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난 뭘 좋아해?> 비하인드 스토리
독립출판을 하면서 기획, 글쓰기, 디자인, 퇴고, 인쇄와 관련된 것 외에도 고민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사소한 고민부터 중요한 고민까지. 독립출판 막바지까지 지독하게 고민한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처음엔 ISBN(도서에 국제적으로 표준화하여 붙이는 고유의 도서 번호)을 신청할 생각이 없었다. ISBN을 신청하려면 1인 출판사를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지만, 출판사 이름을 정하려면 한참 고민해야 했고, 이에 어울리는 로고 디자인까지 할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아팠다. 정산할 때 책방마다 계산서 발행도 번거롭고, 매년 면허세를 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생각을 바꾼 건 인디펍에서 ISBN 대행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였다. <도대체 난 뭘 좋아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해서 도서관에서도 내 책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ISBN이 있어야 해서 바로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ISBN 고민과 함께 인쇄 직전까지 고민했던 책 가격. 처음엔 다른 독립출판물 가격을 둘러봤는데 내가 생각한 가격보다 저렴한 책이 많아서 그 가격에 맞춰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내 책 판형보다 훨씬 작거나, 쪽수가 적거나, 제작한 지 1년 이상 지난 책이어서 더 저렴한 가격에 책정했다고 판단했다. 판형과 페이지수가 비슷한데 여백이 많고 내용이 적은 경우도 있었다. 표지에 공을 덜 들인 경우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좋은 사양의 책인데 가격이 저렴하다면 대량 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리해서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내 책과 비슷한 책 몇 권을 두고 평균 가격을 내어 정했다.
독립출판 후기를 검색하면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세트처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독립출판 제작 초반에는 '텀블벅 당연히 해야지!'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텀블벅이 부담스러웠다. 우선 텀블벅 판매 목표 금액을 달성할 자신이 없었다. 본인이 유명하지 않은 이상 텀블벅 판매 지인 판매로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텀블벅이 책 홍보 수단으로 좋았지만, 지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취향과 무관한 책을 사달라고 영업하고 싶지 않았고, 굳이 지인에게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적게 팔리더라도 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또한 텀블벅 달성을 하려면 책만 팔면 안 되고 굿즈도 같이 팔아야 했다. 책 만드는 것도 버거워 죽겠는데 굿즈까지 만들 생각을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스트레스받으면서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아서 깔끔하게 텀블벅은 포기했다.
텀블벅처럼 독립출판하면 북페어도 당연히 참가해야 하는 줄 알았다. 북페어는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 한 권만 내도 참가는 가능했으나 주어진 공간에 책 하나만 덜렁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 외에 굿즈로 채우고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기획도 해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참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가와 함께 북페어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언젠가 같이 참가할 작가를 알게 된다면 도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택배 상자는 5-6권, 10권, 20권, 30권, 40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를 낱개로 파는 사이트에서 각각 소량 구매했다. 5-6권 상자는 독립서점에 처음 입고하면 샘플 포함해서 보낼 때 필요하다. 10권 상자는 서점에서 재입고 요청 시, 20-30권 상자는 인디펍에서 입고 요청이 들어올 때 필요하다(40권 상자는 인디펍 최초 입고할 때 한번 사용). 상자는 크기가 여유로우면 책이 움직이면서 파손될 수 있어서 책을 뽁뽁이로 감았을 때를 감안해서 사방 2-3cm 여유만 두고 주문했다.
당연히 우체국 택배가 더 저렴할 줄 알았는데 편의점 택배가 더 저렴했다. 편의점마다 택배 접수 마감 시간이 달라서 문의해서 접수하면 1-2일 내로 도착한다. 다만 희한하게도 어디서 편의점 택배를 접수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편의점 앱, 택배 앱, 택배 통합 앱, 네이버 택배, 현장 접수 등 전부 다 가격이 다르다! 블로그에 친절하게 정리해 둔 글도 있으나 가격이 자주 바뀌는지 다른 부분이 많았다. 알아보다가 머리 아파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 앱으로 예약해서 택배를 접수했다.
고민 하나 해결하면 다른 고민이 있고, 다시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마치 안 보이는 직원이 '결재해 주세요' 하면서 결정해야 할 것들을 자꾸 만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내린 결정이 쌓여서 독립출판을 할 수 있었다. 나보다 앞서 독립출판에 도전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 독립출판에 도전할 누군가에게 내 사소한 경험이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