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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밋 Sep 09. 2024

독자의 아찔한 후기

<도대체 난 뭘 좋아해?> 비하인드 스토리

책을 냈으면 독자의 후기는 피할 수 없는 법. <도대체 난 뭘 좋아해?>를 읽은 독자의 후기는 정말 아찔했다.






엄마는 못 말려

인쇄한 책을 받자마자 엄마에게 줬다. 책을 주고 나니 어쩐지 민망해서 내 방으로 쏙 들어갔다. 거실에 앉아 TV를 보던 엄마는 책을 조금 읽다 덮어두고 나중에 읽을 거라 예상했으나, 책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평소에도 웃음이 많은 엄마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헤헿! 하핳!"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명랑한 웃음소리에 괜히 쑥스러워서 방문을 살포시 닫았다. 그래도 엄마가 책을 즐겁게 읽는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혼자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음 날부터 스스로 영업사원이 되어 여기저기에 책을 홍보했다. 일터에 책 홍보 현수막까지 붙이겠다는 엄마를 말리느라 식은땀이 났다. 카톡 프로필부터 책 사진으로 바꾸고 엄마가 일하는 회사 사장님, 삼촌, 막내 삼촌한테까지 홍보했다. 예상치 못한 독자에 눈앞이 아찔했다.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은 회사 사장님의 가족과 숙모, 20년 이상 교류하지 않았던 사촌 동생들에게 까지 전달되었다. 


부끄러워서 그대로 하늘로 솟아버리고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엄마가 그만큼 책이 좋았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번에 책을 낸다면 엄마한테 비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의 열정



아니, 눈물이 왜 거기서 나와...?

남자 친구는 책에 사인을 요청했다. 급하게 사인을 만들고 연습해서 어설프지만, 첫 친필 사인본을 전달했다.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귀엽다며 좋아했다. 헤어지고 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데 남자 친구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책을 단숨에 읽고 감상평을 위해 전화한 것이었다.


북토크를 하면 이런 느낌일까? 50분이 넘도록 책 내용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남자 친구는 '이모티콘 도전기'를 보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해서 당황했다. 눈물의 ㄴ도 흘릴만한 분위기의 글이 아닌데...? 예상 못 한 반응이었으나,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다는 의미여서 뿌듯했다. 다른 사람한테도 책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라고 하길래 좋은 칭찬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남자 친구가 한 말은 진심이었고 자꾸 주변 사람에게 책을 홍보하고 다녔다. 회사 동료, 후임, 친구들한테도. 이렇게 영업에 소질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상관없는데 OO의 여자 친구가 쓴 책을 읽을 남자 친구의 주변인을 생각하니 이번엔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고마웠지만 '왜 그렇게까지? 책은 내가 알아서 팔게ㅠㅠ' 이런 마음이었다.


남자 친구의 홍보에 직접 책을 사고 후기를 전달한 사람들 덕분에 땅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이 점점 누그러졌다. 온라인으로 구매해도 되는데, 인스타그램에 정리한 입고 서점 목록(정리하면서도 이걸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을 보고 찾아가 아내와 함께 직접 구매한 분, 본인이 읽고 좋아서 친구에게도 선물한 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내적 친밀감 높아졌다는 분 등 후기를 전달받으며 책이라는 매개체로 모르는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사인 연습



서평단은 책 마케팅에 별 효과 없다던데

인디펍에 입점할 경우 서평단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처음엔 신청을 하지 않으려 했다. 서평단을 해봤자 얼마나 좋은 후기를 써줄지 알 수 없었고, 독립출판 커뮤니티에서도 서평단은 책 판매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도 나쁜 평이든 좋은 평이든 듣고 싶어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책을 사서 후기까지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서평단을 통해서라도 내 책에 대한 후기를 봐야지 싶었다.


혹시나 누가 서평을 올렸을까 봐 검색창에 책 제목을 생각날 때마다 검색했다. 연예인이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책을 판매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드디어 첫 서평이 올라왔다. 뭐라고 썼을까 두근두근하면서 글을 클릭했다. 꽤 글이 길었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서평을 읽어 내릴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마음이 괜히 찡해서 자꾸 미간을 찡긋거리며 글을 읽었다. 책 속에서 본인에게 와닿았던 문장을 하나씩 짚으면서 자기 생각을 썼는데, 본인만의 해석을 통해 내가 쓴 문장이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다른 서평에서도 내 경험과 생각에 공감되고 위로가 되었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나 또한 같은 경험과 생각을 가진 독자를 만나 위안이 되었다.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니. 공감의 힘은 위대하다.


서평단이 아니 여러 서평단 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적어내려 주신 후기한 줄, 단어 하나, 자음, 모음, 마침표, 쉼표까지 소중했다. 책 후기라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밑줄과 인덱스 스티커 표시도 다 귀했다. 감사해서 후기를 다 이미지로 저장해 놨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비공개하거나 지울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저장으로는 성에 안 차서 인쇄해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 계정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지인들이 다음 책도 낼 거냐고 물으면 "내면 좋지"라고 답했었다. 그 말엔 '책을 또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된다면 내면 좋겠지'라는 사실상 '못 낼 것 같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도대체 난 뭘 좋아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책을 또 만들고 싶다. 아니 만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자의 아찔한 후기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 좋은 걸 어떻게 잊고 살아? 다음에는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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