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도시우물

by 윤담

도시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반짝이는 유리잔처럼 보였으나, 그 안에 들어가 걸어보면 그것이 실은 깊고 오래된 우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언젠가는 알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얼굴을 하고 그 우물 벽을 따라 난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떤 이는 올라가고 있다고 믿었고, 어떤 이는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침이면 빌딩의 창문들이 칼등처럼 차갑게 빛을 반사했고, 저녁이면 네온은 검은 물 위에 뜬 물비늘처럼 흔들렸다. 바람은 지상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래쪽에서부터 서늘하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는 젖은 콘크리트 냄새와 커피 찌꺼기 냄새와 타인의 피로가 오래 씹다 버린 껌처럼 눅눅하게 섞여 있었다.
성우는 그 도시를 걸을 때마다, 자기가 아주 천천히 어떤 깊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 느낌은 누가 뒤에서 등을 미는 것처럼 분명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착각이라고 웃어넘길 만큼 가볍지도 않았다. 마치 엘리베이터가 아주 천천히 내려갈 때, 귀 안쪽에서만 먼저 깊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같았다.
그는 어릴 적 오래 달리던 아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달리기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던 아이였다. 트랙은 그에게 말이 필요 없는 문장이었다. 스타트 라인의 백색 분필, 탄성 있는 레인, 출발 직전의 정적, 그리고 총성이 터진 뒤 모든 망설임이 한 방향으로 접히는 순간. 세상에는 원래 그렇게 간결한 길도 있다고 그는 믿었다. 숨은 거칠어져도 좋았고, 허벅지가 타오르는 듯해도 괜찮았다. 고통에는 방향이 있었으니까. 방향이 있는 고통은 겨울바람을 정면으로 가를 때처럼 매서웠지만, 이상하게도 견딜 수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처음 1등을 했을 때, 담임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넌 다리가 좋구나. 어머니는 해어진 운동화 끈을 다시 묶어 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바람하고 친하네. 그 무렵의 성우는 세상이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빨라질 수 있는 몸이 있고, 앞을 향해 뻗어갈 수 있는 시간도 있으며, 무엇보다 아직 닳지 않은 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너무 오래 손안에 쥐고 있으면 체온을 닮아간다. 그리고 체온을 닮은 것들은 언젠가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식어버린다. 사람의 손 안에서 천천히 미지근해지는 찻잔처럼, 처음의 뜨거움을 다 잃고도 한동안 무게만 남긴 채.
고등학교 3학년 여름, 한낮의 열기가 운동장 전체를 얇은 유리판처럼 덮고 있던 오후였다. 성우는 평소보다 기록이 좋았다. 코치도 드물게 표정이 풀렸고, 친구들은 그날 저녁 치킨을 쏘라고 소리쳤다. 그는 마지막 곡선주로를 돌며 몸이 공기보다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무릎 안쪽 어딘가에서 너무 작아서 처음엔 통증이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소리가 났다. 딱, 하고. 그것은 마른 가지 하나가 햇빛 속에서 점잖게 부러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오래 믿어온 문장 한 줄이 눈앞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절뚝거리기 시작했고, 병원 복도는 끝없이 길어졌다. 장마철 지하도처럼 축축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였다. 소독약 냄새는 겨울 새벽의 쇠붙이처럼 맑고 차가운 절망의 냄새였다. 의사는 친절한 얼굴로,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잔인한 얼굴로 말했다. 관리하면 일상생활은 가능하겠지만, 기록을 노리는 선수 생활은 어렵겠습니다. 그 말은 한 줄짜리 통보문에 불과했으나, 성우에게는 그 한 줄이 그동안 달려온 모든 계절을 몰수해 가는 판결문처럼 들렸다.
꿈이 부러질 때 신기한 점은, 소리가 밖보다 안에서 더 크게 난다는 것이다. 바깥에서는 그저 작은 금 하나 간 것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우물물 한가운데 돌이 떨어졌을 때처럼 오래 파문이 번졌다.
이후의 시간은 길고 어두운 복도 같았다. 친구들은 대학 진학과 실업팀 이야기로 분주해졌고, 성우는 정형외과 재활실에서 고무 밴드를 당기며 낯선 몸과 화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몸은 한 번 배신을 배운 뒤로는 예전처럼 순순히 협조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덜 뛰게 되었고, 덜 말하게 되었고, 덜 기대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트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래 사랑한 사람의 뒷모습을 우연히 본 것처럼, 반갑기보다 먼저 아프고, 그다음에야 그리운 기분이었다.
