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미술관-괴로움
미술관의 공기는
언제나 한 박자 늦다.
발소리는 바닥에 닿기 직전에 낮아지고,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스스로 접힌다.
나는 그 느린 밀도 속에서
한 점의 그림 앞에 멈춘다.
그림은 크지 않다.
시선을 붙들 만큼 강렬하지도 않다.
분명한 형상도,
이야기를 암시하는 장면도 없다.
다만 화면 전체에
정리되지 않은 결이 남아 있다.
붓질은 멈추지 않은 것처럼 이어지는데
어느 지점에서도
끝내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색의 겹과
멈춘 선들을 따라
시선이 천천히 이동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이유 없이
가슴의 안쪽이 조여온다.
나는 그 지점에서야 알아차린다.
지금 이 감각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 괴로움은
고통처럼 날카롭지 않고,
슬픔처럼 명확하지도 않다.
말로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다른 형태로 바뀌어 버린다.
다만
어디에도 놓이지 못한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를 때의
그 묵직한 밀도와 닮아 있다.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을 때에야
형태가 생기고,
형태가 생길 때
비로소 감정이 따라온다.
괴로움은
항상 그런 거리에서만
정확한 얼굴을 가진다.
나는 제목을 읽지 않는다.
제목은 감정의 방향을
너무 빠르게 정해버린다.
대신
겹쳐진 색의 가장자리,
중간에서 멈춘 선,
끝까지 밀리지 못한 어둠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 흔적들은
내 안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
기억의 결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이 그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내 쪽이 먼저 반응한다.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감정들이
이 화면 앞에서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괴로움은
그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나에게서 발생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누군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이 그림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비슷한 결을 지닌 사람에게만
조용히 작동할 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괴로움을
밀어내고 싶지 않다.
나아지라는 말도,
견디라는 주문도
이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감정이
여기에 존재해도 된다는 사실만이
벽 위에 걸려 있다.
미술관의 벽은
괴로움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을
잠시 외부에 놓을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의 안쪽에서만 맴돌던 감각이
이렇게 공간 속에 놓일 때,
나는 그 괴로움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한 발짝 물러서
그림 전체를 바라본다.
괴로움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이상하리만큼 균형을 이루고 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생각한다.
괴로움이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이렇게
어디엔가 잠시 걸어두고
가끔 다시 마주할 수 있는
하나의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그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고,
나는 미술관을 나온다.
괴로움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은
아주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