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1: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기술
· 저자 - 양정무
· 출판사 - 사회평론
학교 다닐 때 가장 흥미 없는 과목은 미술이었다.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색의 조합은 어떻게 하는지 너무 어려웠다.
평생 그림과 담쌓고 살 줄 알았는데. 몇 년 전부터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바라본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작품의 기술과 상관없이 작가의 마음을 알고 싶어졌다. 세상을 볼 마음이 생겼나 보다.
이때쯤 도서관에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총 6권이었고 천천히 읽고 싶어 모두 구매했는데, 인제야 1권 펼쳤다.
책을 많이 읽어서 좋은 점은 사람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와 생각을 배우는 것인데, 시대를 거슬러 예술 작품으로 역사와 문화를 쭉 훑으니 세상을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착각이 든다.
내용뿐 아니라 편집에서도 독자를 배려한 것이 느껴진 책이다. 보통 그림과 도표가 있는 책을 읽을 때, 책장 앞뒤를 왔다 갔다 하거나 그림 설명을 따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그림과 설명의 배치가 꽤 매끄럽다. 매끄럽게 미술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책 속의 문장과 메모
목차
목차
다 읽은 후 목차를 보며 내 생각에 남은 잔상을 적어본다.
원시: 동굴 벽화는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지음) 책에서 읽었던 단편, <스펙트럼>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 또는 우리가 모르는 시대를 암시하고 있으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과 글이 이 세상 의사소통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난생 처음..' 책에 나오는 원시 동굴 벽화는 그것을 증명하는 근거일 것이다.
이집트: 미술에서는 변하지 않는 세계를 표현한다. 사후 세계를 종교처럼 여겼다기보다는 그때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고민이 미학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4대 문명 중 하나이거늘 미술을 전쟁과 무력 과시용으로 썼는지 잔인한 그림이 다수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오래 강대국을 유지한 나라는 페르시아이며, 페르시아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다 무너지는 나라와 다르게 덕으로 제국을 통치했다고 한다.
Ⅰ. 원시 미술 -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 02. 그들은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현생인류가 복잡한 사회를 조직하고 타인과 깊이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생물학적 수명을 뛰어넘어 사회를 지속시키고 지식과 지혜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 71p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한다. 협력 관계와 정밀한 의사소통을 한 데에는 동굴 벽화나 생활 도구에 그들의 의도를 반영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추측한다. 지금 우리도 '사회를 지속시키고 지식과 지혜를 쌓아나가도록' 잘하는 것일까? 원시 시대에 동굴에 그림을 그리며 공통된 지혜를 남기려고 했던 그들처럼, 지금 우리도 같은 목표를 갖고 대화하고 있을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하고 성공한 회사도 결국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조직 문화를 다듬는다.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 협력하고 소통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Ⅱ. 이집트 미술 -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 > 06. 미술의 영원한 주제, 삶과 죽음
미술을 통해 긴 시간 인류가 품어온 바람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미술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재료를 마련하는 겁니다. 이집트 미술이 마련해준 생각의 재료는 무엇보다 죽음입니다. 이집트인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을 나름의 미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예술'은 어떤 의미와 고민을 담고 있을까요?
- 354p
현대의 죽음은 삶과 분리된 것, 즉 더 이상 살지 않는 상태다. 이집트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금과 달랐던 것 같다. 죽은 자의 육신을 그대로 보존하여 그가 밤에는 죽음의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마치, 사는 동안에도 사후 세계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에서는 저자가 죽음을 표현하는 현대 미술과 비교하며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을 보충 설명하고 있어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압축되어 넘나드는 재미도 있다. 작품과 관련된 현대 미술을 이어서 설명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Ⅲ. 메소포타미아 미술 > 05.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결정판
페르시아는 수십 개의 민족과 국가를 상당히 안정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앞서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던 어떤 제국과도 구분되는 특징이지요. 예전의 제국들은 모두 무력으로 다른 민족을 억압하며 힘겹게 국가를 유지하는 데 그쳤기에 힘이 약해지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달랐습니다. 다양한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기틀을 세워 제국 내부의 갈등을 최소화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497p
메소포타미아의 벽화에는 잔인한 전쟁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페르시아를 배워보면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다양한 민족을 억압하거나 통일하는 것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것이 오래 강대국을 유지한 비결이라고 한다.
페르시아 미술의 장점은 연출력이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해 내기보다는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을 가져와 한데 어우러지도록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 514p
우리는 우리의 일에 창의성, 독창성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 만큼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흔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들의 최적 조합을 생각하는 것도 창조의 종류라고 말하고 싶다.
미술만이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거든요.
라피스 라줄리의 무역 기록 수천 장도 중요하지만 그 보석이 발하는 영롱한 푸른빛이 왕족의 부장품에 쓰인 걸 보았을 때 우리는 우르라는 도시 문명의 찬란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이 수만 명의 적을 죽였다는 기록을 읽고서는 사실 여부를 따져보겠지만 그들의 궁전을 장식하고 있던 부조를 본 뒤에는 무력에 근간을 둔 권력, 폭력을 과시해야 하는 권력에 대해 사유해보게 되죠.
(생략) 외국어를 배우면 새로운 세상 하나를 더 읽어낼 수 있게 되듯 미술 언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문자 언어 이상의 풍성하고 생생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528p
그동안 업무 위주의 책을 읽느라 역사는 거의 잊고 살았다. 이 책에서 미술과 함께 시간을 따라가 보니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관과 성향이 내려오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넓게는 인류 공통의 가치관 변화를 느꼈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는 미술도 감상하고 세계사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스토리 풍부한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것처럼, 해외 박물관에 간 것처럼, 생생한 견학 같은 책이다.
업무와 관련된 책을 주로 읽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고, 최대한 관련 없는 책을 고르다 선택했는데 기대보다 풍성한 작품 감상을 했다. 작품의 해석이 현대 작품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고대와 지금이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6권까지 모두 벽돌책인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기대되어 모두 읽을 예정이다. 새로운 세상을 읽을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대로 과거와의 소통을 경험해 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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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