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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Sep 25. 2020

음주에 대하여

중독자의 내면 심리 들여다보기, 아놀드 루드비히

알콜중독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자, 친구의 이야기, 선배 후배의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들은 음주를 통해 인맥을 쌓고, 친분을 도모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하는 등 음주의 사회적 기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이런 보편성 때문에 다른 약물중독과 달리 알콜중독은 개인이 인지하기 어려운 측면 있다. 남들도 다 마시니까, 한두잔 정도는 무겁지 않으니까, 사회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등등 음주가 삶에 꽤나 가까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알콜 의존(alcohol dependence), 알콜 남용(alcohol abuse), 과음과 폭음(binge drinking, heavy drinking), 문제적 음주(problematic drinking) 등 알콜중독에도 여러가지 양상이 있다. 양상이 다양한만큼 정의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미국심리학회(APA)에서 제시한 알코올 의존 진단기준을 사용한다(DSM-IV-TR). 다음 증상들을 보고 본인이 알콜 중독 같아 보이는 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난 12개월 동안 다음 증상 중 3가지 이상이 해당될 때, 알콜중독으로 진단

- 내성을 보인다. 즉 처음보다 마시는 양이 증가한다
- 술 기운이 떨어지면 불안, 불면, 손떨림 및 환각 등을 경험한다.(금단증상 경험)
- 의도보다 더 많은 양을 장기간 음주한다. (ex:한 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마시다보니 새벽까지 마신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뜻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
- 금주시도를 했지만 실패한다.
- 술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한다.
- 음주로 인하여 평소 즐겨하던 활동들에 지장을 받는다.
- 음주로 인하여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음주를 한다.

출처: 삼성서울병원>질환백과>알코올 중독


나처럼 평소에 술을 즐겨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뭐 이럴 때가 가끔 있긴 하지만 중독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알콜중독이라면 손이 떨린다던지 매일 소주 나발을 불고 있는다던지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난 그정도까진 아니지, 난 절제하려고 마음먹으면 절제는 하지' 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술병을 든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MBC베스트극장


정신과 전문의로 25년 이상 알콜중독을 연구해 온 저자는 환자가 스스로 알콜 중독임을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절반 이상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알콜중독환자들은 합리화의 늪에 빠져있다. 이를 테면 위처럼 자신이 알콜중독이 아니라는 합리화,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합리화를 말한다. 음주가 사회와 가까울수록 우리는 합리화할 핑계거리를 더 많이, 더 쉽게 갖게 된다.


저자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알콜중독자는 병원, 연구실, 교회 같은 곳에서는 음주 유혹을 덜 느끼지만, 술집에서는 크게 음주 유혹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술과 관련된 이미지만 봐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갈망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이를 ‘상상 음주 효과think-drink effect’라고 하는데, 실제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스스로 술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갈망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알콜 중독은 단순히 신체적인 중독(약리학적 중독)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심리적인 중독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


심리적으로 우리는 즐기거나 또는 느슨해지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긴장을 풀고 하루를 느긋하게 정리하기 위해 등등.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떨치기 위해서도 술을 마신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족이나 연인 또는 친구 등 인간관계 문제 때문에, 불안하거나 절망스러운 많은 상황들 때문에 술을 찾는다.


전자와 같이 유쾌한 감정을 위해 술을 원하는 사람은 비교적 가벼운 초기 중독 단계로 본다. 후자와 같이 불쾌한 감정을 줄이기 위해 술을 원하는 사람은 조금 더 심각한 중독 단계일 확률이 높다. 일부 연구 결과를 보면, 알콜중독자 중 약 25% 정도는 기쁘거나 즐거울 때 술을 찾는다고 응답한 반면, 약 75%가 근심이 있거나 우울할 때 술을 찾는다고 응답했다. 알콜중독자들이 술을 찾는 이유가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 자신 역시 일정 수준 알콜중독증세를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소량의 술을 마시게 한 후 구토, 메스꺼움, 호흡 곤란 등을 유도하는 주사제를 투여하거나 전기충격을 가해 술에 대한 혐오감을 학습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약리적 중독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약을 사용하기도 하며, 미국에서는 A.A. (Alcoholics Anonymous)라는 알콜중독 치료모임을 통해 환자들의 심리적 중독을 치료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알콜중독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매진해 온 저자이지만, 그는 치료법들 대다수가 보조방편이며 치료의 핵심은 환자 개개인의 의지에 있다고 설명한다.


알콜중독치료는 공부든, 일이든 성공을 위해 요구되는 자기계발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다.


첫째, 메타인지를 높여 자신이 개선해야 할 점을 깨닫는다. (내가 음주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둘째, 문제개선을 위해 환경을 조성한다. (음주를 유발하는 술집 근처에 가지 않는 것)

셋째,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딱 죽기 직전까지 노력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잔의 술조차 마시지 않는 것)


우리의 일상적인 삶으로 잠깐 시선을 돌려보자. 시중의 자기계발서들, 자서전, 성공한 CEO의 강연 등 성공적인 삶의 태도를 다루는 대다수의 콘텐츠들은 저 세가지 단계를 각자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풀어나간다. 우리는 이런 콘텐츠들을 통해 자극을 받고 같은 방식으로 시도해본다. 그럼 대체적으로 메타인지를 높이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단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딱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는 단계에서 대부분 포기한다. 그래서 다시 Ted를 보고, 유튜브를 본다. 또 시도해본다. 또 딱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는 것에서 포기한다.


알콜중독환자의 90% 이상이 금주 후 18개월 이후가 지나면 다시 음주를 하게 된다고 한다. 매번 실패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환자들 역시 '딱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과업인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만 하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성취를, 부를, 명예를 다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도 우리는 줄곧 포기한다. 알콜중독환자들도 그렇다. 음주가 가족을 떠나보내고, 직장을 잃게 하고,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고 해도 금주에 자꾸 실패하는 것이다.


하기로 마음 먹은 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매일 해낸다는 것은 결코 보통의 의지로 되지 않는다.


알콜중독치료방식을 보면서 왠지 따끔따끔했다. 알면서도 자꾸 술에 입을 대고, 알면서도 자꾸 예전의 나쁜 음주습관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내가 사는 방식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독치료의 핵심도 결국 개인의 의지라는 것을 보면 의지만 있으면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현실무슨 일이든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의지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독치료가 됐든 성공이 됐든 자신의 해묵은 나쁜 태도를 고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조롱의 단어가 되어버린 그 '노력'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알콜중독환자가 금주 하는 노력을 조롱한다고 해서 자신의 중독증세가 치료되지 않듯, 우리도 노력을 조롱한다고 해서 우리의 낡은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그 뒤로도 수천번의 날을 죽을만큼 의지를 갖고 견뎌온 사람들만이 결국 중독을 고쳤다. 음주 이야기로 시작한 글이 태도의 이야기로 정리되니 그것 또한 참 나의 이야기 같고, 내 가족의 이야기 같고, 내 친구의 이야기 같다. 무슨 일이든 사람 일은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은건가 싶기도 하다.




*Arnold M. Ludwig, Abraham Wikler, and Louis H. Stark, ‘The first drink’; Arnold M. Ludwig et al., ‘Physiologic and situational determinants’.

** 아놀드 루드비히, '중독자의 내면 심리 들여다 보기', 한국에서는 2016년에 출간되었으나 오리지널 초판은 1988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책에서 인용하는 저서들, 실험들이 오래되어 현재 알콜중독학 경향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알콜중독에 관련된 고전적인 이론들과 치료법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중독의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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