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아야 할 것들

숨쉴수 없는 세계의 사물, 그리고 지각의 변동

by 윤담

어느 날 나는 내가 너무 오랫동안 내 안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생각은 생각을 다시 불러오고, 감정은 그 감정의 잔향을 계속 울려서
결국 내 마음은 나 자신만을 향해 굽어 있는 좁은 통로처럼 변해 있었다.
그 통로는 벽도 높고 바닥도 깊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숨이 잘 들이켜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주 작은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사유의 시선을 내 내부에서 떼어
내 주변에 놓인 사물들로 옮기는 일.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나를 잠식하던 생각의 흐름을 외부의 사소한 존재들에 잠시 걸어두는 정도였다.

사물들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었다.
빛의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그림자,
손끝에 닿는 컵의 미온,
창가에서 흔들리는 잎사귀의 미세한 떨림.
사물들은 어떤 의미도 강요하지 않았고,
어떤 감정을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태도가 마음에 닿았다.
사물들은 불완전했지만, 그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았다.
사용감이 묻어난 표면, 미세한 긁힘, 조금은 구부러진 모서리들까지
모두 그 사물의 시간과 관계의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내 불완전함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불완전함은 부족함이 아니라
세계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틈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틈은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었고,
내 감정이 잠시 내려앉을 수 있는 여백이기도 했다.

이런 감각들이 쌓이면서
‘투명한 불완전’이라는 말이 내 안에서 조용히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투명하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물처럼
자신의 흠집과 흔들림을 그대로 드러내며 존재하는 상태였다.
그 드러남 속에는 숨겨진 강요가 없었고,
억지로 완전함을 흉내 내려는 긴장도 없었다.

나는 그 상태가 오래도록 필요했다.
나를 옭아매던 생각의 밀도를 조금 낮추기 위해,
사유가 나를 파고들다가 스스로를 상처내는 일을 멈추기 위해.
사물은 그 방법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설명 없이, 해석 없이,
단지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 하나만으로.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물을 바라보고, 그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어느 순간 세계의 흐름 속으로 천천히 다시 편입될 수 있겠다고.
그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나를 끌어당기는 힘도 거세지 않았다.
하지만 그 느린 움직임이 내 숨을 되찾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데카르트가 ‘생각’으로 존재를 증명했다면,
나는 ‘관찰’로 나를 다시 세우고 싶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의 표면은 조금씩 정돈되었고,
그 정돈된 표면 위로 사유는 가볍게 흐르기 시작했다.
물결이 얕은 호수 위를 미세하게 스쳐가는 듯한 그런 흐름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내가 사물의 관계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또 하나의 호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깊이 빠져 있던 생각의 내부에서 잠시 빠져나와
사물이라는 세계의 표면을 따라 걷는 일.
그 과정은 내 존재를 조금씩 재구성하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이제 나는 이해한다.
불완전함은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나를 잇는 투명한 경계라는 사실을.
그 경계는 금이 가 있기에 땅속의 물처럼 빛을 스며들게 한다.
사물들 사이에서 나는 그 빛을 천천히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사물들의 조용한 태도를 따라
내 사고의 속도를 조금 늦춘 채 살아간다.
내 균열을 숨기지 않고,
그 균열 사이에 들어오는 미세한 빛까지 함께 품으며.

그렇게 살아갈 때
사물과 나 사이에는 아주 얇지만 선명한 관계가 생긴다.
그 관계는 나를 다시 호흡하게 하고,
또 다른 사유를 열어주고,
내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어떤 부드러운 확신을 건네준다.

투명한 불완전은
그 모든 흐름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상태이며,
나는 그 상태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