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여름의 잔향-석양

by 윤담

석양이 건물 사이를 가르며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하늘은 아직 붉었지만, 그 붉음은 이미 힘을 잃은 빛 같았다.
빛은 세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식어갔고,
모든 물건들은 그 빛을 향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너의 자취방 앞 골목에 서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전봇대 그림자가 벽 위로 기어오르고,
창문엔 남은 햇살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너의 방 안에서는 선풍기가 천천히 돌고 있는지
빛이 일정한 호흡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매미 소리는 여름의 마지막 울음을 털어내듯 점점 길어졌다.

너는 문턱에 기대 있었다.
햇빛의 마지막 결이 너의 발목 위를 스쳤다.
너의 머리카락 끝은 금빛으로 번쩍이며 흔들렸고,
그 모습은 마치 여름의 잔열이
사람의 형체로 서 있는 듯 보였다.

“가면… 한동안 못 오는 거죠?”
네가 물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가야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며 텁텁하게 말했다.
“그게… 일이죠. 사는 건 아니고.”
네 말투는 가볍게 던진 농담 같았지만,
그 안에서 지친 숨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나는 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서 빛이 한 번 일렁였다.
그 순간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빛이 너의 눈동자에 닿아
마치 투명한 유리에 스치는 불빛처럼 반짝였다.
그 눈빛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뜨겁게 남았다.

“연락… 해줘요.”
네가 말했다.
그 말은 부탁도, 명령도 아니었고
그저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한
가느다란 문장처럼 공기 속에 떠 있었다.

“응.”
나는 그 말로 너의 마음을 붙잡지도, 놓아주지도 못한 채
짧게만 대답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골목 바깥을 지나가던 차의 그림자가
벽을 가로질렀고,
그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
너와 나의 그림자도 잠시 겹쳤다 떨어졌다.

“석양이 예쁘네요.”
네가 말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은 절반쯤 식어 있었고,
붉음과 푸름이 닿는 자리에서
매미 소리가 여름의 잔열처럼 떠다녔다.

차 문을 닫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짧고 단단한 소리였다.
너는 아주 작은 떨림을 보였다.
내 차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
너의 그림자가 내 뒷불빛 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그림자 끝이 차의 붉은빛에 닿았다.

넌 그 자리에서
손끝으로 허공을 조심스럽게 스쳤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 손이 닿았다 떠난 자리의 온도가
아직 공기 속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매미 소리는 멀어지고,
엔진 소리는 사라지고,
남은 건 골목 위를 흘러가던 빛의 마지막 결뿐이었다.
그 빛은 잠시 머물다
아무 말 없이 꺼져갔다.

방 안에 들어갔을 때
창문 너머의 하늘은 이미 완전히 식어 있었다.
붉음은 사라지고, 저녁의 회색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너는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방 안의 공기엔 아직 여름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벽에는 해가 지나간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너는 조용히 불을 켰다.
그 불빛이 천천히 방 안으로 번졌다.
따뜻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빛.
여름이 완전히 끝나기 전
잠깐 머무르는 마지막 온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