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이세계

에필로그-잔 속의 세상

by 윤담

잔을 기울이면
얼음이 먼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맑고 단단한 소리.
무언가 아직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짧게 울렸다가 금방 사라진다.
나는 그 소리를
이곳의 시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곧 그 경계가 흐려질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
위스키 위에 띄운 얼음은
천천히 녹는다.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조금씩 작아지고,
그만큼
잔 안의 온도는 달라진다.
나는 그 변화를 오래 바라보는 쪽이었다.
급하게 마시지 않고,
얼음이 견디는 시간을
가능한 한 따라가려 했다.
아마도
이곳에 머무는 방식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투명한 것들은
대체로 조용히 변한다.
부서지는 소리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도 없이,
다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미 다른 상태에 와 있는 식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그랬다.
처음에는
조금 덜 아프기 위해 들어왔지만,
머무르는 동안
아픔의 모양이 바뀌었다.
선명했던 감정은
조금 더 묽어졌고,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것들은
조금 더 길게 남았다.
나는 그 변화를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얼음을 손으로 쥐면
더 빨리 녹아버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저 잔을 들고,
천천히
입에 가져가고,
그 사이에서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온도를
느끼는 쪽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느린 변화 속에서만
견딜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는 걸 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나를 버티게 했다.
무언가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급하게 부서지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주었다.
얼음은
결국 사라진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무리 천천히 녹아도,
아무리 오래 붙잡고 있어도,
끝내는
형태를 잃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잔 안에 섞여,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이곳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투명한 이세계는
언젠가 떠나야 하는 곳이었지만,
머무르는 동안의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잔을 들어 올린다.
얼음은 이미
처음의 단단한 모양을 잃었고,
부딪히던 소리도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
잔 안의 액체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온 시간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떠나야 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조금씩 섞여 들어갔으니까.
이제 나는
잔을 비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차가운 감각이
목을 따라 내려가고,
그 뒤에
천천히
온기가 따라온다.
나는 그 온도를
오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기억하지 않아도
이미 남아 있을 것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이 글은
어떤 끝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잔이 비워진 자리처럼,
조용히
비어 있는 상태로 남겨둔다.
그리고 아마,
그 빈 잔 어딘가에는
아직 다 녹지 못한 시간들이
아주 희미하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에세이집

투명한 이세계. .


깊은 집착이었을수도 있는 글입니다.

왜냐면, 투명한 불완전부터 잊지말아야할 투명한 것들로 끝나야 하는 글들을 투명한 이세계로 끌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집필이 바로 이 투명한 이세계였습니다.

그래도 되돌아보면 행복했습니다. 이 투명한 감정이야말로 사십년이 넘는 세월을 관통하는 저의 철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브런치는 30화가 지나면 브런치북을 닫게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II로 이어갈까 하다가.

그래, 이제는 보내주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브런치는 감사한 곳입니다.

사십년간 꽁꽁 싸맸던 제 글들을 숨쉬게 해주는 공간이니 말입니다.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투명한 이세계를 보내더라도 도시유랑이 있으니 그걸로 한번 제 마음을 달래볼 요량입니다.

지금까지 이 투명한 이세계를 읽어주셔서 감시합니다.

제 다른 글들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나중에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윤담 배상.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