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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Sep 15. 2021

미국은 지금(3) 9.11 후 20년

2001년 9월11일에서 2021년 1월6일


미주 한국일보

20년전 하와이 진주만 공격 이후 처음으로 미국본토가 외적의 공격을 받았다. 진주만공격은 전쟁 중 일본군대가 미해군 함정을 공격 했다.  그러나 9.11은 역사 상 전례가 없는 미 본토 공격이었다. 국적이 분명하지 않은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잠보 여객기를 하이제크 하여 뉴욕의 상징 월드 트레이드 센터 투인 빌딩에 비행기를 통체로 충돌 시켜 거대한 빌딩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무려 3천여명에 가까운 아무 죄없는 민간인이 사망 했다. 불을 끄려고 뛰어든 340여명의 소방관도 순직 했다. 펜타곤은 세계 최강국의 군사 본부 이다. 한대의 여객기는 이 빌딩을 향해 뛰어 들었다. 다른 한대는 미국 국회 의사당을 향 했다. 그러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의 용기 있는 행위로 목표물에 도착하기 18분전 펜실바니아주 생크스빌(Shanksville)에 추락 했다. 그들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세계무역 센타, 미 제국의 상징 펜타곤, 미국 민주주의 상징 국회 의사당을 목표로 해서 돌진 했고 그중 두개의 목표을 명중 시켰다. 


2001년은 21세기가 시작되는 해 였다. 20세기 말에 소련이 붕괴 되었다. 19세기에 민중은 국가의 권력을 군주로 부터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 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의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갈라 졌다. 전자는 똑 같이 나누어 먹고 살자고 했고 후자는 각자가 열심히 일해서 벌어 먹고 살자고 했다. 다른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던 공산주의은 독재로 변하여 권력이 다시 한사람에게 집중 되었다. 다 나누어 주니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었다. 소련은 백년이 못가서 망 했다. 세계 공산주의의 종말 이었다. 미국은 아무 경쟁자가 없이 세계 정상에 홀로 우뚝 섰다. 미국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인류의 이상적인 제도라고 확신 했다.  2001년 미국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 후에 밀어 닥칠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서는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서 너무나 무감각 했다. 


이 때 오사마 빈 라든은 미국을 공격 했다. 대 성공이었다. 벅찬 자존심으로 머리가 커질때로 커진 미국은 화가 머리 끝 까지 올 랐다. 사람도 화가 나면 정신이 없는 데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오죽 했으랴. 장기적인 영향을 따질 정황이 아니었다. 창피하게 당한 미국은 뽄때를 보여 주겠다고 그를 잡아들이고 그가 만든 테러리스트 단체 알퀘이다를 진압하겠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했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트리고 친미 정권을 세웠다. 10년 뒤 오사마 빈 라든은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미군 해병 특공대에 의해서 사살 되었다. 정권을 빼앗긴 탈레반은 끈질기게 게릴라 전으로 미군과 허수아비 정권에 맏섰다. 미국은 아프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 놓고 나오 겠다고 10년을 더 뭉기적 거렸다. 허수아비 정권은 부패할 대로 부패 했고 아프간 사람들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20년전 미국에게 패배 했던 탈레반은 20년 후 미국을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하고 다시 정권을 잡았다. 미국의 치욕적인 패배 였다. 치욕적인 9.11을 보복하겠다고 시작한 전쟁은 20년 후 다시 치욕적인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미국의 화풀이는 단순한 치욕으로 끝나지 않고 미국과 유롭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하고 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락을 침공 했다. 그곳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 하겠다고 덤벼 들었다. 사담후세인의 병사들은 시리아로 들어 가서 아이시스가 되었다. 이락은 다수 쉬아파와 소수 수니파의 갈등으로 혼란에 빠졌다. 2010년 봄 북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 졌다(아랍 스프링). 미국과 유롭 국가들은 이를 대 환영 했다. 그리고 각국의 독재 정권을 쓸어 뜨리는 데 한 목 했다. 그러나 이 지역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 혼란에 빠 졌다. 시리아는 독재자 아사드가 러시아를 끌어 들여 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스람교를 믿는 전지역을 극도의 혼란에 빠틀였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저 버리고 피난을 떠 났다.  피난민을 가득 실은 보트가 그리스, 이태리 해안에 자주 나타나는 연유 이다. 가장 처참한 지역은 시리아 이고 이곳에서 가장 많은 피난민이 발생 하고 있다. 


