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여름의 잔향

by 윤담

하늘은 유리처럼 맑았다.
너무 투명해서, 오히려 어딘가 아팠다.
모든 사물이 자신의 색을 과하게 드러냈고,
그 선명함이 마치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햇빛은 건물 벽을 타고 흘러
바닥의 그림자 위에 번졌다.
창문마다 다른 각도로 반사된 빛이
도시를 마치 물속처럼 흔들리게 했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녀가 있었다.

하얀 셔츠 위로 빛이 내려앉고,
그 아래엔 바람보다 느린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햇살이 얼굴을 스쳤다.
빛이 이마 위에서 반짝였다가,
서서히 그 윤곽을 삼켜버렸다.

나는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빛이 너무 강해서,
그녀의 표정이 아니라 빛의 표면만 남았다.
이별은 그렇게 시작됐다.
말보다 먼저, 얼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으로.

멀리서 버스가 지나갔다.
타이어가 도로 위의 열기를 밀어올리며,
빛을 일그러뜨렸다.
그 안에서 그녀의 팔이 잠깐 흔들렸다.
그 순간, 여름이 손끝까지 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불었다.
공기 속엔 금속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틀과 차의 문,
어제 내린 비가 말라붙은 흔적.
그 모든 냄새가 여름의 마지막 온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한 번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움직임만 보았다.
그 말의 형태가 공기 속에 남았다가
빛에 스며 사라졌다.

그녀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햇빛이 한 계절을 끝내듯 서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그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복도 바닥에서 한순간 겹쳤다가,
다시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이별은 그렇게 구체적이었다.
서로의 빛이 엇갈리며
더 이상 같은 면을 만들지 않는 일.

공기가 천천히 식었다.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은 고요했고,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다.
세상이 멈춘 게 아니라,
모든 게 제자리를 찾고 있는 소리 같았다.

그녀는 발을 돌렸다.
햇빛이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걸음이 느렸다.
어디론가 가는 게 아니라,
빛의 방향을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들이켰다.
공기 속엔 먼지와 여름의 잔향이 섞여 있었다.
입안이 약간 짰다.
그건 아마, 이별의 맛일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모퉁이에 닿자
빛이 바뀌었다.
도시는 여전히 밝았지만,
색의 농도가 조금 옅어졌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 속에서
여름이 한 칸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나무는 잎을 흔들며 제 빛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기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건 아주 작은 일,
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

나는 눈을 감았다.
빛의 잔향이 눈꺼풀 안쪽에서 오래 머물렀다.
뜨겁고, 부드럽고,
어딘가 금속성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건 슬픔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가 완전히 식기 직전의 냄새였다.

햇빛은 여전히 강했다.
그러나 그 안엔
이미 가을의 그림자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해했다.

이별은 사라짐이 아니라,
빛이 새로운 각도로 도는 일.
그녀가 떠난 하늘이 너무 맑아서,
나는 도리어 평온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단지, 그 안에서
우리의 계절이 끝나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의 잔향 chapter 완결 -

-다음화 "마지막 장, 존재의 잔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