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솟는 해안가에서
아침바다 앞에 서면
세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감각하게 된다.
밤의 온기가 완전히 물러나지 못한 수면 위로
미정(未定)의 기척이 얇게 떠 있고,
그 기척은 바다와 하늘을
어느 쪽으로도 굳어지지 못한 채 붙잡아 둔다.
나는 그 중간의 시간,
빛이 아직 자신의 얼굴을 고르지 못한 틈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 시간의 세계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상태로 존재한다.
파도는 아직 낮의 리듬을 갖지 못해
천천히 몸을 굴린다.
밀려오면서도 곧바로 물러날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잠깐씩 망설인다.
그 망설임이 바다 전체를 아주 얇게 떨리게 한다.
그 떨림은 소리라기보다
숨이 고르지 못해 생기는 흔들림에 가깝다.
새벽의 바다는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심장처럼
자신의 박동을 다시 확인하는 중이다.
빛은 수평선 위에 머물며
아직 색이 되지 않은 상태로 떠 있다.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채
물결 위를 손끝으로 더듬듯 스며든다.
그 미약한 빛이 닿는 곳마다
바다는 잠시 밝아졌다가
곧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 반복은 바다의 시간과 내 시간이
완전히 겹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는 그 어긋남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평온을 느낀다.
모든 것이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유지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의 바다는 조용히 증명한다.
아침바다의 바람은
밤을 아직 완전히 놓아주지 못한 채
차갑고 투명한 결을 품고 있다.
그 결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어젯밤의 잔여들이
하나씩 정리된다.
아침바다는 늘 사람이 잠에서 현실로 옮겨가는 과정을 가장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돕는 장소다.
강요하지 않고,
재촉하지도 않은 채
그저 통과할 시간을 내어준다.
모래 위에는
아직 아무의 발자국도 없다.
밤사이 평평해진 모래는 하루의 첫 흔적을 기다리는 빈 페이지처럼 펼쳐져 있다.
나는 그 단순한 장면이
이상할 만큼 깊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이 시간에만 정확히 알 수 있다.
무엇을 지나왔든,
얼마나 복잡한 마음을 품고 왔든
아침의 모래는 다시 제 얼굴로 돌아온다.
바다는 늘 그렇게 되돌릴 수 있는 상태를
먼저 보여준다.
새 한 마리가 수면 가까이로 낮게 날아간다.
그 그림자가 물결 위에서 흔들리며
바다가 오래 품고 있던 기억들을
잠시 건드리는 듯 보인다.
바다는 누구의 기억도 거부하지 않지만
어느 것도 오래 붙잡지 않는다.
빛의 방향이 조금만 달라져도
기억은 곧 다른 깊이로 가라앉는다.
나는 그 성격을 이른 시간의 바다 앞에서만
또렷이 이해한다.
붙잡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해가 천천히 얼굴을 드러내자
금속을 긁는 듯한 빛이
물결의 표면에 얇게 번진다.
그 빛이 바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주는 순간,
내 마음에도 작은 윤곽이 생겨난다.
새벽의 흔들림 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방향을 얻는다.
아직 단단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흩어지지도 않는다.
아침바다는 언제나 그날의 하루에 먼저 도착한다.
나는 늘 그 뒤를 한 박자 늦게 따라간다.
빛이 완전히 제 모습을 찾을 즈음
비로소 내가 서 있는 세계도 형태를 되찾는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아침마다 새롭게 배운다.
세계는 늘 먼저 열리고,
나는 그 열린 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바다는 언제나 먼저 깨어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고, 그 앞에서 나는 오늘을 천천히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