군대는 그때 그의 앞에 놓인 하나의 문처럼 보였다. 들어가면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잠드는지, 언제 뛰고 언제 멈추는지는 알 수 있는 문. 그는 그 문을 통과했다.
군 생활은 의외로 견딜 만했다. 혹은 견딜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잘게 나뉘어 있었다. 기상, 점호, 식사, 작업, 훈련, 취침. 하루는 잘게 썬 무처럼 반듯한 조각들로 나뉘어 있었고, 그 조각들 사이에 미래를 고민할 틈은 많지 않았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질서는 때로 약보다 나은 붕대가 된다.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붕대에 익숙해졌다. 군화 끈을 조일 때마다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감각은 마치 삐걱거리는 문짝에 임시로 못 하나를 더 박아 두는 일처럼 위태롭지만 유효했다.
하지만 제대는 늘 온다.
끝날 줄 몰랐던 것들은 이상하게도 끝나는 날이 너무 빨리 온다. 계절이 끝나고 난 뒤에야, 그 안에 자기가 오래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사회는 그를 환영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다만 무표정한 얼굴로, 여기 앉으세요, 그리고 알아서 버티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사무실은 높은 건물들 사이, 햇빛이 곧게 들어오지 못하는 층에 있었다. 오전 내내 창문은 회색이었다. 맞은편 건물 외벽의 공조기들이 단조로운 진동을 냈고, 복도 끝 탕비실에서는 종이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때때로 작고 마른 파문처럼 들려왔다. 프린터는 늘 무언가를 토해냈고, 사람들은 그 토해진 종이들을 들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쉬거나, 가끔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성우는 그 모든 풍경이 물속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릿하고 멀게 느껴졌다. 말소리조차 물에 젖은 솜처럼 약간 무뎌져 들렸다.
그곳에서 그는 박주임을 만났다.
박주임은 그 사무실에서,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늘 단정한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셔츠의 소매 끝은 언제나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머리는 흐르지 않게 묶여 있었고, 표정은 종종 서류철처럼 닫혀 있었다. 말을 아꼈고, 아낀 말은 대부분 정확했다. 정확한 말은 대체로 차갑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박주임의 말들은 유리컵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가볍게 튕겼을 때 나는 소리처럼 가늘고 단단했다.
첫 출근 날, 그녀는 성우에게 책상 위치와 공용폴더 구조, 보고서 작성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은 간결했고, 손동작은 빠르며, 눈빛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말했다.
“여긴 운동장이 아니에요.”
그 말은 무심하게 던진 농담일 수도 있었겠지만, 농담이라고 보기엔 너무 반듯했고, 경고라고 보기엔 너무 낮은 온도였다. 마치 누군가 유리잔 벽을 손가락 마디로 한번 두드리며 이건 잘못 다루면 금이 간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성우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잘하지 못했다.
아니, 아마도 그는 잘하려고 할수록 더 어긋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몸이 먼저 알았다. 언제 힘을 남겨야 하는지, 언제 치고 나가야 하는지, 언제 호흡을 줄여야 하는지를. 그러나 회사는 몸보다 말과 표정과 타이밍으로 움직이는 세계였다. 이메일 제목 하나에도 뉘앙스가 있었고, 파일명 하나에도 질서가 필요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적절한 높낮이로 받아내는 일, 회의 때 적당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 사소한 누락이 사소하지 않게 되는 이유를 알아차리는 일. 그것들은 체육복을 입고 트랙을 달리던 시절엔 배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사무실의 규칙은 운동장의 규칙보다 훨씬 흐렸고, 그래서 더 자주 사람을 넘어뜨렸다. 희미한 경계선은 빗물에 번진 먹물처럼 보이지 않다가, 밟는 순간 비로소 드러났다.
그가 처음으로 크게 혼난 것은 거래처에 보내는 메일에 첨부파일을 빠뜨렸을 때였다. 박주임은 그의 자리로 와서 모니터를 잠시 내려다본 뒤,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 만큼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죠?”
성우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단지 화가 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피로가 있었고, 오래 참아온 사람들만 가진 무게가 있었고, 또 어딘가에는 자기를 포함한 세상 전체에 대한 지침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새 불 꺼지지 않은 창문처럼 건조하고 희었다.
