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인가 소신인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각자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수용한 관계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가끔 삘타면 자주 만나지만 이따금씩 몇 달간 연락하지 않고 지내도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전형적인 절친이다.
친구는 타투이스트이다.
20대 초반 군전역 이후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릴지, 자신이 동경하던 타투이스트의 삶을 쫓을지의 기로에서 타투이스트의 삶을 선택하고 30대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 직업을 영위하고 있다.
씬의 특성상 그가 빚어내는 작업물이 곧 그를 나타내기 때문에 본인의 멋, 그러니까 캐릭터가 확실해야 한다. 친구는 '올드스쿨'이라는 장르를 영위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매일같이 성실히 그림을 그리며 포트폴리오를 누적한 덕에 인스타그램에 3만 명 이상의 팔로워가 있다. 해외 스튜디오에서도 몇 차례 초청을 받았으며, 홍대 부근에서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타투 스튜디오가 2개나 있다.
그런 그 친구가 최근 진로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재로도 당장 먹고사는 것에는 크게 문제는 없지만 업계 특성상 수입이 일정치 않고, 본인의 타투 스타일 특성상 수요층이 존재하긴 하지만, 풀 자체가 크지 않아 한계가 명확하단다. 그래서 다른 스타일을 도전할지, 아니면 타투에서 파생된 다른 업종, 예를 들어 반영구 시술 쪽을 해볼지, 아니면 다 집어치우고 새로운 것을 도전할지를 고민하고 있단다.
친구와 나의 닮은 점은 각자가 추구하는 멋의 형태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나나 내 친구나 각자의 소신에서 벗어난 것의 멋을 터부시 한다. 나는 5년째 5시에 일어나 2가지 이상의 직장 생활과 규칙적인 운동과 독서, 일기 쓰기 따위의 일상을 통해 빚어낸 나만의 독특한 자존감의 출처가 있다. 내 친구 역시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멋을, 스스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방식대로 표현하여 씬에서 자기만의 멋을 빚어냈다. 그것이 그 친구의 커리어 자체이며 어느 정도의 평판을 형성하고 있다. 나나 내 친구나, 각자가 본인만의 스타일과 소신대로 빚어낸 '멋'이 있고 그것을 통해 현재 완벽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끔찍이 불행하지도 않은 정도의 안정감을 갖고 있어 더 그러한 고집이 있을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이 이야기로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것은 비단 우리 둘만의 고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어느 정도 커리어의 안정이 되어 소속감도 있고, 벌이도 안정된 삶. 주관도 없이 그저 유행만 좇던 과거와는 달리 나한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안 어울리는 것은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다소 편안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지금 이대로 계속 적응하고 사는 게 맞는지. 뭔가 변화를 도모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다른 것을 새롭게 추구하자니 지금 것을 잃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고, 유행을 좇는 게 다소 요란스럽다고 느껴지는 나이.
20대 때는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유행의 중심에 있었다. 늘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고, 만나는 사람과 그룹도 많으니 서울 전역 곳곳으로 사람을 만나며 놀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유행들. 알게 되니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그 유행들을 소비하게 되곤 했다. 지금은 소수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가던 곳만 가게 된다. 나이 탓에 피곤함을 더 크게 느끼는 건지, 시간이 흐르며 책임감의 무게를 인지한 탓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에 대한 거부감인지.
맹목적인 유행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유행을 좇는 사람들 또한 상당한 용기로 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자기 PR이 무기가 되는 요즘 시대에 가오 부리며 자기 멋을 유지하겠답시고 아무도 몰라주는 삶이 되려 초라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행을 좇으면 인지도가 생긴다. 그렇게 자기 몸값을 올린 후에 자기 멋을 파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또 안정되었다고 여겨지는 지금 시점에 다양한 유행을 좇으며 경험한 것들 가운데 미처 알지 몰랐던 새로운 내 멋이 파생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 소신이 먼저냐, 시장의 니즈에 맞추는 것이 먼저냐.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