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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Apr 21. 2022

미쳐야 미친다? 버섯에 미쳐 돌아버린 도쿄의 레스토랑

슈퍼마리오 버섯 왕국 실사판, 광기 어린 버섯 레스토랑



#1. 不狂不及(불광불급)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일본에는 '미친' 자들이 많다.


(나도 은은하게 미쳐있지만,

이 사람들은 찐으로 미쳤다.)


일본에 살다 보면 종종, 아니 자주

'와... 미치지 않고서야 저 정도까지 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제품이든 서비스든 취미든

이 사람들은 디테일퀄리티에 미친 듯이 집착한다.

괜히 '오타쿠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세련되게 말하면 '장인정신'의 나라..)

그리고 음식예외가 아니다.


가까운 예로 집 근처 세븐일레븐 편의점만 가봐도 느낄 수 있다.

세븐일레븐의 진열대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맛있는 음식은 다 수집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광기(?)가 느껴진다. (조만간 세븐일레븐에 대해서는 각 잡고 제대로 다뤄볼 예정이다.)

일본 세븐일레븐 편의점 (출처: 유통 뉴스)

 

요즘 식단 관리를 하느라 술 대신 논알코올 음료를 자주 사 마시는데, 시중에 나와있는 논알코올 음료 종류가 너무 많아서 아직 모두 섭렵하지 못했을 정도다.

(기회가 되면 일본의 주류 시장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

이게 다 논알코올 음료라는 사실..


맛없어도 싸니까 그냥 만족하라는 생각으로 '적당히' 만든 편의점 음식이 아닌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맛까지 확실히 보장하는 편의점 음식,

맛없어도 논알코올이니까 감수하라는 생각으로 '적당히' 만든 논알코올 음료가 아닌

알코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맛있기까지 한 논알코올 음료.


일본 사람들은 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만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맛있는 음식과 술을 꽤나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만드는 사람은 개고생 할지 몰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만족을 넘어 감동할 수밖에 없다.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불광불급 [不狂不及]

< 정의 >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 처음의 미친다는 미칠 광(狂)의 ‘미친다’이고 뒤편의 미친다는 도달한다는 의미를 지닌 미칠 급(及)의 ‘미치다’이다.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남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그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일본의 식문화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음식에 미쳐 있는지 단번에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음식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그리고 올해 나는

일본의 미쳐버린 식문화를 제대로 즐겨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음식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 것이다.




#2. 버섯에 도른 자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던 4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자타공인 미식가인 대학 동기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극찬했던 도쿄의 유명한 버섯 요리 전문 프렌치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도쿄의 핫플레이스이자 에비스 맥주(EBISU)로도 잘 알려진 '에비스(恵比寿)'라는 동네에 있는 '에비스 머시룸'이라는 레스토랑이다.


도대체 버섯 요리를 얼마나 맛있게 하길래

한 끼에 10만 원(...ㄷㄷ)이 훌쩍 넘는지 너무 궁금했다.





1. 지극히 평범한 레스토랑 외관

일단 외관은 지극히 평범하다.
레스토랑 입구도 평범하다.


일단 외관만 봐서는 일반 레스토랑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입구 앞에 걸려 있는 'Mushroom'이라는 간판도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하다.  

별생각 없이 우산 꽂이에 우산을 꽂고 입구 현관문을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 웰컴 투 버섯 왕국!

입구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형형색색의 버섯 친구들


가게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마자 흠칫했다.

입구에서 형형색색의 온갖 버섯 장식들이 반겨줬기 때문이다.

순간 레스토랑이 아니라 장식품 가게로 착각할 정도로 버섯 장식품 종류가 다양했다.

대충 구색만 맞춘 수준이 아니라 작은 버섯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본격적이다.


알록달록 영롱한 빛깔을 뽐내며 나를 반겨주는 형형색색의 버섯 친구들을 마주한 순간,

이 레스토랑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버섯 장식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다가

레스토랑 점원분이 나와서 활짝 미소를 지으며 가게 안으로 안내해주셔서 그제야 안으로 들어갔다.