“죄송하다는 말 말고 이유요.”
그때 성우는 자기 안에서 무언가 작게 움츠러드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의사의 말을 듣던 순간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작고 일상적이라 더 견디기 힘든 종류의 소리였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확인을 덜 했습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말들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비에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처졌다. 박주임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숫자를 한 칸 잘못 옮긴 일, 거래처 담당자 직급을 헷갈린 일, 회의실 예약 시간을 착각한 일. 사무실에서 실수는 폭발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실수는 종종 머리카락 한 올처럼 가늘고 하찮은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하루 전체를 휘감아 질식시킬 줄 안다. 성우는 퇴근 뒤에도 종종 그날의 장면들을 반복해 떠올렸다. 박주임의 목소리, 옆자리 대리의 키보드 소리, 프린터에서 비뚤게 나온 종이 한 장. 그러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부끄러움이 천천히 검은 물처럼 차올랐다. 그것은 발목부터 잠기는 찬물처럼 조용히 올라와, 나중에는 가슴팍까지 차오른 뒤에야 자신이 숨을 얕게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겨울이 되자 도시는 한층 더 우물 같아졌다.
아침의 공기는 쇠를 혀끝에 댄 것처럼 차갑고, 해는 늦게 떠서 빨리 졌다. 지하철 출구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조금씩 누렇게 빛났고, 편의점 자동문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며 도시의 체온을 밖으로 조금씩 흘렸다. 성우는 퇴근길에 유리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끔 보았다. 군 제대 뒤 조금 자란 머리, 굳어버린 어깨, 늘 어딘가를 놓친 사람 같은 눈. 그는 생각했다. 사람은 언제 자기 얼굴을 잃게 되는 걸까. 아마도 하루에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잃는 것인지도 몰랐다. 유리 너머 희미한 자기 얼굴은 오래 만져 윤기가 사라진 동전처럼 낯설고 닳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출근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절망은 흔히 드라마처럼 오지 않는다. 더 흔한 절망은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세수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지하철에 타는 방식으로 삶 안에 스며든다. 마치 벽지 뒤로 번지는 습기처럼, 처음에는 티도 나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손바닥만 한 얼룩이 되어 있는 식으로.
어느 날 점심시간, 부서 사람들이 근처 국밥집으로 몰려나간 뒤 사무실에 잠시 적막이 남았다. 성우는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삼 분 동안 기다리는 일은 이상하게도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기다려야 할 만큼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고, 먹고 나면 끝난다. 그 단순함이 좋았다. 회사 일과 달리 컵라면은 애매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때 박주임이 탕비실 쪽에서 돌아오다가 그의 컵라면을 힐끗 보았다.
“안 나가요?”
“그냥… 이게 편해서요.”
“맨날 그렇게 먹으면 속 버려요.”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잠시 뒤 그녀는 자기 자리에 앉으며 비닐봉지를 하나 책상 끝에 올려두었다. 귤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성우는 그것을 보다가, 이게 자기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한참 뒤 그녀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안 먹을 거면 제가 먹죠.”
그는 얼른 하나를 집었다. 귤껍질을 벗기자 싸늘한 사무실 공기 속에 갑자기 겨울 햇살 같은 냄새가 퍼졌다. 구름 뒤에 오래 숨어 있다가 잠깐 얼굴을 내미는 오후의 빛처럼, 그 냄새는 사무실 구석구석을 조용히 밝혀 주었다. 그는 그것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만큼 선명하다고 느꼈다.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거창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냄새 하나 때문인지도 몰랐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대개 선언이 아니라 귤껍질 같은 것이었다. 얇고, 향이 강하고, 금세 마르지만 오래 손끝에 남는 것.
하지만 사소한 온기가 모든 걸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사이엔 여전히 자주 부딪히는 시간들이 있었다.
연말 결산 자료를 정리하던 주, 성우는 협력사별 내역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폴더 하나를 잘못 덮어썼다. 복구는 가능했지만 시간이 걸렸고, 이미 야근으로 지쳐 있던 부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더 팽팽해졌다. 박주임은 그를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작은 회의실 안은 마치 우물 바닥의 더 깊은 구석 같았다. 바깥의 소음은 걸러지고, 사람의 숨소리만 더 또렷해지는 공간이었다.
“왜 저장 전에 확인을 안 했어요.”
“제가…”
“실수할 수 있죠. 근데 같은 유형의 실수는 반복하면 안 돼요.”
