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발레단의 컨탬포라리 무용
이곳 글들은 문화적 열등감에서 빚어진 내 발걸음에 대한 엉거주춤한 내 감성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마치 황새 쫓아가는 뱁새 다리가 찢어지듯... 그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불나방처럼 달려든 나의 얕디 얕은
감성의 기록이고 또 그 아마추어적 감동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짧고 감동은 오래이고 싶은... 주로 공연과 전시가 될 것입니다.
"Never seen before, never felt before, never experienced anywhere."
봄이 오는 길목 광화문 세종문화 회관은 화사한 봄기운이 내리고
(태극기 부대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집회를 하고 있어 그 기분이 싹 반감을 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사실... 사전 인지 없이 본 공연이 때로는 더 진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경우가 그러했다.
오랜만에 보는 무용공연인 데다... 서울 시립 발레단의 클래식 발레 정기공연이 아니라 컨템포라리 무용이라 생소하지만 별 기대도 없이, 일부러 사전 정보도 찾지 않았다.
그렇게 얻어걸린 대어 같은 기분...
정말 전에 본 적 없고, 느낀 적도 없고,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무용이었다.
너무 강렬해서 나올 때까지 그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 너무나 가슴이 커진 것 같은 느낌으로 나왔다.
이 공연을 함께한 지인들이 하나같이 나와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2025.3.15.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춤 공연을 말로 풀어 설명하는 건 내 필력으로는 가당치도 않고 또 그 느낌을 글로 옮기는 것조차 내겐 버거운 일이다. 아무튼 세종 M시어터는 처음 와보는 공연장인데... 세종문화회관 중에서는 중강당 같은 느낌의
공연장으로 10분 전 입장을 했는데 이미 무대에서 남 무용수가 혼자 열심히 독무를 추고 있었다.
아마도 기다리는 동안의 객석을 향한 서비스 같은데... 너무나 열심히 온몸으로 날고 구르고 기고... 무대 곳곳을 그렇게 온몸으로 더듬고 다녔다. 발레단의 전통 발레가 아닌 컨템포라리 공연이다.
정말 궁금하고 설레고 그랬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춤공연에서 스포라니...)
무대에서 막이 오르고 불이 켜지자 반원의 형태로 의자에 검은 정장을 한 무용수 20명이 앉아 있다가 음악
소리와 함께 기괴한 동작이 한 사람씩 시작되어 처음엔 당황도 되었다. 여럿이 같은 동작을 파도처럼 펼쳐가는데 한 무용수만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 계속 그 무용수는 그렇게 혼자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
일테면 다들 뒤로 몸을 젖혀 뛰는 동작에서 그는 계속 앞으로 펄썩 떨어져 내리듯 하고... 꽤 오래도록...
그리고 또 다른 무용수 한 명도 다른 동작을 하기 시작한다. 이게 무얼 의미할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인상적인 장면은... 무용수 전원이 무대에 2열 종대로 서서 천천히 무대를 좌, 우로 걸을 때 한 명씩 무대중앙에서 독무를 할 때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때 각자의 독무가 시작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고백하기도 하고... 슬픈 가족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서사가 춤과 함께 나온다.
발레를 기대하고 갔다면 엄청난 실망했을 것 같았다. 또한 사전 정보 없이 갔던 게 더 좋았던 건 그야말로
전혀 본 적 없고 느껴보지도 못했고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연이란 것이다. 독무는 독무대로 군무는
군무대로 연결구조가 있고 무엇보다 지루할 틈이 없이 계속 무대에선 무용수들이 등장하며 동작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날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며 70분 동안 한시도 잠시 쉬지 않는다. 대단한 체력들이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춤을 형상화하는 사람들, 즉흥성이 극대화된 무대...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음악과 시각적 연출이 발레 테크닉과 합쳐지며 어느새 공연의 일부가 돼버린 관객을 발견하며 나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된 것이 더 놀라웠다. 아무튼 강렬한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느꼈냐 하면... 갑자기 무용수가 나와 무대를 멈추고 객석을 향해 다 일어서라고 한다.
뻘쭘하니 눈치를 보며 하나둘 일어나 모두가 기립.... 그러더니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분은 착석하라...
이땐 웃음이 터져 나왔고 아무도 앉는 사람이 없었다. 그다음엔 무슨무슨 어려운 책이름과 작가이름을 대며 이 책을 읽은 분은 착석하라.... 했더니 정말 몇몇 분이 앉았다.
