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반대한다, 그리고 계속 간다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건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세상이 자꾸만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가고, 여기저기서 끔찍한 전쟁이 이어진다. ‘자유와 인권’을 말하던 거대 국가는 어느새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무뢰배가 되어 세계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그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 혼돈의 한복판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득, 지난해 사두고 앞부분만 읽다 만 <노터리어스 RBG>가 생각났다. 책장을 다시 펼쳤다. 이 책의 제목은 힙합 역사에서 전설로 남은 'The Notorious B.I.G'에서 따온 것인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그녀의 악명 높은 활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별명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내 눈에 선명히 들어온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었다. 보수색이 짙어지던 대법원 안에서 그녀는 ‘진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보였는데 평소 조용하던 그녀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를 향해 “그는 사기꾼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라고 직격 했던 장면은, 다가올 시대를 예감하게 하는 발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말 그렇게 되었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치열했다. 대법원이 보수적인 편향된 판결을 할 때마다 그녀는 번번이 반대의견을 냈다. 키 154cm의 작은 체구였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거인’이라 불렀다. 그 별칭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0년, 그녀는 전이성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사망 직전 가족에게 남긴 말은
“내 가장 간절한 소원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내 후임자가 지명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6주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선거 전에 트럼프가 이미 다른 대법관을 지명했고 결과적으로 대법원의 균형은 크게 기울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투사’로만 기억하기에는 부족한데 그녀는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조용한 말투와 작은 체구였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생각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암과 싸우면서도 판결을 이어갔고,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상징이 된 레이스 칼라도 인상적이다. 판결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던 그 칼라는 “나는 반대한다”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그녀에게 법복 위의 장식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태도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시작은 더 험난했다.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에서 여성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는데 소수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왜 남학생의 자리를 빼앗았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감정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실력으로 답했다. 하버드 졸업 이후 컬럼비아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느 로펌에서도 쉽게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차별을 개인의 불운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것을 결국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았고 그러니 그녀는 법을 바꾸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결국 ‘Weinberger v. Wiesenfeld’ 사건에서 그녀는 성차별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불균형이라는 점을 증명해 내고 말았다.
1993년 연방대법관이 된 이후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판결문에 남긴 짧은 문장, “I dissent.” 그것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다수의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기준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영웅이라기보다 ‘지속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세상을 단번에 뒤집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씩 밀어 움직이는 사람으로 “진짜 변화는 한 걸음씩 이루어진다”라고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삶은 거대한 파도라기보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가까웠다. 작은 낙수일지라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단단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게 "나는 반대한다"라고 일갈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녀가 반대했던 것들은 다시 법률로 제정이 되었다고 한다.
2020년 9월 18일,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아주던 그 ‘낙수의 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세상이 거칠어질수록 그러한 사람이 더 필요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어쩌면 그래서 다시 그녀를 기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걸음이 모여 결국 세상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낸 한 사람. 그 조용한 거인을... 말이다.
그녀의 이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들었을 때 문득 나는 또 하나의 이름 '알렌 긴즈버그'가 떠 올랐고 혹시 이 둘은 성이 같으니 오누이 사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을 통해 세상과 맞서고 조금씩 우리의 삶을 변화해 나갔다면 '알렌 긴즈버그'는 '시'라는 가장 자유로운 도구로 틀을 깨고 세상에 파격으로 맞서며 획일을 거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성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궤적으로 미국현대 사회를 뒤 흔든 두 '긴즈버그'였지만 말이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는 "알렌 긴즈버그"를 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