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도시에서 오래 살아갈수록
현실이 단단하다는 감각은 점점 마모된다.
대신 분명해지는 것은
이 세계가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상태 위에 놓여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의 끝에서
문득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분명 큰 사건을 통과했는데도
도시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같은 얼굴로 다음 날을 내민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현실이 완결된 구조물이 아니라
그저 유지되고 있을 뿐인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는 그 상태가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장소다.
들어선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곳은 아니다.
차들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을 안은 채
도시의 리듬을 통과한다.
다만 이 안에서는
현실 위에 아주 얇은 층 하나가 조용히 더해진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감각되는 밀도.
그 밀도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을
잠시 머물게 한다.
교회는 도시의 중심에 있지도,
외곽으로 밀려나 있지도 않다.
효율과 속도로 설명되지 않는 구조물이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세계에서 인간이 끝내 완결되지 못한 채
불완전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흔적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계산으로 환원되는 시대에
계산되지 않는 장소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질문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확신보다 망설임이 먼저 깔려 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
기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의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도
낫지 않을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고,
앞날이 열리기를 기도하면서도
열리지 않았던 길을
여러 번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 앞에서 강해지기보다
약해지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 공간을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처럼 보인다.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말이 되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더 이상
혼자서는 견디기 어렵다는 감각을
조용히 내려놓는 행위에 가깝다.
교회의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왜 하필 나인가,
왜 지금인가,
이 고통은 언제 끝나는가,
내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이 질문들은 답을 얻기 위해 던져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머물 수 있는 형태를 찾고 있을 뿐이다.
교회는 그 질문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잠시 머물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도시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설명 가능한 성과,
명확한 이유,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그러나 교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잘 살지 못했다는 감각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후회도,
끝내 어찌할 수 없는 운명도
잠시 그대로 놓아둘 수 있다.
그 허용이 사람을 다시 하루로 돌려보낸다.
희망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나는 믿음을 소유한 적이 없다.
확신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교회가 여전히 이 도시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세계가 인간을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교회는 신의 집이기 이전에
인간이 끝내 붕괴되지 않도록
형태를 유지해주는 구조물인지도 모른다.
교회를 나서면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있다.
아이의 병도,
앞길의 막막함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를 통과한 사람의 내부에는
분명 하나의 층이 더해져 있다.
희망이라 부르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체념이라 하기엔 아직 남아 있는
지탱의 감각.
“그래도 오늘을 살아도 된다”는
설명되지 않는 확신.
나는 그 확신이 도시를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출근하고,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하루를 통과하는 이유.
교회는 그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지 않게
조용히 보관할 뿐이다.
이 세계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강해질 것,
극복할 것,
의미를 찾을 것.
그러나 어떤 날의 삶은
의미를 찾기엔 너무 아프고,
극복하기엔 아직 이르며,
강해지기엔 이미 지쳐 있다.
교회는 그런 날을 부정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장소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특별한 공간이라기보다
세계가 스스로를 버티기 위해
남겨둔 틈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바깥이 아니라
현실의 안쪽에 생긴
아주 얇은 균열.
그 균열 덕분에
사람은 오늘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 정도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 인간이
끝내 완결되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