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들

철새

by 윤담

철새는 해마다 같은 길을 난다.
강을 건너고, 도시의 빛을 지나고,
사람들이 알아채지도 못하는 하늘의 결을 따라
수천 킬로미터의 공기를 자기 길처럼 겹겹이 이어간다.

그 길은 어느 지도에도 남지 않는다.
누가 알려준 적도 없지만,
철새는 날개 아래 오래 저장된 기억으로
계절의 냄새와 바람의 두께를 읽어낸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문득 생각한다.
왜 철새는 저토록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정작 인간은 가까운 곳에서도 쉽게 길을 잃는 걸까.

철새는 목적을 의심하지 않는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길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떠날 때마다 이유를 만들고,
머물 때마다 핑계를 찾고,
가야 할 방향보다
왜 움직여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그래서 인간은
철새보다 훨씬 더 자주 길을 잃는다.

가을 오후,
하늘 높이 흔들리듯 지나는 철새 떼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한 마리의 날갯짓에 따라
전체의 형체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바람의 냄새, 구름의 속도,
나뭇잎이 떨어지는 각도까지
그들의 날개는 모두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이 거대한 오선지가 되고
철새들이 그 위에 살아 있는 음표처럼 흘러가는 장면 같았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이 어떤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우리는 오늘의 계절을 놓치고,
어제의 후회나 내일의 불안을
마치 현재의 공기처럼 들이마시며 산다.

철새는 지금의 바람에만 반응한다.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바람까지 걱정한다.

그 걱정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날갯짓을 잃어버린다.

철새는 떼를 지어 이동한다.
앞서 날던 새가 어느 순간 뒤로 물러나면
지친 새가 선두로 나서고,
잠시 벗어난 새가 있어도
그 소리를 기억해 다시 무리의 리듬에 스며든다.

그 모습은
‘함께 버티는 방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간은
가까웠던 사람과도 쉽게 멀어지고,
멀어진 이유를 알면서도
다시 돌아갈 때를 놓치고,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려
계절 하나를 통째로 비워버린다.

철새는 멀어진 거리를 본능으로 줄이지만
인간은 가까운 거리도 마음으로 멀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도
철새와 닮은 무엇이 남아 있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끝내 돌아가고 싶은 자리 하나는 존재한다.

그 자리는
장소일 수도,
기억일 수도,
특정한 얼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잊지 못한다.
철새가 해마다 같은 하늘로 돌아오듯
인간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계절을 알고 있다.

비록 길을 잃고,
몇 해를 헤매고,
어떤 날은 하늘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는 희미하게 빛을 남긴다.

그 희미함이
우리를 끝내 무너지지 않게 한다.

철새는 떠날 때도 울지 않고,
돌아올 때도 울지 않는다.
그저 날개로 계절을 넘을 뿐이다.

인간은 떠날 때 울고,
돌아올 때 또 울지만
그 울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울음은
우리 안에 아직 ‘방향 감각’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신호가
다음 계절을 버틸 힘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철새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만큼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철새는 계절을 알고,
인간은 마음을 알고.

철새는 바람을 읽고,
인간은 감정의 결을 읽는다.

철새는 길을 기억하고,
인간은 잊을수록 더 선명해지는
사랑과 상처를 기억한다.

그래서 인간은 더 흔들리고,
더 멈춰 서고,
더 자주 뒤돌아보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 때문에
더 오래 살아지는 존재다.

우리가 철새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조용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멀리 나는 존재라서가 아니다.

철새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돌아가야 할 자리’를
대신 날아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철새는 떠나고,
우리는 머물고
결국 모든 생명은
자기의 계절로 돌아간다.

그 계절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그 자리로 다시 가려는 움직임

그 조용한 움직임이
우리를 끝내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