성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억울하지 않았다. 아니, 억울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이 세계의 문법을 끝내 배우지 못할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목구멍 가까이 차올랐다. 그 공포는 뜨거운 국물을 급히 삼켰을 때처럼 식도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고 중간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박주임이 아주 낮게,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
“버릇처럼 죄송하다고만 하지 말고.”
성우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했다. 피곤했고, 창백했고, 오래 참고 있는 사람의 뺨처럼 약간 굳어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은 쉬워요. 쉬운 말은 자꾸 입에 붙어요. 근데 그러면 본인도 자꾸 쉬운 방식으로만 무너져요.”
성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혼내는 말인지, 도와주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문장은 못처럼 차갑게 박히기보다, 서늘한 물이 천천히 스며들듯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이후 그는 자기 입버릇을 의식하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대신 무엇을 놓쳤는지, 다음엔 어떻게 확인할지 말해보려 애썼다. 서툴렀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그의 메일은 덜 흔들렸고, 파일명은 점점 규칙을 갖추었으며, 전화 응대의 목소리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변화는 미세했으나, 사무실 같은 곳에서는 그런 미세한 변화가 사람의 자리를 바꿔 놓는다. 아주 조금 더 단단해진 나사는 눈에 띄지 않지만, 기계 전체의 떨림을 줄이기도 하니까.
겨울 끝 무렵, 야근이 길어진 밤이 있었다. 바깥은 이미 막차 시간에 가까웠고, 사무실 형광등은 잠을 잊은 병실의 불빛처럼 유난히 희게 떨렸다. 복사기와 난방기 소리만 낮게 이어지는 가운데, 부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먼저 퇴근했다. 결국 남은 사람은 성우와 박주임 둘 뿐이었다.
그는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의 표를 맞추고 있었고, 그녀는 맞은편 자리에서 예산 내역을 검토하고 있었다. 오래된 프린터에서 나온 종이 냄새, 식은 커피 냄새, 모니터 열기가 섞여 공간은 마치 한겨울에도 미지근한 체온을 잃지 않는 기계의 내장처럼 느껴졌다. 사람 대신 숫자와 문장들이 숨 쉬고 있는 곳처럼.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박주임이 물었다.
“군대 다녀왔다고 했죠.”
“네.”
“달리기 선수였다면서요?”
성우는 키보드 위 손을 멈췄다.
그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낼수록 더 초라해지는 종류의 과거였다.
“예전에요.”
“왜 그만뒀어요?”
질문은 무심했지만 이상하게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잠시 모니터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창밖 어둠이 유리에 겹쳐, 얼굴은 마치 물아래 잠긴 것처럼 흐렸다.
“무릎이 안 좋아져서요.”
박주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가 검토하던 서류를 덮는 소리가 났다. 마른 종이가 접히는 소리였다.
“얼마나 했는데요?”
“중학교 때부터 계속요.”
“좋아했겠네요.”
성우는 대답 대신 옅게 웃었다.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건 좋아함보다 더 원초적인 것이었다. 숨 쉬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숨도 어느 날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 불편해지는 법이다. 평생 그냥 해오던 일을 더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기 몸 안에 낯선 방 하나가 생긴 것을 알게 된다.
박주임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저도 꿈이 있었어요.”
성우는 조금 놀라 그녀를 보았다.
“뭐였는데요?”
“피아니스트.”
말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먼 곳에서 오는 것처럼 들렸다. 오래된 서랍 맨 아래에서 꺼낸 물건처럼, 먼지는 털렸는데도 시간이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손목을 다쳤어요. 고등학교 때. 입시 직전에.”
형광등 아래 그녀의 손목은 가늘고 희었다. 그 손이 늘 차갑고 정확하게만 보였던 건, 어쩌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손등을 한번 쓸고는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사람은 다 어딘가 부러진 채로 살아가죠.”
그 말은 회의실 벽에도, 모니터에도, 창밖 검은 유리에도 부딪히지 않고 곧장 성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릎 안쪽에 오래 잠들어 있던 통증이 아주 옅게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통증은 사라진 적이 없고, 다만 말이 없었을 뿐이라는 듯이. 낡은 집의 바닥 아래 숨어 있던 삐걱임이, 누군가 같은 자리를 다시 밟자 비로소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전과는 조금 다른 공기가 흘렀다.
