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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Nov 19. 2021

토마토를 파는 70대 괴짜 기업가

슈퍼 토마토를 파는 슈퍼맨 할아버지 이야기 1편







#1. 수상한 할아버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일본 대학 검도부에서 활동하던 나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캠퍼스 구석에 위치한 검도장에서 부원들과 함께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습 도중에 갑자기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검도장에 불쑥 나타났다.

그 수상한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도복으로 갈아입더니 마치 원래부터 검도부원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가 연습하는데 동참하시는 것이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 학교 학생 같진 않은데...


옆에 있던 검도부 동기에게 혹시 저 할아버지가 누군지 아냐고 물었다.

동기는 그 할아버지가 우리 대학 검도부 OB라고 했다.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45살이나 많은 대선배님이었다.


'선생님'이나 '어르신'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고민했지만, 검도부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편하게 '선배'라고 불렀다.




#2. 이상한 선배



그 할아버지.. 아니 그 선배는 좀 이상했다.

 

그 선배는 검도장에 올 때마다 삐까뻔쩍한 스포츠카를 타고 등장하곤 했다.

옷차림은 방금 밀라노를 순회하고 온 듯한 쫙 빼입은 맞춤 정장 차림이었고,

종종 멋스러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 선배는 슈퍼맨 같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다.

2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해내기도 벅찬 검도 훈련을 거뜬하게 소화해냈고, 한 번도 지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70에 가까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체력을 자랑했다. 매번 도핑을 하고 검도 연습에 오시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선배는 (비싼) 밥을 잘 사줬다.

검도 연습이 끝난 후 종종 눈 돌아갈 정도로 고급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우리를 데리고 가서 비싼 코스 요리고급 와인을 사주셨다. 태어나서 와인을 마셔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신에게 득 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항상 베풀기만 하셨다. 그 선배의 지갑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던 건 나이 차이가 45년이나 나는 데도 대화할 때 세대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개그맨이 많기로 유명한 오사카 출신인 그 선배는 유머감각과 재치가 넘쳤다. 최신 트렌드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훤히 고 있었다. 손주뻘 되는 후배들한테도 함부로 말을 놓는 법이 없었고, '라떼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등 훈계하는 듯한 말을 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밥도 잘 사주는데 재밌기까지 하니 그 선배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 선배는 항상 돈과 시간, 그리고 자신감과 여유가 흘러넘쳐 보였다.


도대체 어떤 회사를 다니다가 은퇴했길래 저렇게 이 많은 걸까?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렇게 젊게 살 수 있는 걸까?



그 선배의 정체가 궁금했다.




#3. 슈퍼 토마토를 파는 괴짜 사업가


 

검도부 동기는 선배가 농업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현역 사업가라고 했다.


토마토유전자를 편집 몸에 좋은 효능을 강화한 슈퍼 토마토를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한다.


'슈퍼 토마토?' 

사진 출처: 픽사베이


직접 토마토 농사를 지으신다는 말인가?


유전자 편집은 또 뭐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에 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토마토 농사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런데 유전자 변형 토마토는 위험하지 않나..?'

'애초에 멀쩡한 토마토를 왜 조작하는 거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가 만든 유전자 조작 토마토를 과연 누가 사줄까?'

'그런 수상한 토마토로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거지? 말도 안 돼!'


점점 내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고,

어느새 그 선배가 수상한 사기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식견이 좁고 무식했던 나는 남들이 다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검도부 OB들이 가끔 주말에 검도장에 오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이름이 크게 박힌 명패를 찬 선배들이 눈부셔 보였다.


수상한 토마토나 파는 그 사업가 선배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허구한 날 검도장에 오는데, 

대기업 다니는 선배들은 주말에만 가끔씩 검도장에 방문했다.

당시 내 눈에는 당연히 대기업 다니는 선배들이 사회적으로 훨씬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


대기업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작은 농업 회사를 운영하는 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사업은 그냥 취미로 하는 거고,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금수저일 거라 어림짐작했다.



#4. 괴짜 사업가 선배의 근황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이 된 나는

해외 주재원 신분으로 20대의 절반을 보냈던 도쿄에 다시 돌아왔다.

일본과의 연이 질기긴 질긴가 보다.


