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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Apr 20. 2024

브리즈번이 왜 할일 없는 곳이야?

이다지도 바쁜 브리즈번 1주일

 "브리즈번에서 일주일씩이나요? 할일 없을 텐데. 잘못 계산하신 거예요."


가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람들이 브리즈번이라는 동네는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액티비티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난 지금 브리즈번에서 6일째 보내고 있는 중이고 지루하단 생각은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브리즈번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퀸즐랜드 주의 제1도시다. 하지만, 시드니나 멜버른의 규모에 비교하면 도심이 작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1년 내내 날씨가 온화하고 춥지 않아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남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이 도시는 아름다운 섬과 골드코스트 등의 유명한 해변 관광지가 인접해 있어 해양 스포츠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나는 저녁비행기로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당일엔 아무것도 못 했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모레튼 아일랜드로 떠나는 배를 탔다. 모레튼 아일랜드는 페리를 타고 1시간 여를 가면 도착하는데 탕갈루마 리조트라는 아주 유명한 스팟이 있다. 난파선 스토클링, 사막 사륜바이크, 헬리콥터 투어, 돌핀 피딩, 서핑보드, 낚시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나는 난파선 주변 스노클링과 돌핀피딩을 선택했다. 리조트에 묵지 않아도 리조트 내 VIP라운지라고, 샤워시설과 락커, 휴식공간과 커피와 차 등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쓸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전예약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미리 예약되지 않아도 일부 액티비티는 당일날 가서 신청하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관광에는 25불의 점심바우처와 페리에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우처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대략 한국돈 15만원-18만원선으로 이용 가능하다.




 1박을 하는 옵션도 물론 있지만 다녀온 바로는 사실 거의 12시간을 즐길 수 있으므로 당일투어로도 충분하다. 물론 고운 모래가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리조트 내 각종 레스토랑, 바, 그리고 야외수영장 2곳이 더 준비되어 있다. 수영을 하긴 하지만 잘 못하는 나는 스노클링을 할 때 교관이 거의 끌고 다니다 시피 해서 문제없었다. (잘 못한다고 등록할 때 얘기하니 전담으로 한명을 붙여줬다) 그러니 못한다고 해서 포기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수영이나 스노클에는 도가 튼 사람들 같았지만 나는 "쥐뿔도 못한다"는 것에 별로 창피함을 느끼는 부류가 아니어서 입에 무는 그 이상한 물안경 겸 공기숨통? 도, 오리발도 첨 해봐서 할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시크한 교관 셸든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물에 들어가자 천천히 하나씩 가르쳐주면서 튜브를 잡으라 하고 "넌 그냥 물안만 구경해, 수영도 하지마"라며 끌고다녔다. 무척이나 재밌었고 신기했다. 그렇게 스노클링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어있다.




 물놀이 후엔 맥주지. 맥주에 피쉬앤칩스를 우걱우걱 먹고 배를 채웠더니 나른하다. 해변에 가서 수건을 깔고 누워있었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된다는데 어쩌랴. 이런데 와서 소가 되든 돼지가 되든 상관없다. 그러다 적당히 피부가 익어 뜨거워지면 바닷물에 들어간다. 바닷물이 차갑긴 하지만 워낙 해가 뜨거워서 잠시의 썰렁함만 참으면 물 속이 되려 온도가 좋다.



 그렇게 물놀이를 좀 하고 나니 다시 목이 마르다. 3시쯤이 되면 불타는 태양도 어느정도 좀 기세가 꺾인다. 잠시 바에 들어가서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호주맥주 중에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어본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석양이 진다. 돌고래 피딩은 해가 진 직후에 이뤄진다. 그래서 약간의 요기를 하고 리조트를 한바퀴 둘러보면 돌고래 피딩장소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확실히 인기가 많은 액티비티이긴 한가보다.




 솔직히 나는 돌고래는 이번에 호주에 와서 처음 봤다. 물개쇼나 아쿠아리움의 고래를 본적은 있는데 돌고래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액티비티를 꼭 하고싶었는데 애들만 있음 어쩌나 내심 좀 걱정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나같은 어른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아이들보다 혼자 온 사람들, 노인들, 부부들, 많은 수의 어른들이 돌고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고래들이 바다에서 해안가쪽으로 오자 어두운 와중에도 물가에 그림자가 졌다. 그래도 야생돌고래인데 아기들이 가까이 가서 접촉해도 되나? 싶은 걱정이 되었는데 기우였다. 숙련된 전문가들이 조별로 줄을 세운 후 한팀씩 두 명이 전담으로 돌고래를 컨트롤하며 물고기를 주게 도와주었다. 허리까지 차는 물속 바다로 들어가자 돌고래 한마리가 내 옆으로 어슬렁대며 다가왔다. 물고기를 한 손에 든 채로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물속으로 넣으라는 전문가의 신호에 따라 물속으로 물고기를 든 손을 넣었더니 돌고래가 알아서 내 손은 물지 않고(?) 물고기만 싹 하고 입으로 집어갔다. 돌고래를 쓰다듬거나 만지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가까이에서 교감할 수 있단 게 신기했다. 그러고 났더니 한밤중이 되었고 배를 나고 숙소로 오자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 다음날은 코알라와 캥거루를 질리도록 볼 수 있다는 로네파인 코알라 상투어리라는 곳으로 갔다. 대중교통으로는 한시간 넘게 걸리지만 우버를 타면 20분이면 도착한다. 이 곳은 캥거루 자유구역이 있어서 먹이를 사서 캥거루에게 직접 먹일 수 있다. 하지만 캥거루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 배가 불러서 오후지나서는 잘 안먹지 않을까 라는 망상에 빠져 걔들도 나도 컨디션이 좋은 아침 시간에 오픈런을 하기로 마음먹고 일찍 그곳에 가 1빠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코알라를 만지거나 안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도 현장발권 시는 일찍 가야 할 수 있다. 1빠였으므로 나는 당연히 첫타임에 코알라를 안아볼 수 있었다. 묵직한 코알라의 털은 엄청 부드러웠고 이게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래도 되나? 싶은 접촉도 마구 시켜준다.