박주임은 여전히 정확했고, 성우는 여전히 가끔 실수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끝에 아주 미세한 유예가 생겼다. 이를테면 “다시 해요”라고 말한 뒤 “헷갈릴 수는 있는데 여기선 기준을 통일해야 해요” 같은 설명이 붙었다. 성우 역시 그녀의 차가운 말들 속에 감춰진 피로의 결을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차가움은 대개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오랫동안 바깥바람에 맞서며 굳어진 표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조금씩 이해했다. 겨울 아침 창문에 맺힌 성에가 냉혹해 보여도, 그 아래에는 결국 사람의 체온이 있다는 것처럼.
봄이 올 무렵, 도시는 아주 미세하게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빌딩 사이의 바람에서 얼음 냄새가 줄고, 가로수 끝에 먼지 같은 연둣빛이 맺혔다. 출근길 사람들의 옷은 두꺼운 외투에서 한 겹씩 가벼워졌고, 편의점 냉장고에는 딸기우유와 차가운 커피가 눈에 띄게 늘었다. 계절은 거대한 선언문이 아니라 그렇게 사소한 진열 방식으로 먼저 도착하곤 한다. 누군가 문을 열었다고 말해 주지 않아도, 방 안의 온도가 먼저 달라지는 것처럼.
어느 아침, 성우는 지하철역 근처 작은 공원을 지나다가 트랙 비슷하게 조성된 산책로를 보았다. 길이는 짧았고, 바닥은 전문 트랙의 탄성을 흉내 내지도 못하는 고무 포장이었지만, 그 둥근 곡선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문장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한참 그것을 바라보다가 회사에 지각할까 봐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날 하루 내내 그의 머릿속에서는 산책로의 붉은 선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래 닫혀 있던 서랍 틈으로 들어온 한 가닥 빛 같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 빛만으로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종류의.
일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성우는 더 이상 모든 메일 앞에서 겁을 먹지 않았고, 회의록을 정리할 때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방식도 만들었다. 박주임은 가끔 그에게 이전 자료를 찾아오게 하거나, 거래처 통화 내용을 정리해서 먼저 초안을 써보라고 시켰다. 그것은 작은 신뢰의 표시였다. 그는 그 신뢰를 손바닥 위 물처럼 조심조심 다루었다. 너무 세게 쥐면 새어나가고, 너무 느슨하면 흘러내릴 것 같아서.
하지만 삶은 늘 균형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초여름으로 막 접어들던 무렵, 회사의 구조조정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몰랐으나, 그런 소문은 대개 습기처럼 복도와 탕비실, 화장실 거울 앞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표정을 미세하게 바꿔 놓는다. 누군가는 더 늦게까지 자리에 남았고, 누군가는 더 자주 상무실 앞을 서성거렸다. 성우는 자기가 가장 먼저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수습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 못한 것 같은 기분,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차가운 명찰이 가슴에 달린 듯한 기분이 그를 짓눌렀다. 그 불안은 셔츠 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식은땀처럼 느리게 번져, 겉으로는 멀쩡한데 안쪽만 축축하게 적셨다.
그 불안은 결국 실수를 다시 불러왔다. 어느 오후, 그는 중요한 회의 일정 변경을 참석자 전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팀장과 거래처 담당자가 한 시간 넘게 엇갈렸고, 부서는 한동안 살얼음판이 되었다. 박주임은 회의실 문을 닫고 그를 바라보았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아팠다. 침묵은 때때로 꾸중보다 날카롭다. 칼이 아니라 얼음장 같아서, 닿고 나서야 아린 것을 알게 되는 식으로.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무슨 생각해요, 요즘?”
질문이 예상 밖이어서 성우는 대답을 못 했다.
“자꾸 딴 데 가 있잖아요.”
그는 잠시 창문 쪽을 보았다. 맞은편 건물 유리에 구름이 흐리고 있었다. 구름조차 네모난 창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유로운 것들도 도시에서는 직사각형 안으로 잘려 들어오는 법이었다.
“잘릴까 봐요.”
그는 마침내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아서요.”
말을 하고 나자 그는 창피함을 느꼈다. 이런 말은 어딘가 비겁해 보였다. 그러나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깨진 컵에서 흘러나온 물처럼, 바닥 어디엔가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박주임은 곧장 위로하지 않았다. 그녀 다운 방식이었다. 대신 책상 위 펜을 굴리다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누구나 그래요.”
“……”
“저도 그랬고. 지금도 가끔 그래요.”
