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옳은가, 아니면 그저 안전한 것인가

by 한드로

1. 사라진 회색, 사건으로 전락한 인간


어느 순간부터 우리 곁에서 '회색'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이제 선명한 흑과 백의 대비로만 존재하죠. 픽셀 하나하나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고해상도 모니터처럼, 타인의 삶 또한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고화질의 잣대 위에 놓여있습니다. 모호함을 참지 못하는 우리는 모든 행위가 수치화되고, 모든 결과가 데이터로 분류되며, 모든 책임이 개별 주체에게 귀속되는 투명한 세계를 갈구합니다. 그리고 명확한 기준과 절차가 지배하는 세상이야말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낙원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선명함 앞에 서면, 우리는 왠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듭니다.


사람의 행동에는 언제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불완전함이 있죠. 하지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분류하려는 결벽은 그 애매한 상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맥락이 제거된 곳에서 사람은 그저, 그가 저지른 '사건들의 묶음'으로 전락합니다.


2. 명확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인간에 대한 이해는 도덕을 강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단을 늦추고, 책임을 분산시키며, 긴 설명을 늘어놓는 방식으로 작동하죠. 누군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쉽게 돌을 던질 수 없으니까요. 그 지연과 망설임은 타락이 아니라, 인간을 끝내 인간으로 남겨두기 위한 마지막 배려일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를 매료시키는 '명확함'은 애매함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기준은 분명해야 하고, 예외는 없어야 하며, 모든 행위는 신속히 분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정의는 강화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잔인함은 악의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죠. 차가운 정확함과 일관된 결벽에서 잔인함은 쉽게 정당화됩니다. 누군가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때조차, 원칙대로라는 전제가 붙는 순간 그를 향한 가차 없는 난도질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정의는 명확함으로 강화될지 모르나, 인간은 애매함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3. 판단자의 안락함


우리는 왜 이토록 도덕적 결벽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고통의 무게를 외면하려는 비겁한 회피일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구경꾼'이나 '판단자'로 남을 수 없죠. 이해는 우리를 '관계자'의 자리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관계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중립적일 수 없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타인의 삶에 연루되어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도덕적 엄격함은 사실 더 이상 타인의 삶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단절의 선언일지 모릅니다. 판단자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관계자의 자리에 서는 것보다 훨씬 덜 아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죠. 이 결벽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이 아니라, 차가운 거리 두기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옳기 때문에 착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기 위해 결벽을 선택합니다.


4. 인간다움이라는 전제


담벼락 너머로 뻗어 나온 앞 집 감나무 열매를 따 먹거나, 철없던 시절 타인에게 입혔던 크고 작은 결례들이 인정의 울타리 안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의 사회가 지금보다 해이했기 때문일까요. 그때는 그 소란스러운 인간을 단편적인 사건들의 묶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미숙하고, 완성되지 않았으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였죠. 그래서 사회는 법의 심판 대신 훈육과 타이름, 그리고 부끄러움이라는 관계의 언어로 그를 보듬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애매한 틈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선의를 계산하고, 부끄러움을 전략으로 삼으며,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허용 범위를 데이터화하는 이들이 나타났죠. 그리고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다움을 전제로 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말이죠. 그 결과 사회는 인간을 믿는 대신 절차를 믿기로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누적된 피로의 결과이죠. 사람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에 선택한 방어 기제. 우리는 인간을 전제로 삼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5. 인간을 전제로 삼는 두려움


우리는 이제 타인이 보여주는 선의 뒤편에 계산된 의도를 먼저 읽어내려 애쓰고, 단 한 번의 과오로 그 사람의 생애를 확정 지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외 없는 공정함을 얻었을지 모르나,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인 회색빛의 애매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정말 옳기 때문에 정의로운가. 사회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 인간다움은 어디까지 면죄부가 되는가. 이 물음들에 답하기 어렵다는 것은, 도덕으로, 체념으로, 그리고 냉소로 아직 이 질문들을 종결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죠. 도덕이 타인을 구원하는 손길이 아닌 단죄의 칼날로만 기능할 때, 도덕의 얼굴을 가장한 이 사회는 가장 비인간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믿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차가운 결벽 속에 영원히 고립되어야 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가장 완벽한 천국은 건설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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