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걸 주문하며 그분은 앉아라... 그렇게 소수가 조금씩 착석을 하는 동안...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러다 나만 서 있으면 어떡하지? 그냥 거짓말로 슬쩍 앉아 버릴까... 등등의 심적 고민을 내게 던져주는 게 이게 바로 객석과 함께 하는 시간인가 했다(티켓 구매 시 사전 유의사항으로 객석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으니 몇 열몇 석부터 몇 열몇 석까지는 구매 시 참조하라고 나온다) 마음이 콩닥콩닥거린다. 이것도 다
계산된 건가? 그리고 점점 소수만 서있게 되니 그 불안은 증폭되었는데 3월이 생일인분만 빼고 앉아라 하니 거의 다 앉았다. 나도 앉았다.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놀다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생일이 이번 주가 아닌 분 앉아라 했더니 한 분만 남게 되었고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분을 데리고 무대에 올라 남자 무용수 두 분 사이에 앉히자 어색한 시간이 잠시 흐르고 그 여자분은
창피해하고 어색해하고... 객석에선 웃음이 나오고... 그 여자분은 더 창피해하고...
그러다 음악이 나오자 두 무용수의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그 여자분이 무안해하면서도 따라 하고
셋의 신기한 즉석 무용이 시작되었는데 그게 정말 묘하게 어울리고 가운데서 쪽팔려하는 그 여성 관객분은
그럼에도 남자 무용수와 신기하게도 동작이 맞아떨어지며 셋의 합이 이루어졌다. 마치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지도 모르겠고)하지만 정말 하이라이트는 전 무용수가 객석으로 내려와 돌아다니다 눈이 마주친 관객을 한 명씩 일으켜(나는 눈이 마주칠까 봐 무용수가 내게 왔을 때 나는
눈을 내리 깔고 말았다... 바보 같은 극 I형이다) 무대로 데리고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각자의 동작이 다 다른 동작으로 기괴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또 멋있기도 한 각자의 춤 파트너가 되어 추는데 그게 굉장히 잘 어울리고 음악과 함께 너무나 잘 어울려 마치 저 객석의 사람들도 이미 어느 정도 훈련이 된 무용수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고 춤이 시작되자 창피해하며 뛰어 내려오는 관객도
있었고 손에 이끌려 무대에 마지못해 오르며 끝까지 어색해하며 몸을 어찌 할바 몰라하는 관객도 있는 걸
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 멋진 춤이었고 기가 막히게 무용수들과 관객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저 위의 사진이 바로 객석에서 나온 분들과의 합이 된 춤 사진이다.
진짜 피날레는 끝까지 관객 한분이 남아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었는데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무용수와 부비부비 춤까지 추고 자기 자리로 오는 동안 불이 다 꺼지고 단독핀이 그분을 따라 비춰주었다.
세상에... 객석에선 박수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다.
https://youtu.be/K4 iRk7 Nte9 E
집으로 와 그 공연의 감동이 가시기 전 검색으로 제목부터 찾아봤더니...
[데카당스]: 병적인 감수성, 탐미적 경향, 전통의 부정, 비도덕성 등의 특징을 보이는 퇴폐주의
[데카당스]는 프랑스어로 '퇴폐·쇠락’을 의미하며,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났다. 지성보다는 관능에, 도덕·질서보다는 죄·퇴폐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전위적인 미를 발견하려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프랑스의 보들레르·랭보·베를렌과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등이 있다.... 고 나온다.
오늘 공연이 그렇게 퇴폐적이었던가? 무엇이? 어떤 장면이? 하는 물음이 나왔지만 잘 모르겠다.
객석에서 나온 관객 한 분과 무용수 한 분이 몸을 비비며 춤을 추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정도 춤이 퇴폐적이라 할까?
꼭 공연에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다기보다는 형식과 구성에서 자유롭게 춤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가 '오하드 나하린'도 찾아봤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1990년부터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파리 오페라단 발레단,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덴마크 왕립 발레단 등 다양한 무용단에서 작품을 선보였다고 나온다.
넷플렉스 시리즈 '무브'로도 소개가 되었고 LG아트센터에서도 몇 번의 공연을 했고
우리나라 유니버설 발레단과도 공연을 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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