성우는 그녀를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처음으로 박주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더 오래 버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래 버틴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오래 들고 다닌 가방이 몸에 꼭 맞아 보이는 것은, 가벼워서가 아니라 오래 멘 탓이기도 하다.
“근데요,” 그녀가 말했다. “있어도 그만인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만 본인이 자꾸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취급받기 쉬워져요.”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경고에 가까웠지만, 이상하게도 성우는 그 안에서 온기를 느꼈다. 누군가가 당신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종류의 온기였다. 난로 앞의 열기처럼 즉각적이지는 않아도, 얼어붙은 손끝에 천천히 피가 돌게 만드는 종류의.
그날 퇴근길, 둘은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저녁 무렵의 도시는 낮 동안 머금었던 열을 천천히 토해내며 미지근했다. 도로 위 버스들은 붉고 둔한 물고기처럼 흐르고, 횡단보도 앞사람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엔 누군가가 반쯤 남긴 캔커피가 놓여 있었고, 오래된 간판 불빛은 벌써 켜져 있었다. 하루가 저무는 시간의 도시는 늘 어딘가 덜 정리된 방 같았다. 누군가 급히 나간 자리에 체온이 조금 남아 있는.
박주임이 먼저 말했다.
“달리기, 아직 좋아해요?”
성우는 조금 생각한 뒤 대답했다.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무서운 쪽에 더 가까울지도.”
“뭐가 무서워요.”
“다시는 예전처럼 못 뛸까 봐요.”
박주임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에는 이상하게도 많은 말이 들어 있었다.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안다는 뜻, 나도 비슷한 걸 잃어봤다는 뜻, 그래도 계속 살아야 한다는 뜻.
“예전처럼 안 뛰면 되죠.”
“……”
“사람은 기록 때문에만 뛰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이 성우의 안쪽에서 오래 맴돌았다.
예전처럼 안 뛰면 된다. 그는 그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들고 갈 수는 있었다. 어떤 문장은 이해보다 먼저 체온처럼 스며든다. 겨울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 둔 손난로처럼, 의미를 다 알기 전에 먼저 손을 덥히는 것들이 있다.
그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집을 나왔다. 공원 산책로에는 새벽이 아직 다 걷히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나무 잎 끝에 얇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벤치엔 밤새 쌓인 미세한 먼지가 희끄무레했다. 그는 운동화 끈을 조였다. 군대 이후 오래 뛰지 않았던 몸이 그 동작을 어색하게 기억해 내는 것이 느껴졌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악보를 손가락이 먼저 더듬어 찾는 것처럼.
처음에는 걷기만 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몇 걸음만 뛰어보았다.
몸은 놀라울 정도로 낯설었다.
심장은 금세 크게 울렸고, 무릎은 예민하게 과거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빠르지 않아도 됐다. 남들에게 우스워 보여도 상관없었다. 새벽의 공원에는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를 가장 오래 알고 있던 것은 바로 이 낯선 호흡일지도 몰랐다. 바람이 뺨을 스치자 그는 잠시 어릴 적 운동장 냄새를 떠올렸다. 흙먼지, 땀, 햇빛, 고무 타는 냄새. 기억은 때때로 죽지 않고 다른 계절의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 오래 닫힌 장롱 속 옷에서 불현듯 어린 시절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그는 짧게 뛰고 멈췄다.
허리를 숙여 숨을 고르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잘해서가 아니라, 못하는 채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습고도 눈물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웃음은 터져 나왔다기보다, 오래 얼어 있던 물이 가장자리부터 아주 조금 녹아내리는 것처럼 번졌다.
그날 회사에 도착했을 때 박주임은 그를 한번 보고 말했다.
“뛰고 왔어요?”
성우는 놀랐다.
“티 나요?”
“얼굴이 좀 달라요.”
그녀는 그 말만 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성우는 그 짧은 문장 안에 격려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조용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봄날 닫힌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처럼, 누가 일부러 문을 열지 않아도 들어오는 어떤 변화.
이후 그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침에 짧게 뛰었다. 기록은 재지 않았다. 앱도 켜지 않았다. 그는 다시 숫자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았다. 다만 공기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 발바닥이 바닥을 밀어내고 몸이 조금씩 뜨는 감각, 끝나고 나면 폐 안이 찬물로 씻긴 듯 맑아지는 감각을 기억하고 싶었다. 달리기는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는 꿈이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를 간신히 건너게 해주는 작은 다리쯤은 되어주었다. 폭이 좁고 흔들리긴 해도, 건너는 데에는 충분한 다리.
