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이세계

크리스마스 이브의 투명한 도시

by 윤담

투명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보인다.
보인다는 사실이 곧 이해를 뜻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숨길 곳은 없다. 유리로 된 건물들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사람들의 하루는 창을 통과해 겹겹이 포개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도시는 더 투명해진다. 불빛은 과장되게 밝아지고, 그림자는 얇아진다. 그 밝음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내부를 들키지 않으려 더 바쁘게 웃는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저 그런 건조한 날이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캐럴을 불러야 할 것 같고, 식탁에는 평소보다 많은 접시가 놓여야 할 것 같은 날. 투명한 도시의 일정표에 이미 적혀 있는 동작들. 사람들은 그 동작을 따라 걷는다. 기념한다는 말은 종종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구호가 된다. 무엇을 기념하는지는 흐릿해져도, 움직임은 정확하다.
도시의 유리벽 너머로 아이들이 보인다. 선물을 들고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빛을 받아 더 선명해진다. 포장지를 뜯는 소리, 기대가 얼굴에 번지는 순간이 창에 반사되어 반복된다. 어른들은 그 장면을 확인하듯 바라본다. 제대로 해냈다는 안도, 잠깐의 따뜻함. 그러나 투명한 도시에서는 곧 다른 장면도 겹친다. 아이들이 다시 소리를 지르고, 약속을 어기고, 어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장면. 오늘만은 특별하자고 다짐했던 말이 유리처럼 쉽게 금이 간다.
안아주는 팔과 혼내는 손짓이 같은 프레임 안에 담긴다. 투명한 도시에서는 모순이 숨지 않는다. 보호와 통제, 사랑과 피로가 동시에 보인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확인한다. 이 도시에서 자라나는 시간이 과연 어떤 사람이 될지, 자신이 남긴 흔적이 충분한지. 유리벽에 비친 얼굴은 늘 현재보다 조금 늙어 보인다.
밤이 깊어질수록 어른들의 고독은 더 또렷해진다. 집 안에 사람이 가득해도, 투명한 도시의 고독은 분리되어 존재한다. 술잔을 기울이는 손이 창에 비치고, 잔 속의 액체가 도시의 불빛을 받아 흔들린다. 한 해를 정리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그래서 잔은 다시 채워진다. 투명한 도시에서는 회피마저도 보인다.
거리로 나가면 불빛이 넘친다. 모든 것이 환히 드러나 있어 어둠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깊이도 함께 사라진다. 밝음은 결핍을 가리고, 음악은 침묵을 덮는다.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모두가 같은 장면 속에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장면이 너무 오래 반복되었다는 피로. 투명한 도시는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보여줄 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이 도시에서 관성처럼 지나간다. 멈추면 유리벽에 자신의 얼굴이 더 또렷이 비칠 것 같아서, 사람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의미를 묻기에는 장식이 너무 많고, 장식을 걷어내기에는 밤이 깊다. 그래서 묻지 않는 쪽이 선택된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보내도 된다고, 내일의 도시가 다시 설명해 줄 거라고.
결국 이 날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끝난다. 다만 투명하게.
손에 남는 감촉 없이, 창에 비친 장면만 남긴 채. 우리는 투명한 도시 속에서 무언가를 기념한 것처럼 하루를 보냈고, 그 대상은 유리 너머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그렇게, 보였으나 붙잡히지 않은 채 지나간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