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단 한 번뿐인 연극
2025년 5월 24일 2pm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
이걸 연극이라 해야 할까... 정말 낯선 극 한편을 봤다. 봤다?라는 말도 좀 이상한... 참여했다? 또는 실험에 자발적인 참여자? 또는 동행자였던? 그 어떤 말로 해도 이걸 표현하기 묘하게 어려운데 어쨌든 장르는 연극이라 했다. 이 연극에 참여? 본? 이하 본 것으로 하고....
보게 된 계기는 지인 한 명이 내게 시간 되면 한번 가봐... 그리곤 전혀 내용이나 뭐 이 극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냥 한번 가서 느껴봐~ 였다.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사이트에서 무조건 예매를 했다. 내가 시간 되는 날로...
이하 스포일수 있으나 스포가 아닐 수도 있음
이 극은 정말 리허설 없는 연극이고 대본은 무대에 올라온 배우에게 처음 전달되고 밀봉된 봉투에서 대본을 꺼내는 순간부터 극이 시작된다. 출연진이 저렇게나 많은데 매일 1명이 나와서 진행되니 이 연극은 세상에
단 1번뿐인 연극이다. 사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극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게 무슨 대본을 외고 어떤 상황을 대사로 풀어내고 하는 게 아니라 대본은 작가의 지문이 거의 전부이고 대사는 탄식이나 또는 참여하는 관객이 하는 단편적 말 한마디 정도다. 아무튼...
무대조차 권투링처럼 객석 가운데 있고 사방에 관객이 앉아서 배우는 어느 한쪽만 보고 있을 수 없다. 소품이라곤 작은 탁자와 의자 그리고 물이 담긴 컵 2개와 한쪽에 사다리가 있을 뿐이다. 감독도 없고 리허설도 없고 오로지 그날 무대에 오른 배우에게 대본이 전달되면 배우는 그걸 개봉하여 자신이 어떡하든 진행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티켓 예매 시에도 상연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라고 나온다. 이런 것이 소위 '실험연극'이라는 것인가? 33명의 배우가 매일 한 명씩 출연을 했는데 내가 간 날은 배우 박혜나였다(처음 듣는 배우였고 전혀 생소한 배우였다) 대본을 열면 배우가 작가의 지문을 읽는다.
대본에 나온 대로 관객을 앉아 번호 하듯 1번부터 쭈욱 모든 관객에게 번호를 부여했고 이게 학교 수업 때 선생님이 28번 나와서 풀어하듯... 지문에 따라 관객은 불려 나가기도 하고 무대에서 배우가 되고 그 어색하고 어찌 보면 지루하고 이상한 상황이 지속이 된다. 형식도 파괴되고 내용도 파괴된 이게 연극인가? 뭔가... 보는 내내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몰입되기보다는 계속 밖으로 나와 저 상황이 지금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대체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감잡을 수도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1회성 연극이라...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는 걸까? 인생은 리허설이 없듯... 삶 자체가 1회성이고... 사실 제목부터 의미가 뭘까 궁금했다. 하얀 토끼, 빨간 토끼... 극 중 불려 나온 관객이 빨간 토끼가 되고 하얀 토끼가 되고 그랬다. 어쨌든 연약한
토끼, 특히 빨간 토끼의 귀... 그게 뭘 상징하는 건지 나는 극에서 밖으로 나와 지금 저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무얼 이야기하자는 건가... 등등 관조자가 되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게 스토리가 있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상황과 형식만 남는 것 같기도 했다. 지루하기도 했다. 자꾸만 기존의 익숙한 것으로 보려하니 극에 몰입 안되고 이 낮선 것의 문 밖에서 맴도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혹시 원작자의 나라인 '이란' 내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걸 이 작가가 우회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이 내용이 그런 것도 아니고 극 중 작가의 이 메일주소도 불러주며 작가에게 관객들의 생각을 보내달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극 중에 빨려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가고
싶도록 지루한 것도 아닌 이... 극의 모호함에 원작자가 더 궁금해졌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모든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당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자유가 다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렇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처럼 예술을 배격하고 그런 것도 아닌 나라다. 이란은 영화에서도 세계유수의 감독들을 배출하고 유명 영화제에서 상도 타는 등 이슬람권에서는 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작가들이 많다고 알고 있었다.
다만 이 작가는 군대 징집을 거부하여 여권도 압수되고 국내에서는 활동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해외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이 연극? 이 대본은 세계 32개국에서 번역되어 상연되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소품이 필요한데 관객 중 그게 있냐고 물어보거나 무슨 역을 맡기로 하면 서로 손을 들어하려는 걸
보면 요즘 관객들은 이럴 때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또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의 상황에서 배우가 요청을 하면 서로서로 손을 들고 나서니 말이다.
그리고 보고 나니 다른 배우들은 이걸 어찌 해석해서 어찌 진행을 했을까가 궁금했다. 캐스트 스케줄을 보니 우리가 익히 아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고 배우마다 다 다른 색으로 또는 다은 방식으로 끌어 갔을 텐데....
그래서 n차관객이 생겨나고 n차 관객에겐 할인도 하고 그런가 보았다. 극이 끝나고 배우와 관객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관객들은 할 말이 참 많은가 보았다. 이런 연극 자체가 너무 생소하고 그러다 보니 배우와 관객은 열띤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하고 배우의 역량에 따라 관객과의 소통이 각기 다른 색으로 나올 것도 같았다. 어쨌든 신기한? 생소한 연극을 보았다. 지루한...
이게 연극이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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