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이세계

영화관

by 윤담

표를 찢는 소리가 짧게 난다.
손끝에 남은 종이의 거친 결이
이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전한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음은 갑자기 끊기고,
어둠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의자에 몸을 맡기면
천이 숨을 삼킨다.
앞줄의 머리들,
컵홀더에 꽂힌 음료,
아직 켜지지 않은 스크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하지도 않다.
기침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사람이 앉아 있다는 기척들이
어둠 속에서 낮게 움직인다.

화면이 켜진다.
빛이 먼저 들어오고
소리는 그 뒤를 따른다.
도시의 얼굴이
스크린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같은 방향을 본다.
눈은 열려 있고
표정은 사라진다.

어딘가에서 웃음이 난다.
조금 뒤, 다른 쪽에서도
같은 소리가 겹친다.
그 웃음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화면 속 인물이 넘어지고,
극장 안에서 숨이 동시에 풀린다.
나는 웃고 있지만
웃는 이유는 내 것이 아니다.

의자에 등을 깊게 붙인 남자가 있다.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잠깐씩 다른 표정으로 드러난다.
울고 있는지,
집중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대사가 빠르게 지나간다.
읽히지 못한 문장들이
화면 아래로 흘러간다.
그러나 이해는 늦지 않는다.
음악이 먼저 도착하고,
빛이 그 뒤를 받친다.
말이 없어도 감정은 제 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손에 힘을 준다.
팔걸이가 따뜻하다.
몸이 여기에 있다는 감각은
이런 식으로만 남는다.
생각은 이미 화면 안으로 들어가 있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두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반을 지나자
극장 안의 움직임이 줄어든다.
팝콘 봉지는 더 이상 울리지 않고,
누군가는 자세를 바꾸는 일조차 멈춘다.
공기 속에는 같은 호흡이 깔린다.
서로 닿지 않는 사람들이
같은 속도로 숨 쉬고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난다.
어디선가 훌쩍임이 들리고,
조금 뒤 비슷한 소리가 다시 이어진다.
불이 꺼진 공간에서
감정은 방향 없이 증식한다.
나는 울고 있지만
울고 있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엔딩 음악이 흐른다.
화면 위로 이름들이 올라가고,
빛은 서서히 힘을 잃는다.
누군가는 바로 일어나고,
누군가는 그대로 앉아 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이 켜진다.
사람들이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고쳐 신는다.
방금 전의 얼굴들은
다시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사람만 남는다.

문을 나서자
도시의 소리가 다시 붙는다.
차가 지나가고,
휴대폰이 울리고,
말들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잠시
그 소리들 속에서
속도를 찾지 못한다.

아무 이야기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
그 짧은 공백을 안은 채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영화관은 뒤에 남아 있고,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으로
계속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