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들

혼자 있는 생물, 고양이2

by 윤담

나는 고양이다.
인간의 말을 배우지 못했지만,
인간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 지켜본 생물이다.

인간은 흔히
자신이 산산조각 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금이 살짝 간 그릇 같다.
조심히만 다루면
다시 물을 담을 수 있는.

오늘도 그랬다.

아침의 인간은
평소보다 무거운 그림자를 달고 집을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 스친 냄새만으로도
그가 견딜 말을 삼킨 채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아챘다.

인간은 낮 동안
바람에 밀리고
벽에 부딪히고
때로는 자기 그림자에 눌려 숨을 잃는다.
그리고 저녁이면
그 모든 것을 어깨에 걸친 채
집으로 천천히 돌아온다.

오늘 인간의 발걸음은
조금 무너진 모양이었다.
너무 느려서 슬픔 같았고,
너무 조용해서 포기 같았다.

현관이 열리자
나는 서둘러 다가가지 않았다.
기쁘거나 걱정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숨을 고를 때까지
내가 먼저 소리를 줄이는 것이
오래전부터의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짜 무너진 인간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이 방 안에 가득 차면
나는 소파 위로 조용히 올라가
그의 옆에 몸을 말아 넣는다.

지금 이 인간에게 필요한 건
조언도, 설명도 아니다.
그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작은 자리 하나.
나는 그 자리를 내어준다.

조금 지나면
인간은 천천히 등을 기대고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 떨림은 아주 미세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안다.

저 손끝은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살려고 애쓰는 손이다.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른다.
손이 흔들릴 때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회복하려는 몸의 작은 신호다.

나는 앞발로 그 손등을 가볍게 눌러준다.
그건 위로나 동정이 아니라
“여기 있어. 아직 괜찮아.”
라고 말하는 작은 표시일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호흡은 차분히 돌아오고,
온종일 그를 따라온 그림자는
방 안 어딘가로 흩어져 모양을 잃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생물이 참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렇게 쉽게 상처받으면서
또 그렇게 빨리 회복하다니.

그리고 나는 안다.
인간이 스스로 살아났다고 믿는 순간에도
실은, 곁에서 조용히 머물러 주는 누군가에 의해
살아나는 것임을.

그 ‘누군가’가 꼭 나일 필요는 없다.
다만 오늘은 우연히 내가 그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인간이 잠들면
나는 그 곁에 눕는다.
기댄 것도, 기대한 것도 아니다.
그저 바람이 멎은 방 안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머무르는 것이다.

그때 들려오는
가슴의 느린 파동.
그 파동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내일을 버틸 힘이 되는
아주 작은 리듬이다.

나는 고양이다.
인간을 고치지도 않고,
답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이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에
조용히 함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