얼마 전 대학 검도부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공유하다가

일본 대형 은행에 다니던 검도부 동기가 최근

'그 선배'가 운영하는 벤처기업으로 이직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선배 아직 살아계시니?"


나도 모르게 실언이 나왔다.

지금쯤 70대 중반 정도 되셨을 텐데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나이가 있으니 예전 같진 않으시겠지..?


동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아직도 너무 건강하게 잘 살아 계시고, 10년 전과 변함없이 활발히 사업가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요즘은 검도장에는 안 나가지만 그 대신 매일같이 골프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몇 시간씩 라운드를 돌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아 헬스장에서 3시간씩 운동을 하고 귀가한다는 후문이다. (보통의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체력이다...)


지금도 여전히 손주뻘되는 후배들과 허물없이 잘 지내고, 여전히 많이 베푸시며,

슈퍼 토마토 사업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란다.


슈퍼맨같은 체력과 건강 유지의 비결이 진정 슈퍼 토마토였단 말인가..!!

슈퍼 토마토...



#5. 슈퍼스타★로 거듭난 슈퍼 토마토의 근황



그 선배가 운영하는 벤처기업은 수년간 인수·합병을 거듭해 지금은

자회사와 일본 전국 각지에 사업소를 거느리는

잘 나가는 농업 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닛케이,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TV·미디어에는 물론,

한국 언론에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왜냐면 그 선배의 회사가 개발한 슈퍼 토마토

일본 정부에서 최초로 인증 및 판매를 허가받은

'제1호' 유전자 편집 식품이 됐기 때문이다.


출처: 닛케이 바이오테크(https://bio.nikkeibp.co.jp/atcl/news/p1/21/04/28/08105/)
출처: 마이니치 신문(https://mainichi.jp/articles/20210127/k00/00m/040/115000c)
슈퍼 토마토 관련 국내 언론 보도


슈퍼 토마토는 도대체 무슨 효능이 있길래 이토록 유명해진 걸까?


슈퍼 토마토에 적용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생물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게놈(유전자)의 일부를 마치 문장을 다시 쓰는 것처럼 편집하는 기술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전자 변형(GMO)과는 달리 기존 식품을 효율적으로 품질 개량한 것이다.


슈퍼 토마토는 혈압 억제 효과 및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물질인 '가바(GABA)'를 기존 토마토에 비해 5~6배 함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생산한 농산물이 기존의 품종개량 농산물과 차이가 없으므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판매를 승인한 것이다.


2020년 12월 일본 최초로 유전자 편집 식품 인증 및 판매허가를 따낸 슈퍼 토마토

단숨에 일본 벤처업계의 슈퍼 스타★로 거듭났다.


10년 전에 슈퍼 토마토의 가능성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6. 미래를 읽는 남자



예전에는 '농업 테크(Agri-Tech)'라는 말도 들어본 적 없을뿐더러, 농업으로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고작 토마토 따위로 사업을 한다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선배는 신기할 정도로 항상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미래를 이미 보고 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세상이 바뀔 거라고 호언장담하곤 했다.

나는 그 선배가 허풍쟁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세상이 급속도로 변했다.

미래의 먹거리를 찾는 것이 인류의 중대 과제로 떠올랐고, 농업 테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망 산업 분야로 거듭났다.


괴짜 사업가 선배는 이런 미래가 올 거란 걸 예측했던 걸까?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의 변화를 읽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경제적 자유는 물론, 사업가로서도 엄청난 성취를 이룬 그 선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직장인 5년 차가 된 지금은 안다.

내 시간과 자유를 팔아서 번 돈으로 먹고살고 있는 나는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산다는 게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이제는 안다.


 선배를 어떻게서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처를 몰라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연락을 할까 고민하며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던 중,

그 선배 회사로 최근에 이직한 검도부 동기로부터 연락 한 통이 도착했다.


일본에 오랜만에 온 나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그 선배로부터 먼저 말을 꺼냈다는 것이다...!!!!


도쿄에 근무하고 있는 검도부 사람들과 함께 11월 중에 저녁 모임을 가지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


출처: 디스패치


단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가 분명하다.



이 귀중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 다짐하며

약속한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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