캥거루들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힘이 좋아 보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겁이 없는 건지 익숙한 건지 아기들이 손에 피딩을 직접 시켜주도록 부모들이 옆에서 지켜만 봤다. 나는 처음엔 무서워서 먹이를 바닥에 뿌렸는데 얘네들도 줏어먹는게 싫은지 그렇게 주면 잘 안먹었다. 손바닥에 먹이를 어느정도 쥔 후에 동그랗게 모아 입 근처로 내밀자 잘 받아먹기 시작했다. 어떤 캥거루는 이빨로 슬슬 긁어먹다 보니 이빨이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캥거루는 살살 혓바닥으로 조심스레 핥아먹다 보니 간지럽기도 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언제 또 그렇게 야생동물을 경험해보겠는가 싶어 꽤 오래 코알라존과 캥거루존을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은 솔직히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슬슬 퀸즐랜드 갤러리를 갔다. 호주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국립갤러리들이 전부 무료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료라고 해서 아트피스 소장품 수나 질이 떨어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피카소, 피사로, 마티스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있고 호주 출신의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있다. 컬렉션이 단조롭지 않아서 좋았다. 일본에서 넘어온 작가들도 있었고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넘어온 작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미국이나 멕시코 쪽에서 넘어온 작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갤러리의 건축구조도 특이해서 그것을 구경하는 맛도 있었다. 현대미술 갤러리와 옆에 붙어있어서 오전엔 그냥 갤러리, 오후엔 현대미술 갤러리에 들르면 괜찮을 것 같다. 비가오거나 날씨가 궂은 날엔 실내활동이 좋으니까. 내가 간 날도 비가 왔다. 그림을 다 보고는 비가 떨어지는 중정을 보며 와인을 마셨다.

 네번째 날. 브런치를 사먹었다. 브리즈번은 멜버른이나 시드니에 비해 유명 카페나 브런치 가게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커피로 유명한 집이 있길래 가서 먹어봤다. 플랫화이트는 부드럽고 고소한 원두맛이 잘 조화를 이뤄서 제법 좋았다. 같이 시킨 아보토스트도 먹을만했지만 가격대비는 잘 모르겠다. 브리즈번이 이주하고 싶은 도시 1,2위를 호주내에서 다툰다던데 못 오는 이유가 다른 도시보다 일자리가 부족해서란다. 하지만 여기도 다른 호주 도시들과 같이 아침시간엔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카페며 거리가 인파를 이룬다. 우리나라랑 호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다는 것.


 다섯째 날. 아파트먼트에서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호텔로 오니 와. 천국이다. 야외 수영장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된 성급호텔들만의 스탠더드 서비스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운좋게 얼리 체크인을 받아줘서 아침부터 수영장에서 광합성하면서 놀았다. 오후에는 브리즈번의 사우스뱅크라는 곳에 가서 야외 라군에서 놀았다. 무료인 그곳은 물이 깨끗하고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수영하다 모래밭에서 광합성하다 놀며 쉬며가 가능하다. 근처에 있는 펍들에서는 네시가 되자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며 공연도 구경하고, 마침 SZA라는 유명가수의 콘서트가 인근에서 예정되어 있어 거기에 흥분한 팬들의 하이파이브도 받으며 저녁까지 즐겁게 보냈다.(밤엔 너무 시끄러웠단 게 조금 흠이긴 하지만)

 그리고 대망의 여섯째 날. 내일이면 시드니로 넘어간다. 날씨가 맑아서 햇빛도 쬐고 수영도 즐길 겸 조식을 일찍 먹고 호텔 야외 수영장에 나왔다. 여행이 길어져서 인지 무리를 해서 인지 사실 온 몸이 몸살든 것 마냥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콧물도 난다.(아마 감기인 듯) 귀찮아서 하루종일 누워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샤워부터 하자고 생각하고 씻었더니 몸상태가 좋아졌다. 아침엔 무조건 씻는다는 루틴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디션이 올라가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렇게 씻고 아침먹고 수영장에 왔더니 사람이 제법 많다. 하지만 날씨가 안좋아진다는 예보가 있어서 놀수 있는 동안엔 충분히 놀다가 호텔에서 쉬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다. 브리즈번에서 더 많은 당일치기 여행옵션을 선택할 수도있었다. 골드코스트나 누사비치 같은 근교투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심심하거나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휴가동안 브리즈번에만 와서 5~6일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브리즈번은 한국에서 직항이 생겼다고 들었다. 시드니보다 가깝고, 하와이보다는 물가나 호텔이 저렴하다(동남아 만큼은 아니다) 동남아는 맛있는 게 많고 가성비가 좋긴 하지만 호주, 하와이 등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므로 절대비교를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바다 같은 온도인데도 이상하게 호주는 벌레가 적다.(아예 없지는 않지만) 깔끔만 떠는 나로서는 그점도 큰 장점이다. 팁분화가 없는 것도 좋았다. 명품이나 화장품 등의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호주가 큰 매리트는 없다. 그렇지만 유럽과 서양의 문화가 섞여있는, 자연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브리즈번을 추천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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