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나는 오래전부터 이 세계가 늘 같은 두께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는 분명히 단단하고 분명한데,
어떤 순간에는 이유 없이 얇아져
손을 뻗으면 다른 감각이 겹쳐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마다 나는 현실을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경계가 흐려졌다고 느꼈다.
기차 안에서,
카페의 느린 공기 속에서,
눈 내리는 플랫폼이나
공장의 반복되는 소음 사이에서
세계는 종종 자기 설명을 멈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진 상태.
그 미묘한 변화는
사건으로 기록되기엔 너무 작고
감정으로 정의하기엔 너무 조용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순간들이 더 자주 찾아왔다.
모르는 장소를 지나가며 느끼던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
현실이 아직 의미로 굳어지기 전의 감각.
어른이 된 뒤에도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대개는 지나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나는 그 지나침에
조용히 저항하고 싶었다.
‘투명한 이세계’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잠시 자신을 낮추는 순간,
그 틈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기록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이해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감각,
말 이전에 이미 도착해 있는 세계.
이 글들을 통해
나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지금 여기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층위로 겹쳐져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고 싶었다.
‘투명한 이세계’는
어디로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통과해온 순간들을
다시 천천히 건너보는 시도다.
읽는 동안
당신의 현실도 잠시 얇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