3. 레스토랑 내부 전경

레스토랑 내부 전경


레스토랑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버섯 친구들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일까.    

화려한 입구와 달리 레스토랑 내부는 언뜻 보기엔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다.

인스타에 흔히 올라올 법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같았다.

내부 공간이 넓진 않았지만,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 아는 사람만 아는 파리 골목의 작은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가본 적은 없다.^^)


점원분께서 자리로 안내해주신 후 황송하게도 의자도 빼주시고 코트까지 받아서 걸어주셨다.

점원분의 능수능란한 접객 서비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요리가 제공하는 가치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몸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센스가 돋보이는 냅킨과 테이블 세팅


친절한 직원분께 자리를 안내받고 앉으니 센스 넘치는 테이블 세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깔끔하고 정갈한 테이블 세팅은 물론, 냅킨에 파란 리본이 달려 있는 것도 너무 귀엽다.

(크흐.. 내가 파란색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같이 간 친구의 냅킨에는 귀여운 딸기 장식이 달려있었다. 친구도 딸기 장식을 보더니 매우 기뻐했다.

아직 요리를 맛보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4. 숨은 버섯 찾기

오렌지빛 버섯 조명과 아기자기한 버섯 장식들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오렌지빛 버섯 스탠드 조명이 테이블 전체를 은은하게 비춘다.

따스한 조명에 마음까지 녹는 기분이다. 비바람을 뚫고 찾아온 보람이 있다.

(그 와중에 조명 옆을 깨알같이 장식한 버섯 친구들..♥)


레스토랑 안 곳곳에 걸려있는 버섯 그림
버섯 그림이 걸린 액자, 버섯 모양의 조미료통.. 자세히 보면 죄다 버섯이다.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앤티크 한 버섯 장식들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치 '숨은 미키 마우스 찾기(Hidden Mickey)'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레스토랑 곳곳에 숨어있는 버섯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숨은 미키 찾기(Hidden Mickey) (출처: Amazon.com)


슬슬 배가 고파 오면서 숨은 버섯 찾기 놀이가 질리기 시작할 때쯤, 무심코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봤는데...

이야... 전등까지 버섯..


이야...

전등까지 버섯 모양이다.


저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걸까?

일본 사람들의 디테일에는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다.



5. 화장실까지 습격한 버섯 친구들

화장실 안에서 걸려있던 버섯 도감


식사 전에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 안에 웅장하게 걸려있는 버섯 도감(?)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설마 버섯 도감에 있는 버섯 종류를 전부 외울 때까지 화장실 밖을 나갈 수 없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이때부터 살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버섯 초상화.. 일까..?


버섯 도감 맞은편에는 커다란 버섯 초상화(?)가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버섯은 심지어 귀엽지도 않았다.

만약 정전이 발생해서 화장실 조명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깜깜한 화장실 거울에 저 우중충한 버섯 초상화가 비친다면 공포 영화가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레스토랑에 머무는 한 버섯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게 확실해 보인다.

(살려주세요..)





실제로 레스토랑 구석구석 버섯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 레스토랑 점원분 헤어 스타일도 버섯 머리, 목에 거신 목걸이까지 버섯 모양이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더니

이 레스토랑은 버섯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여기 계속 있다간 나까지 버섯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버섯 모자라도 사서 쓰고 올 걸 그랬어..


버섯 모자 왜 안 챙겼냐...
슈퍼 마리오라도 될걸 그랬어.. (출처: AAHIL DAYANI)


일본 사람들의 집념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한 가지에 꽂히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일본인의 장인정신(광기..)에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어후..

버섯 구경하느라 정신을 쏙 빼놓다 보니

내가 레스토랑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버섯 레스토랑이 아니라 버섯에 단단히 미친

버섯 수집광의 개인 박물관에 온 줄 알았다..^^


유튜버 드로우 앤드류 님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박물관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오른다.

레스토랑 사장님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분은 자신만의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버섯 요리를 맛보기도 전인데  

버섯에 대한 레스토랑의 진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느껴도 될 것 같아요 사장님^^;;)


본격적인 버섯 요리 후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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