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8년 전 나의 부모님은 생애최초로 신도시의 새 집을 분양받아 이사를 했다. 그때의 난 이미 자취 n년차였지만 이사한 집이 그렇게 좋고 신기했다. 내 돈 낸 것도 아닌데 셋집과 자가는 학생인 내게도 이상하게 느낌이 달랐다.
새로 지어진 집은 버스도 드물고 근처에 지하철은 당연히 없었다. 매립지 근처였던 집에서는 머얼리 바다도 보였고 밤이 되면 온 천지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그 집은 엄마의 청약으로 당첨이 된 집이었다. 하지만 준공이 되자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비포장길에 덩그머니 놓여진 아파트. 그게 어디 사람이 살 동네냐며. 두분의 큰 싸움 끝에 마지못해 입주를 했지만 막상 입주하니 처음 사는 새집이 그래도 좋았는지 아빠의 입은 쑥 들어갔다.
그렇게 이사한 집엔 내 방이 있었다. 넓은 내 방에선 등대가 보였다. 서울 자취집에서 대중교통을 무려 세번이나 갈아타고 두시간 반을 꼬박 부지런히 가야 닿을 수 있는 집이라도 주말에 내려가는길이 그렇게 좋았다. 컴컴한 방에서 희미한 등대불이 반짝이면 편안했다. 아 이게 집이구나.하며. 그래서 매주 내려오게됐고 나중엔 자취방도 정리하고 그 먼 학교도 그냥 집에서 다녔다.
그때쯤 붙여둔 포스터가 있었다. 어디선가 얻은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어쨌든 좋다고 붙여둔 거 같다. 책상에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있던 초록색 화분의 포스터.
오랜만에 본가에 와서 누우려다가 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붙였을까 기억을 더듬다보니 입주하고 난 직후였다. 이제는 색이 바랄대로 바란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먼지도 낀. 그 포스터.
이후로 독립을 하고 잊고살고 있었다. 이젠 더이상 이집도 새집이 아니고 지하철도 다닌다. 백화점도 생겼다. 등대는 새 아파트들에 가려져 안 보이게 된지 꽤 됐다. 이젠 그 누구도 이집이 사람 사는 중심가가 아니라고 할수 없을만큼 변했다.
그동안 집은 18년차 포스터만큼 많이 늙어있었다.
들뜬 벽지와 낡은 마룻바닥은 세월에 너무나 정직하다. 그렇지만 그 공간에 촘촘하게 낀 먼지만큼 숱한 순간의 기억을 머금고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을 재산증식의 대표수단으로 삼는다. 물론 내집은 금전적 가치로 따지고들면 가장 비싼 재산이긴 하다. 그렇지만 좀 낡아서 금전적 가치가 떨어진대도 쉽사리 떠나고 싶지가 않다. 때론 공기처럼 당연한듯 살지만 그래도 떼지 않는 포스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