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은 무엇을 위한 무기인가.
나는 솔직한 게 좋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진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뿐만 아니라, 난잡하고 망측하며 외설적인 데다 그악스럽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애쓴다고 충격적인 사건들 앞에서 냉소적이고 담담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그럴듯한 핑계 (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긴 하지만)로 포장하며 죄책감을 피하려는 사람들을 기만자 취급하며 피하는 편이다. 비겁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 삶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는 늘,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냐라고 묻는 질문에는 대답이 망설여진다. 나는 '솔직함'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내 안에 내재된 '허세가 잔뜩 낀 기만자이자 거짓말쟁이'의 모습을 미치도록 혐오하며 피하고 싶기 때문에 취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한 사람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솔직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냐는 물음에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음과 양이 존재하며, 솔직함 또한 그렇다. 솔직함은 내가 내 마음 편하고자 추구하는 멋일 뿐, 이따금씩 그것은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으며 솔직함이 무조건적인 정의는 아니다. 세상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사회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알베르 까뮈의 작품 [이방인]의 뫼르소도 솔직함을 관철하다가 기어이 죽임을 당했다.
비록 인간의 정의가 너무나 불완전하다고 해도, 인간의 정의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정직함을 필사적으로 견지함으로써 그 불완전함을 교정하고자 한다.
- Albert Camus -
나에게 솔직함이란 일종의 무기다. 위에도 썼지만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허세스러움을 최대한으로 피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SNS나 사업체는 되도록 담백하게 운영하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판매하는 PT, 다이어트 음식 등에 대해서도 마케팅이랍시고 수려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고, 본질의 가치를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사업체들의 현장과 내가 멋없어하는 타 업체들의 위치를 비교해 볼 때면 좌절하고는 한다. 내 기준의 미달인 상품들 같은데 불티나게 팔리고, 그에 비해 내 업장의 매출을 비교할 때 마주하는 초라한 기분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실 매출 자체는 크게 다를 것도 없을 텐데 괜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겠지)
물론 내가 멋없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로 귀결될 수는 없다. 단순히 내 뇌피셜에서 기인한 의견일 뿐이며 그들의 상품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속단이며 교만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상품 자체를 폄하한다기보단 그들의 방법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가로서 나보다 더 나은 매출을 발생시키는 업장의 방법을 단순히 내 취향 때문에 등한시하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고민, 과연 '솔직함'이라는 무기가 사업에 있어 정말 큰 무기가 되는가.
요즘 우리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속도'다.
시대를 장악한 여러 플랫폼에서 내놓는 이른바 '숏폼' 콘텐츠들은 최대한 빠른 시간 이내에 소비자로 하여금 만족감을 선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대한 자극적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니 허세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의 미사여구로 점철된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솔직한 것은 담백한 만큼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이 시장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까지의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관심을 얻게 된들, 상품 본래의 가치를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사업가로서 솔직 담백함은 비효율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솔직함이랍시고 자의식 과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곤 한다. 소비자는 재화를 지불하기 앞서 판매자의 불확실성을 맞닥뜨리면 당연히 소비를 망설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솔직함'은 인간으로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사업가로서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이 모든 고민의 원천은 인간으로서의 나 그리고 사업가로서의 나 두 모습을 동일 선상에 두었기 때문에 발생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르소나, 요즘말로 '부캐'로 두 자아를 분리시켜 독립된 자아로 구분하여 삶을 운영한다면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실섹시' 말고 또 어떤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내가 추구하는 솔직함의 멋. 나를 가장 강력하게 나로서 지켜주던 무기였던 이것이 동시에 나를 위협하는 무기로 작용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동양의 음과 양, 헤겔의 변증법적 토의의 완전함, 그리고 알베르 까뮈의 '부조리'를 상기시키게 된 고통스럽지만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