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기차는 언제나 출발지로부터 멀어지는 감각으로 움직인다.
눈이 내리던 낡은 기차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플랫폼은 낮았고
콘크리트의 표면은 오래된 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눈은 그 위에 쌓이기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있었고,
기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역은 마치 잠시 사용이 중단된 장소처럼
조용했다.
나는 그 조용함이
조금 낯설었다.
기차에 오르자
바깥의 눈은
갑자기 속도를 얻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천천히 내렸고
풍경은 그 눈을 통과한 채
뒤로 밀려났다.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가만히 두고 온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어린 나는
그 차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다.
중간쯤에서
승무원이 수레를 밀며 지나갔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기차 안에 길게 남았다.
사이다 병은 투명했고
계란은 흰 껍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사달라고 말했다.
말은 짧았고
기대는 이상할 만큼 컸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무언가를 먹는 일은
이동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사이다는 차가웠고
계란은 따뜻했다.
손에 전해지는 온도가 달라
나는 그것들을 번갈아 쥐었다.
그 차이는
밖에서 내리는 눈보다도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기차 안에서는
작은 감각 하나가
세상의 크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역들은
모두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간판은 눈에 젖어 있었고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읽으면서도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궁금함이 되기도 했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되기도 했다.
어린 나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모르는 장소들이
조용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무서웠다.
기차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어디인지,
얼마나 지나온 것인지,
다시 올 수 있는지.
그때의 나는
지나간다는 사실 자체를
이미 충분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는
모르는 것이
당장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내렸다.
눈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기차가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이 대신 증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풍경은
같은 흰색으로 덮였고
그 덕분에
세계는 잠시
서로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기차는
서울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린 나를
모르는 것들이 계속 나타나는 세계 쪽으로
조심스럽게 데려가고 있었던 것 같다.
궁금함과 두려움이
아직 구분되지 않았던 시절,
현실이 설명되기 전에
이미 느껴지고 있었던 시간.
기차는
그 시절의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다만
세계가 언제든
모르는 장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창밖으로
조용히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기차를 탈 때마다
나는 아직도 가끔
도착보다 먼저
그때의 눈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덮여 있어서
오히려 더 많이 보였던
어린 날의 초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