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잔향-도시의 여름밤
차를 잠수교 근처 주차장에 세우자
엔진에서 빠져나온 마지막 열기가
발치의 아스팔트 위에서 얇게 흔들렸다.
뜨거운 냄새가 금속과 섞여
공기 속에 아주 가볍게 번졌다.
문을 여는 순간,
여름밤이 우리를 들이켰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
피부를 천천히 적시는 습기,
멀리서 들려오는 강물의 낮은 숨.
모든 것이 소리보다 먼저 몸에 닿았다.
잠수교 쪽으로 내려가는 길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고 짧게 흐르고 있었다.
이어폰을 낀 이의 발걸음은
음악의 박자를 따라 튀었고,
느린 걸음을 옮기는 이의 땀 냄새는
공기 속 열기와 뒤섞여 거의 향처럼 느껴졌다.
발소리의 리듬이
바닥을 통해 다리뼈까지 미약하게 울렸다.
도시는
습기 속에서 천천히 녹고 있었다.
빌딩의 불빛은 똑바로 떨어지지 못한 채
물 위에서 둥글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빛들은
마치 더운 밤의 심장박동처럼
조금씩 번졌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강가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주차장 난간에 등을 기대자
철제 난간이 식은 열기를 품고 있어
손바닥이 가볍게 움찔했다.
그 촉감이
잠시 우리 둘의 거리를 표시하는 선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빛이
네 얼굴의 윤곽을 잠깐 밝혀서는
습기에 밀려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 짧은 순간마다
네 표정이 조금씩 다른 온도로 남았다.
나는 그 온도를
말보다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강가에서 웃고,
누군가는 뛸 때마다 신발 안의 땀이 흔들렸다.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의 빛을 얼굴에 묻히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이
하나의 넓은 숨처럼 느리게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자리만큼은
마치 시간이 살짝 뒤로 접힌 듯
고요하게 굳어 있었다.
“예쁘네요… 밤이.”
너의 목소리가
빛보다 먼저 공기 속을 걸어왔다.
말 끝에서 습기의 냄새가 잠시 흔들렸다.
나는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쇠의 차가움이 피부로 스며들고,
그 표면에 내려앉은 물기에서
여름밤의 냄새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한강의 빛이
바람 없는 공기 속에서 작은 진동을 만들고 있었다.
“응.
여름밤은
뭔가 더 가까워 보이지.”
말을 내보내자
그 말이 공기에 닿아
천천히 식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때,
멀리서 천천히 바람 하나가 밀려왔다.
바람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약했지만
너의 머리카락을 아주 얕게 흔들었다.
그 흔들림이
도시의 불빛보다 먼저 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잠수교 아래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이
강물에서 한 번 부서져
은가루처럼 퍼져나갔다.
그 퍼짐이
공기 속 먼지와 섞여
빛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있죠”
너는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이런 밤은… 그냥 좋아요.”
그 말이 나오자
공기가 잠시 얇아졌다.
말의 온도만이
습기 사이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너의 어깨 너머로 흐르는 도시의 빛을 바라보았다.
습기, 빛, 너의 숨
그 모든 결이 서로 얽혀
말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짧았지만,
그 말이 퍼져나가는 결이
오래 남았다.
한여름밤의 공기는
쉬이 흩어지지 않는 잔향을 품고 있었다.
그 잔향 위로
도시의 빛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빛은 금방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사라지기 직전의 가장 얇은 순간이
공기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마치
떠나가려는 마음이
끝내 남고 싶어
조용히 손끝을 뻗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