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른이

[나의 엄마] 그림책공작소, 강경수

by 제이미

당연한 듯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스스로가 얼마나 지쳐있던 건지 힘들다는 말도 행복하다는 말도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렵던 무감정의 나날들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채색이던 마음에 하나 둘 잉크로 물들어 조금씩 나의 빛이, 나의 색깔을 알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동화책이었다. 아이를 위해 읽어주던 동화책으로 오늘도 채워지고 자라고 있는 나는 엄마 어른이 이다.


[나의 엄마] 그림책공작소, 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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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른으로서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보통 다들 그러하듯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육아와 나의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나는 전업맘을 선택하였다. 그동안의 인풋을 뒤로한 채 그저 다시 오지 않을 임신 기간을 누구보다 매일 온전히 행복함을 다 느끼는 나를 보며 우리 엄마는 종종 내가 너무 아깝다는 말을 하셨다. 그냥 내가 보며 지낼 세상이 갑자기 너무 작아지는 것에 속상하셨으리라. 그렇게 여왕 출산을 한 나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실 육아였다. ‘전업’이라는 타이틀은 나로 하여금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과 투철함을 선사했는데, 나는 꽤나 괜찮은 듯 괜찮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말이 되지 않는 나의 마음들이 스스로에게 너무 버거웠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육아서에 갇혀 살며 더더욱 나를 자책과 반성의 도가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당연한 서툶과 마음의 방황은 나에게 너무 큰마음의 무게로 다가왔다. 엄마라는 역할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잘 못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놓친 다른 역할들은 마음의 빚으로 점점 더 커져갔다. 더 외롭고 더 투정을 부릴 수도 없어졌다. 그냥 그렇게 아이가 커가면 해결될 거라 생각한 모든 관계들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나의 엄마마저도 나는 너무나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 잘하고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 안달 난 아이처럼 아등바등 살았다. 쉴 틈 없이 항상 무언가를 내 아이를 위해 했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거는 물론이거니와 아이 살에 닿는 옷가지들, 그리고 놀잇감들 등등 내 손으로 직접 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남부럽지 않게 이쁘고 건강하고 야무지게 커주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우리 엄마는 종종 안쓰러운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싫었다. 그래서 마음은 더 날이 섰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우리 엄마를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주신 가장 최고의 선물은 독서 습관이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나도 꼭 우리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인생 가치 중 하나라 어릴 적부터 함께 도서관도 다니고, 매일 책 육아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꼭 책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과 감정 때문에 소중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나의 고장 난 마음들이 조금씩 힐링되고 있다. 그 많은 육아서와 강연들이 아닌 아이에게 읽어주던 동화책들이 나에게 울음을 펑펑 쏟을 수도 있는, 찡한 마음 때문에 한참을 책 표지를 바라보게도,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게도, 하하하 빵 터져 웃게도 해주는 마법 같은 약이 되었다. 그 덕분에 아이보다 더 동화책을 좋아하는, 동화책으로 자라는 어른이가 되었다. 내용 때문에, 일러스트 때문에, 또는 책을 통해 감정이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오늘도 마음이 채워지며 자라고 있다.


그중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책의 주제는 엄마이다. 나에겐 제일 좋으면서도 반대로 가장 어려운 우리 엄마. 동화책엔 많은 주제들이 있는데 그중에 엄마는 그 책을 읽어주는 엄마를 대변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나보다 더 정갈한 말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가 되어보니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다 똑같구나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 인지의 물음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 있었다. 동생도, 아빠도, 심지어 남편도 한 번에 듣자마자 답이 떠오르는 이 질문들에 유독 나는 우리 엄마에 대해선 답이 어려웠다. 어려서부터도 그랬지만 편지 쓸 때 엄마의 ‘ㅇ’ 자만 써도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대신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난 아직도 엄마에게 편지를 쓸 때 그렇게나 많이 운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목숨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종종 썼다. 그 말의 무게감이 어린 나에게 그리고 어른이 되어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된 나에게 아직도 무거운 거 보면 나는 참 엄마에게 못하고 살았나 보다. 착하고 현명하고 가족에겐 무조건적인 엄마의 30대를 어렴풋이 돌이켜보며 비교도 안되게 치열했을 그 버팀에 박수를 보낸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도 하염없이 부족한 어른이 이다. 아마도 엄마가 어렵다고 느끼고 엄마의 눈빛을 애써 외면한 건 엄마의 엄마가 된 그 시간들을 내 지금 이 작은 위로와 공감으로 안아주기엔 턱없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엄마가 말로 나에게 표현해 주지 못한 마음들을 엄마 동화책을 읽으며 많이 듣게 된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이 있지만, 나는 책들의 단어들과 문장들 사이에서 또 다른 서툴지만 사랑 넘치는 우리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읽힌다.


‘나의 엄마’ 책은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엄마 소리밖에 안 한다. 근데 그 엄마 두 글자를 읽어주다가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심지어는 마지막에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감성 충만 나의 아들도 같이 엉엉 울었다. 엄마라는 두 글자는 의미를 정의 내릴 수 없이 어떻게 말할 수 없는 그냥 엄마라는 글자로 나에게 남기기로 그날 생각했다. 나의 온 세상이고, 가장 든든하면서도 가슴 시리고, 내 인생에 나를 위해줄 가장 처음이자 가장 마지막 사람이 아닐까. 그날 밤,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모르게 유치한 약속을 했다. 나중에 커서 철이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다른 어른들이 흉볼지 몰라도, 엄마를 어머니 말고 엄마로 불러달라고.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엄마일 텐데. 그 엄마 소리만 해도 나는 아직까지도 아니, 아마도 계속 마음이 몽글몽글 할 거 같다. 여전히 엄마 부르는 일이 많은 자칭 말 없는 수다쟁이인 큰딸인 나는 오늘은 우리 엄마를 어떤 버전의 목소리로 불러 보았나 생각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