그해 초여름 어느 비 오는 날, 박주임은 점심시간에 잠깐 옥상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며 구겨진 악보 한 장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성우는 우연히 그걸 보았다. 악보는 비에 젖어 가장자리가 물풀처럼 말려 있었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박주임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지쳐 보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오후 내내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퇴근 직전에는 손목을 주무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 손목의 움직임은 무심한 척하면서도 아픔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의 버릇처럼 보였다.
성우는 망설이다가 탕비실에서 따뜻한 차를 한 잔 타와 그녀의 책상 끝에 놓았다.
“이거… 드세요.”
박주임은 잠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은 예전 같으면 당혹이나 경계를 먼저 담았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날의 시선엔 피곤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아주 느린 놀라움이 따라왔다.
“왜요?”
“그냥… 손목 아프신 것 같아서요.”
박주임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옅게 웃었다. 정말 조금. 웃음이라기보다 얼음장 아래에서 물이 아주 천천히 움직일 때처럼, 거의 보이지 않게 생기는 미세한 흔들림 같았다.
“별 걸 다 보네요.”
그날 이후로 그들 사이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연대가 생겼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너무 많은 현실이 있었고, 우정이라고 부르기엔 서로의 침묵을 너무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우물 속에서 서로의 발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덜 외로워진다. 깜깜한 복도에서도 익숙한 발자국 소리 하나가 들리면 덜 무서운 것처럼.
여름이 깊어질수록 도시는 더 짙은 냄새를 풍겼다. 아스팔트 위로 비가 내린 뒤 올라오는 열기, 지하철 환풍구에서 쏟아지는 습한 바람, 편의점 냉장고 문이 열릴 때 잠깐 흘러나오는 인공적인 서늘함. 사람들은 땀을 닦으며 걸었고, 각자의 삶을 담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또다시 우물의 경사면을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애써 웃었고, 누군가는 이어폰으로 외부를 차단했으며,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마치 젖지 않으려는 종이봉투처럼 위태롭게 단정했다.
성우는 여전히 완벽한 회사원은 아니었다. 가끔 긴장이 올라오면 손끝이 굳었고, 바쁜 날엔 판단이 느려졌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자기 실수를 곧바로 존재의 결함으로 연결하지는 않게 되었다. 달리기를 조금씩 다시 시작한 뒤로, 그는 몸이 알려주는 이상한 진실 하나를 배웠다. 사람은 멈췄다가도 다시 움직일 수 있고, 어제보다 느려졌어도 그것이 곧 끝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 느리게 뛰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길은 있다. 길은 빠른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발에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그리고 박주임 역시 완전히 닫힌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 그녀는 퇴근길에 듣는 피아노 곡 이야기를 했고, 언젠가는 아주 무심한 얼굴로 근처 작은 공연장에서 주말 무료 연주회가 열린다는 말도 꺼냈다. 성우는 놀라서 “가보셨어요?” 하고 묻다가, 그녀가 “두 번쯤”이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왠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람은 잃어버린 꿈의 주변을 그렇게 맴돌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못한 채. 불이 꺼진 극장 앞을 한참 서성이다 그냥 돌아가는 사람처럼.
초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날, 회사 앞 가로수에서 마른 잎 하나가 떨어졌다. 아직은 이른 계절인데도 잎 끝이 먼저 누렇게 말라 있었다. 성우는 그 잎을 주워 잠시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잎맥은 마치 오래된 도시 지하철 노선도처럼 촘촘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는 단 한 장의 잎처럼 보이지만, 안쪽에는 수없이 갈라진 길과 말라붙은 강줄기와 간신히 이어진 초록의 통로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의 삶이든 한눈에 다 보이지 않는 지하 구간이 있으니까.
그날 저녁, 둘은 또 우연히 함께 퇴근했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며 박주임이 말했다.
“요즘은 어때요?”
성우는 잠시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괜찮습니다, 하고 습관처럼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알았다. 쉬운 말은 사람을 자꾸 쉬운 방식으로 무너뜨린다.
“여전히 가끔 무섭긴 한데요.”
“네.”
“그래도 전처럼 완전히 깜깜하진 않아요.”
박주임은 그를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물게 먼저 말했다.