유롭 국가들은 오랜동안 부족한 노동력을 매우기 위해서 중동지역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불러 들였다. 이들은 유롭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이슬람 전통을 고집하며 살 았다. 일본, 한국, 중국등 아시아 국가들의 부상으로 유롭은 점점넉넉치 못한 나라가 되어 갔다. 중동사람들의 일자리는 줄어 들었다. 사회불만 층이 두터워 졌다. 테러리스트들이 접촉하기 쉬워 졌다. 여기에 피난민 까지 겹쳤다. 이중에 테러리스트들도 섞여 있었다. 테러가 제법 자주 발생하고 사회가 혼란 스러 워졌다. 원래 주인이었던 크리스찬 백인들이 보기에 이민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 이번엔 반 이민 반 이슬람 극우 테러리스트들이 등장 했다. 몇몇 극우 정당은 전례 없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에 성공 했다. 미국과 마친가지로 유롭에서도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활동이 수그러 드는 반면에 극우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증가 하고 있다. 


알퀘이다, 아이시스등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철저한 보안으로 9.11 이후 미국내에서의 이들에 의한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내 극우파에 의한 테러는 꾸준히 증가 했다. 2021년1월6일 극우 테러리스트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령 사건이 9.11.이 20년 되던해에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회 경제적인 변화로 인해서 극우 세력이 성장하고 있는 동안 미국정부는 밖으로 부터의 테러 방지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 이었다. 



미국의 전성기는 1960년 대라고 생각 한다. 이후 일본과 중국은 미국의 제조업을 망하게 했다. 백인 중산층이 점점 줄어 들었다. 외국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프레이숀을 감안 하면 점점 내려 갔다. 빈부의 차이는 날이 갈 수록 커졌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자기들보다 잘 살 았다. 다수인 미국의 백인들은 백인이 아닌 외국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이 때 9.11이 터 졌다. 이슬람 교를 믿는 자들에 의한 테러 였다. 반 이슬람 반이민 정서가 미국 사회에 급속도로 퍼졌다. 9.11이후로 당국의 감시가 소홀 해 졌다. 극우 세력이 성장 하기 시작 했다. 2008년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케냐에서 이민 온 사람의 아들이 었다. 극우 세력에게는 절호 의 기회였다. 트럼프는 기회라고 생각 했다. 극우 세력과 트럼프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 반이민, 반이슬람, 백인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캠페인을 벌렸다. 크리스찬 백인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았다. 2016년에 예상을 뒤 엎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지하에 묻혀 있던 극우파 단체들은 공공연 하게 모습을 들어 냈다. 소우셜미디어에서의 활동도 급 속도로 확장 되었다. 이들의 테러도 날이 갈 수록 증가 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감시는 소홀 했다. 전혀 기미가 없는 이슬람 테러에 대한 감시에 온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2020년 11월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대선에서 패배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판데믹 덕분이었다. 2021년1월6일 미국 상하원은 국회의사당에 모여서 바이든이 새로운 대통령 임을 획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극우파 테레리스트들을 동원 해서 이 과정을 무산시키려고 했다. 수 백명의 무장 폭도들은 국회의사당에 칩입하여 상하의원들을 체포 하려고 돌진 했다. 결국 실패로 돌아 갓지만 아슬아슬 한 순간 이었다. 그날 참여 했던 폭도 600여명이 재판에 회부 되었다. 하원에서는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9.11. 으로 인해서 시작 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1월6일 국회 칩입 사태가 발생한 해에 끝 났다. 2021년1월6일은 새로운 테러시대의 서막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9월11일 부쉬 전 대통령은 펜실바니아 생크스빌에서 9.11 20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우리는 폭력에 대한 위험이 나라 밖으로 부터도 존재 하지만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를 보아 왔다. 외국의 극단주의자들과 국내의 그들이 문화적으로 동일한 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하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며 국가의 상징을 파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썩은 영혼을 내려 받은 자손 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대항하는 것이 우리들의 끝임없는 의무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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