원받은 돈으로 대출을 늘리는 대신 자신들의 부실을 메우고 보너스를 챙겼다. 중소기업 대출은 오히려 줄었고, 실업률은 10%까지 치솟았다.


보이지 않는 희생자들: 자살률 급증


2008년 위기의 가장 비극적인 통계는 자살률 증가였다.


미국 자살률은 2007년 인구 10만 명당 11.3명에서 2010년 12.4명으로 급증했다.

학술 연구들은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미국 내 수천 명의 추가 자살과 연관된다고 추정한다. BMJ에 게재된 연구는 2009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약 2,490명의 추가 자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또 다른 연구는 금융위기 전체 기간에 걸쳐 미국에서 약 5,000명의 추가 자살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실업률이 두 배 가까이 뛰는 동안, 일자리와 집을 잃은 이들의 고통은 통계 뒤에 조용히 쌓여갔다.


집을 잃은 사람들의 우울증과 자살 시도율은 일반인의 3배였다. 50대 백인 남성의 자살률이 특히 높았다. 평생 일해서 마련한 집을 잃고, 나이가 들어 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뉴스가 되지 않았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은 1면 톱이었지만, 플로리다 교외에서 압류당한 집 주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는 지역 뉴스 말미에 30초 나오고 끝이었다.


99% 대 1%: 분노의 폭발


2011년 9월 17일,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텐트를 치고 점거에 들어갔다.

“점령하라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슬로건은 명확했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상위 1%가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99%는 고통받는다는 메시지였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수십 개 도시에서 점거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내놓지 않았다. 조직도, 리더도 없었다. 하지만 메시지는 강력했다.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메시지였다. 2008년 위기로 서민은 집을 잃었는데, 은행가는 보너스를 받는다.


이게 정의인가?


2011년 11월 15일, 블룸버그 시장 지시로 경찰이 주코티 공원을 급습해 59일 만에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운동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1% vs 99%라는 프레임은 미국 정치 담론에 영구히 각인되었다.

버니 샌더스의 2016년 대선 돌풍, 엘리자베스 워런의 부유세 제안, 트럼프의 포퓰리즘.

모두 이 분노의 연장선이었다.


더 커진 승자들: 대마불사의 심화


위기 이후 월스트리트는 어떻게 변했을까? 더 커졌다.


2008년 이전보다 현재 5대 은행의 자산 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위기 때 망한 중소형 은행들을 헐값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주당 $2(후에 $10으로 인상)에 베어스턴스를, 19억 달러에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약 500억 달러에 메릴린치를 인수했다. 웰스파고는 약 118억 달러에 와코비아를 인수했다.


대마불사는 더 심해졌다. 2025년 미국 50대 은행의 합산 자산은 25.4조 달러에 달하며, 미국 은행권은 2025년 한 해에만 3,000억 달러의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했다. 2008년 위기로 작은 은행들이 사라지는 동안, 거대 은행들은 더욱 비대해졌다. 이제 그들은 망하기에는 너무 커서가 아니라 <망하면 지구가 멸망해서>가 되었다. 정부는 그들을 절대 죽일 수 없다.


그들도 그걸 안다.


TARP의 최종 성적표: 우리가 몰랐던 반전


2023년 9월, TARP의 마지막 남은 투자가 상환되며 프로그램이 완전히 종료됐다.


CBO(미 의회예산국)의 최종 보고서(2024년 4월)에 따르면, TARP 최종 비용은 약 310억 달러였다. 은행 지원 부문은 오히려 납세자에게 90억 달러의 순이익을 가져다줬다. 대신 손실을 낸 것은 주택 소유자 지원 프로그램(310억 달러 손실) 과 자동차 산업 구제(120억 달러 손실)였다.


이것이 이 시스템의 가장 날카로운 아이러니다. 납세자의 돈이 진짜 손실을 낸 곳은 서민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은행들은 결국 돈을 다 갚았고, 일부는 이자까지 얹어서 돌려줬다. 반면 집을 잃어가는 서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프로그램은 절반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고, 그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은행에 퍼줬다는 분노의 서사는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이해되지만, 재무적 결과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 구조가 공평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의 교훈: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도 1997년 IMF 위기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정부는 168조 7,000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렸다. 그 돈은 국민 세금이었다. 은행들은 살아나서 수조 원의 이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반면 수많은 가장들은 정리해고를 당했고,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앉았다.


2026년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약 1,900조 원으로 GDP 대비 세계 38개국 중 2위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이 현재 진행형이다. 전체 PF 익스포저는 약 200조 원 규모이며, 2024년 9월 기준 PF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23년 말 5.2%에서 11.3%로 급등했다.


정부는 또 선택해야 한다.

건설사와 금융사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빚에 허덕이는 가계를 살릴 것인가.


역사는 말해준다.

정부는 항상 시스템 리스크 방지라는 명분으로 가진 자를 먼저 구한다.

그리고 IMF 사태 때 투입된 168조 7,000억 원 중, 2025년 말 기준 아직 약 46조 5,000억 원이 회수되지 않았다.


그 돈은 여전히 국민의 빚으로 남아 있다.


오늘의 교훈


“위기는 가난한 자에게 가장 먼저 오고, 가장 늦게 떠난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정부의 방조가 만든 인재였다. 하지만 그 대가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서민들이 치렀다.


은행은 구제받았고, 서민은 파산했다. CEO는 보너스를 받았고, 노동자는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TARP가 은행에 퍼준 돈은 결국 다 돌아왔지만, 서민 지원 프로그램의 돈은 절반도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것이 2008년이 남긴 가장 뼈아픈 진실이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21화에서 제조업이 죽고 금융이 살았고, 22화에서 골드만삭스가 정부를 장악했고, 23화에서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했고, 24화에서 블랙록이 11조 달러로 시장을 지배했고, 25화에서 HFT가 0.001초로 개인을 털어갔고, 26화에서 2008년 구조가 더 크게 재현되고 있고, 27화에서 신용평가사가 쓰레기에 AAA를 매겨줬다면, 28화에서 본 것은 그 모든 시스템의 최종 피해자가 누구인지다.


바로 당신이다.


Part 3를 마치며


Part 3에서는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의 민낯을 봤습니다. 제조업이 죽고 금융만 비대해진 기형적 구조,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골드만삭스, 블랙록, 헤지펀드들의 권력을 확인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거대한 부를 만들어냈지만, 그 부는 극소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9%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Part 4: 상위 1%가 부를 독식하게 된 과정 (29~35화)

이제 시선을 월스트리트에서 메인스트리트로 돌립니다.

29화: 상위 1%가 31%를 가진 나라

미국 상위 1%의 자산이 하위 50% 전체 자산보다 많아진 이유. 그리고 이 불평등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자유의 나라가 왜 계급 사회인가에 대해, Part 4에서 계속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

3부 8화 (시리즈 28화). 은행은 구제하고 서민은 파산시킨 2008년

(이 글은 U.S. Treasury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TARP)” 공식 보고서, CBO “Final Report on the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April 2024), Congressional Oversight Panel “TARP Reports”,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Timothy Geithner “Stress Test: Reflections on Financial Crises” 회고록, CoreLogic “United States Residential Foreclosure Crisis: Ten Years Later” (2017), CDC 자살률 통계, ProPublica “Bailout Tracker” 데이터베이스, Occupy Wall Street 운동 기록, U.S. Department of Justice 로보사이닝 합의 발표, 한국 금융위원회 공적자금 운용현황(2025년 4분기), 한국은행·금융감독원 가계부채·부동산PF 통계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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