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들

혼자 있는 생물, 고양이3

by 윤담

나는 고양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생명이란 것이, 어느 날엔 조용히 낡아가는 법이라는 걸.
몸의 온도가 천천히 낮아지고,
숨이 한 박자씩 느려지는 그 과정이
겁나는 일이라기보다
그저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스며드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걸.

하지만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아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난 이후 처음 보는 인간의 얼굴을 보고 있다.
낯설 정도로 젖어 있는 표정.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실루엣.
이 생물은 평소엔 참 많은 말을 하는데
정작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침묵에는 두려움이 스며 있다.
나는 그 냄새를 안다.
상처가 났을 때의 금속 냄새와도,
긴장이 스치는 순간의 미세한 온기와도 다른
"잃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냄새.

나는 천천히 눈을 깜박인다.
인간은 그것을 “괜찮다”는 신호로 이해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 신호를 건넨다.

사실 나에게는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은 것도 없다.
그저 몸이라는 것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내가 보내는 작은 몸짓 하나에도
끝없는 의미를 붙인다.

“가지 마.”
그 말이 들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손끝에서 그 말을 읽는다.
손의 떨림, 체온의 결,
내 털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방향에서.

나는 갑자기 인간이
참 이상한 생명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기보다 훨씬 작은 생물을
자기보다 훨씬 큰 마음으로 품다니.

나는 무겁지 않은 존재다.
체구도 작고, 수명도 짧고,
삶을 해석하는 방식도 단순하다.
눈앞의 빛을 좇고,
따뜻한 자리를 찾아 누우면
하루가 충분했다.

하지만 인간은
나라는 작은 생명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웃을 때도, 울 때도,
혼자일 때도, 행복할 때도
나를 곁에 두고 살아왔다.

나는 그 의미의 무게를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죽음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기보다
"함께했던 시간들을 뒤로 남기는 일"이다.
몸은 끝나가지만
내가 머물렀던 자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오래 흔들릴 것이다.

그 생각이
조금 미안하고
조금 따뜻하다.

나는 인간의 뺨에 얼굴을 붙인다.
마지막 힘을 모아 목을 낮게 울린다.
그 울음은 아픔도, 두려움도 아니다.
내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평온의 형태일 뿐이다.

인간의 눈물이 내 털에 닿는 순간
나는 아주 조용한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나를 위해 울고 있고,
나는 인간이 울 수 있도록 남아 있는 것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먼저 문을 통과한다.
이 생명이 가진 리듬이
여기까지라는 뜻이므로.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남긴 온도의 잔량이
한동안 이 방 안에 머물 것이라는 것을.

인간은 그것을 두고
“그 아이가 아직 여기 있는 것 같아”
라고 말하겠지.

그 말은 틀렸고,
또 맞다.

나는 이제 이곳에 없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내 체온의 결은 천천히 식어갈 것이다.
식어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고양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과장하지 않는 생물.

그러나 인간을 남겨두고 떠나는 일만은
내게도 조금 무겁다.

그래도 괜찮다.
인간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늘 조용하고, 따뜻하고,
때로는 눈물 섞여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이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는
내 발자국이 아니라
내가 남긴 마음의 온도이니까.

그리고 인간은
내가 남긴 그 온도를
아주 오래도록
살아 있는 방식으로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