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아야 할 것들

존재의 빈칸, 질투를 하는 것

by 윤담

사람은 질투를 한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던 순간은
어떤 철학책이나 설교 때문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였다.

누군가의 웃음이
너무 밝게 들렸던 날.
그 밝음이 내 마음 안의 어두운 부분을
원치 않게 비춰버렸던 날.

그때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이 먼저 굳었다.
말로는 “잘됐다”고 했지만
내 목구멍 깊은 곳에서
묘한 금속 맛이 스며올랐다.
질투는 그렇게,
아주 얇은 철의 맛으로 온다.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못 보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빈칸이 먼저 보이기 때문에.

질투는 어둠이 아니다.
빛이 자신을 비춰 지나갔다는 증거다.
어디선가 환한 무언가가 지나갈 때,
내 안의 결핍이 그림자로 드러나는 것.
사람이 견디기 가장 어려워하는 건
타인의 성공이 아니라
그 성공이 비추어 놓는
자신의 침묵과 지체다.

몇 년 뒤, 나는 깨달았다.
질투라는 감정은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왜 여기 머물러 있을까”
라는 질문을
조용한 칼날처럼 내면에 남긴다.

질투는 해로운 감정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인간적인 감각이다.
비가 오기 전
먼지 냄새가 공기 속에 먼저 스미는 것처럼
무언가 변화하기 전에
질투가 먼저 올라온다.

어린 시절 친구가 상을 받았을 때,
같이 웃었지만
발끝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동료가 승진했을 때,
축하 문자 뒤편에서
손바닥에 식지 않는 열이 남았다.
가까운 사람이 기회를 얻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
내 몸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질투는 종종 부끄러움과 함께 온다.
‘왜 나는 이런 걸 느끼지?’
하지만 그 감정을 너무 빨리 숨겨버리면
자기 자신을 발굴할 기회도 함께 묻힌다.

질투는 나쁜 것이 아니라
미완의 욕망이 남아 있다는 신호다.
아직 하고 싶은 게 있고,
아직 가고 싶은 방향이 있고,
아직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진짜 위험한 건
질투가 아니라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상태다.
그건 감정이 식었다는 뜻이고,
욕망의 구조가 스스로 붕괴했다는 의미다.
사람은 타인의 빛을 보고
자기 안의 잠든 부분을 깨우기도 한다.

질투는 삶의 음영을 드러내는 감정이며,
그 음영이 있어야
빛이 더 정확한 위치를 갖는다.

나는 최소한
이 감정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질투를 느낄 때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정확하게 확인한다.

남의 성공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은
성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도 언젠가 저 빛을 향해 가고 싶다”라는
조용한 움직임의 첫 신호다.

사람은 질투를 한다.
그러나 그 질투가
우리의 마음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는
항상 한 몸으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