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에 선 남자
투명한 도시의 한 교차로에
흰 선 하나가 길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그 선은 낮 동안 수없이 많은 발걸음을 받아들였고,
저녁이 되면 조금 더 옅어졌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페인트는 조금씩 닳아 있었고 그 위로 먼지가 얇게 내려앉았다.
도시는 언제나 빛이 많았다.
건물의 유리창들은 낯빛을 부드럽게 쪼개어
거리 위로 흘려보냈고,
그 빛은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카락 사이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바람이 불면 신호등의 철기둥이 아주 미세하게 울렸고, 그 소리는 금속이 물속에서 떨리는 것처럼
도시의 공기 속에 잔잔하게 퍼졌다.
그 교차로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발끝은 정지선의 가장자리에 가볍게 걸쳐 있었다.
발밑의 도로는 햇빛에 데워져 따뜻했고,
아스팔트의 냄새는
낮 동안의 열기를 아직 조금 품고 있었다.
그는 오래 서 있었다.
마치 아주 먼 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도시의 흐름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차들이 지나가며 바람을 남겼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횡단보도의 흰 줄 사이를 리듬처럼 건너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어깨 위로 빛이 얇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습은 빛 속으로 스며들 듯
아주 조용히 사라졌다.
도시는 여전히 투명했다.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날 이후로도
그 교차로는 늘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이면 빵집에서 막 구운 빵 냄새가
골목을 따라 흘러나왔고,
버스 정류장에는
졸린 얼굴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횡단보도 앞에서 줄을 섰다.
가방 속 연필들이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고
지퍼는 짧은 금속음으로 아침을 열었다.
그들 중 몇은 고개를 들어
잠깐 길 건너편을 바라보곤 했다.
마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올 것처럼.
그러나 곧 신호가 바뀌었다.
아이들은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도시의 공기는 낮이 될수록 조금 더 밝아졌다.
창문들이 햇빛을 반사했고
도로 위의 열기는
투명한 물결처럼 흔들렸다.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에서는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다.
하얀 셔츠 하나가 오래도록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의 어깨 위에
잠시 걸쳐져 있었던 것처럼.
실내에서는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 소리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식탁 위에는 의자 하나가 조금 비어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크게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는 시선들이
가끔 길게 머물렀다.
창문 너머에는 그 교차로가 있었다.
정지선이 보였고
사람들이 그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신호등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지나가면
먼지가 아주 얇게 흩어졌다.
그 먼지 속에는 빛이 섞여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도시는 조금 더 조용해졌다.
해가 건물 사이로 내려가며
거리의 색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빛은 주황색과 회색 사이에서
천천히 식어갔다.
아이들 몇이 그 교차로 앞에서 잠깐 멈췄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마치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은 것처럼.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멀리서 지나가는 차의 바퀴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뿐이었다.
아이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발걸음은
횡단보도의 흰 줄 위에서
작은 리듬을 만들었다.
밤이 오면 도시는 조금 더 투명해졌다.
가로등 불빛이
도로 위에 둥근 웅덩이처럼 떨어졌고,
사람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그 교차로의 정지선도
그 빛 속에서 조용히 떠 있었다.
마치 물 위에 그어진 선처럼.
가끔 바람이 조금 다르게 불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는 잠깐 발걸음을 늦추었다.
어딘가에서 익숙한 온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곧 도시는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은 길을 건넜고
차들은 지나갔다.
신호등은 빨간빛과 초록빛 사이를
조용히 오갔다.
그리고 그 정지선 위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저녁의 빛 속에서는
아주 잠깐 누군가가 그 선 위에 서 있었다는 느낌이
공기 속에 얇은 온기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