“다행이네요.”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횡단보도 위 흰 선들은 잠시 물 위의 사다리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 위를 건너 또 다른 하루로 넘어갔다. 성우는 옆에서 걷는 박주임의 보폭을 느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그러나 그 거리는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당기지도, 억지로 위로하지도 않았다. 다만 같은 우물 속에서, 각자의 상처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때로 관계는 손을 잡는 데서가 아니라, 같은 속도로 걷는 데서 시작되기도 한다.
도시는 여전히 우물이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된 절망을 주머니에 넣고 출근했고, 지친 얼굴로 커피를 마셨으며, 누군가의 냉담한 말 한마디에 밤새 뒤척였다. 어떤 꿈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어떤 상처는 비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아팠다. 세상은 여전히 공정하지 않았고, 노력은 늘 제값을 받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일찍 포기해야 했다. 그 모든 사실은 거리의 회색 먼지처럼 날마다 조금씩 쌓였다.
그러나 우물이라고 해서 꼭 바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물에도 하늘은 있었다. 좁게 잘려 보이고, 때로는 흐리고, 자주 먼지와 전선과 콘크리트 모서리에 가려졌지만, 분명 있었다. 사람은 가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그 하늘을 다시 떠올린다. 귤 냄새 하나로, 손목을 문지르는 습관 하나로, “예전처럼 안 뛰면 되죠” 같은 문장 하나로.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처럼, 그것은 방 전체를 밝히지는 못해도 적어도 방 안에 아직 낮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려준다.
어떤 희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그렇게 실수하지 않으려 다시 파일명을 확인하는 손끝에 깃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느리게 한 바퀴를 뛰어보는 발끝에 깃들며, 지친 사람의 책상 위에 말없이 차 한 잔을 올려두는 동작에 깃든다. 희망은 빛나는 탑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물 벽의 축축한 틈에서 자라는 풀잎 같은 것이다. 쉽게 보이지 않고, 자주 밟히고, 때로는 스스로도 초라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매 계절 다시 올라온다. 누구도 심지 않았는데 어느새 벽 틈에 돋아나는 연둣빛처럼.
성우는 그 사실을 아직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해보다 먼저, 다만 몸으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사람은 어떤 진실을 머리보다 무릎과 폐와 발바닥으로 먼저 배우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새벽, 그는 공원 산책로를 혼자 뛰었다. 하늘은 아직 회색과 푸른색의 중간쯤에 있었고, 먼 건물 유리창 몇 장만 먼저 빛을 받았다. 새들이 나무 위에서 짧게 울었고, 숨은 차갑게 들어와 뜨겁게 나갔다. 무릎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고, 속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달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아침이 세상에는 있다는 걸 그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도 맞이할 수 있는 아침, 느린 속도여도 닿을 수 있는 빛.
달리다 문득 멈춰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지나온 길 위에 얇은 빛이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주 깊은 우물 위에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빛은 소리 없이 퍼졌고, 아직 차가운 공기 위에 금박처럼 얇게 내려앉았다.
성우는 숨을 골랐다.
그의 가슴은 아팠고, 동시에 맑았다. 아픔과 맑음이 한 몸일 수 있다는 걸 그는 그때 조금 이해한 것도 같았다. 비 온 뒤의 공기처럼, 차갑고도 선명하게.
도시는 멀리서 보면 여전히 빛나는 유리잔 같았고, 가까이서 보면 여전히 깊은 우물 같았다. 사람들은 오늘도 그 안을 걸었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주 소수의 어떤 이들은, 다 무너진 줄 알았던 곳에서 다시 발을 딛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깨진 자리 위로 바로 서는 법이 아니라, 금이 간 채로도 천천히 무게를 분산시키는 법을.
성우는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빠르지 않은 걸음이었다.
그러나 분명 앞으로 가는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알았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편에 서 있는 깃발 같은 것이 아니라, 절망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도 이상하게 끝내 꺼지지 않는 호흡이라는 것을.
사람은 그 호흡 하나로 오늘을 건너고, 오늘을 건너다보면 어느새 계절 하나를 넘고, 계절 하나를 넘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늘의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우물 속에서도, 하늘은 있었다.
아주 멀고 좁고 자주 흐려질 뿐, 끝내 사라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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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은 20년 정도 제 서랍속에 보관해왔던

단편들입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는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결론들이 각각의 단편에서 느껴져 그것을 공유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윤담 배상.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