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존재의 잔열

by 윤담

정오의 빛이 창문을 통과해 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빛은 직선이 아니었다.
커튼의 결을 따라 부드럽게 굽었고,
나무 바닥 위에 고요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공기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먼지가 햇살 속에서 천천히 떠 있었다.
한낮의 공기 속에는 고요보다 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 빛의 결 사이로,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쓸었다.
손바닥 아래로 나무의 결이 느껴졌다.
살짝 마른 촉감, 그 안에 머물러 있는 낮의 온기.
손끝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갔다.
그 표면의 미세한 요철 하나하나가
마치 시간의 결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공기엔 여전히 냉기가 남아 있었지만,
빛은 이미 봄의 색을 품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황금빛이 흰 벽을 물들이고,
방 안은 조용히 데워지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얼음이 녹으며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계절이 바뀌는 소리였다.

아이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눈에는 온도가 있었다.
빛이 닿을 때마다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 안에는 세상이 비쳐 있었다.
커튼의 색, 나의 얼굴,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시선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늘 세상을 설득하느라 말이 많았고,
누군가를 지키느라
내 안의 온도를 잊고 살았다.
차가운 논리와 단단한 말들로
스스로를 지탱해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동자 안에서
내 얼굴이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이 나를 멈추게 했다.
빛이 그 눈 안에서 굴절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그 순간,
몸 안 어딘가에서 서서히 온도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다시 따뜻해지는 일’이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피부의 표면에서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 안에는 시작과 끝이 동시에 있었다.
태어남의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예감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모든 시간의 경계가
그 짧은 눈맞춤 속에서 녹아내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너무 완전해서,
굳이 단어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 공기엔 먼지, 햇빛,
그리고 아이의 체온이 섞여 있었다.
코끝이 약간 따가웠다.
그건 아마,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살아 있음이란
이토록 단순하고, 이토록 명확한 일일지도 몰랐다.

빛이 천천히 기울었다.
아이의 머리카락 위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그 머리카락은 빛을 품었다가 천천히 놓았다.
나는 그를 안았다.
작은 어깨에 내 이마를 기댔다.
그의 체온이 내 이마를 데웠다.
그 온도는 오래전 여름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멀리 운동장에서 뛰던 아이들의 숨소리,
낮잠에서 깨어나던 오후의 열기,
아스팔트 위에 맺힌 바람의 냄새.
모두 그 온도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타오르지 않았다.
그저 오래 머물렀다.
불꽃이 아니라,
조용히 남는 잔열처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불완전한 온도지만,
그래서 더 살아 있다.”
그 말이 입 안에서 거의 들리지 않게 흩어졌다.
단어들이 사라지고, 의미가 온도로 바뀌었다.
나는 그 온도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창문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따라 빛이 방 안을 한 번 더 스쳤다.
그 빛은 짧았지만 선명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온도로 변하고 있었다.
공기의 밀도, 손끝의 촉감,
그리고 우리 사이의 거리 안에서
그 빛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아서 아름답다고.
모든 온도는 흘러가지만,
흐른 자리에 또 다른 따뜻함이 스며든다고.
그것이 살아 있다는 일의 모양이라면,
나는 이 불완전함 속에서 기꺼이 머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